집이 마지막 병원… 일반 고령 환자도 재택치료가 시급한 이유 [김철중의 아웃룩]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3. 4. 1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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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양재동 연립주택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김모(84) 할머니는 걸어서 5분 거리의 의원을 못 간다. 7년 전 골다공증으로 척추뼈 여러 개가 골절되어 허리가 앞으로 고부라졌다. 척추를 일으켜 세우는 수술을 받았으나, 제대로 걷지 못한다. 계단을 오를 수 없어 혼자서는 바깥 출입을 못 한다. 심장 관상동맥질환으로 스텐트를 넣었고, 당뇨병 약도 먹고 있다. 김 할머니의 질병과 건강이 제대로 관리되려면 의료진이 집으로 와줘야만 하는 처지다.

지난 10일 오후 박건우(고려대 신경과) 재택의료학회 이사장이 할머니 집으로 방문 진료를 왔다. 보행 기능을 체크하고, 약물을 잘 복용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박 교수는 요양보호사에게 할머니 근력 강화를 위해 하루 한 번 보행 보조기를 끌고 산책시킬 것을 주문했다. 이날 박 교수팀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 3명을 찾아가 진료했다. 서초구와 고대의료원의 방문형 재택의료 사업 일환이다. 최근 여러 지자체가 이러한 재택의료 서비스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지난 10일 집으로 방문 진료 온 박건우 고려대병원 신경과 교수로부터 보행 검사를 받고 있다. /고운호 기자

◇활성화되는 방문 의료

경기 파주시의 조모(81)씨는 요즘 기력을 급격히 잃으면서 걷지 못한다. 콩팥 기능이 저하되어 약을 복용 중이고, 전립선약, 혈압약, 당뇨병약도 먹고 있다. 조씨도 한 달에 한 번 의사 왕진을 받고 있다. 이 지역의 연세송내과는 이런 환자들이 늘자 방문 진료와 간호를 하는 재택의료센터를 세웠다. 의사 2명, 간호사 12명, 사회복지사 2명 등이 거동이 불편한 채 집에서 지내는 환자 집을 다닌다. 한 달에 한 번 의사가, 두 번은 간호사가 가는 형태의 재택의료를 하고 관리 보고서를 제출하면 건강보험과 요양보험에서 약 40만원을 받는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이런 형태의 재택의료센터 사업을 늘렸다. 전국 28개 재택의료센터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환자로부터 24시간 응급 콜을 받고, 긴급 왕진도 간다. 방문 진료가 활성화되자, ‘건강의집’, ‘서울36의원’, ‘집으로의원’ 등 방문 진료만 하는 의원들도 생겨났다. 이들은 방문 진료할 때 새로운 약물 처방이 필요하면, 가지고 간 휴대용 프린터로 처방전을 인쇄해 환자 측에게 주고 있다.

말기 폐암 환자 김모(62)씨는 세브란스병원서 암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한 달에 두 번 간호사의 방문을 받고 있다. 김씨는 암 치료로 발생할 합병증이나 부작용을 체크받는다. 방문 간호사는 병의 악화로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응급으로 병원 진료를 받게 한다. 현재 이 병원에 11명의 가정 전문 간호사가 활동하며, 한 사람이 하루에 7곳의 환자 집을 찾고 있다. 이를 위해 병원은 가정간호 전용 차량을 운영하며, 방문 환자 의무 기록 앱도 쓰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병원이 재택의료와 가정간호를 활성화하면서 가정 전문 간호사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21년 말 기준으로 대학병원 27개 등 전국 177개 의료기관에서 가정간호를 시행하고 있다.

의사나 간호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재택의료는 10여 개 항목에서 이뤄지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장기요양보험 수급자, 중증 소아 환자와 장애인, 가정용 인공호흡기 사용 환자나 움직이면 숨차는 심장질환자 등이 대상이다. 대상자는 의료기관과 지자체 사회복지 부서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환자 측은 재택의료 진료비의 5~20%를 부담한다.

◇진화하는 재택의료

“어르신, 간밤에 잠은 잘 주무셨어요?” “아니요, 요즘 잠을 통 못 자고 있네요.” 독거 노인의 안부와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이 전화 대화는 사회복지사와 독거 노인이 나눈 대화가 아니다. 네이버가 AI(인공지능)와 대화하도록 개발한 ‘클로바 케어콜’이 관절염을 앓는 노인 환자와 나눈 실제 대화다. 케어콜은 대화 내용 기억 기능이 있어 “지난번에 허리 아프셨던 건 좀 어떠세요?”라는 등의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나눈다. “다행이네요~”와 같은 공감 반응도 보인다. 현재 클로바 케어콜은 전국 50여 개 지자체에서 쓰이고 있으며, 말하는 게 사람 같아서 이 전화를 기다리는 어르신이 많다고 한다. 대화 내용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지자체 사회복지팀에 연계되기도 한다.

만성신부전증으로 콩팥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 신장 투석 처방을 받은 장모(64)씨는 인공 투석실을 다니지 않는다. 집에서 복막 투석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밤에 잠잘 때 복막 안으로 투석액이 자동으로 들어가 해독을 한 후, 배 밖으로 투석액이 자동으로 빠져나온다. 이 과정이 밤사이 수차례 이뤄지면, 어느 정도 투석이 이뤄졌는지 그 기록이 중앙감시센터에 자동으로 전송된다. 환자를 담당하는 신장내과 의료진이 이를 모니터링하다가 투석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식으로 원격 조정할 수 있다. 환자는 두 달에 한두 번만 병원에 가면 된다. 이 같은 투석 환자 재택관리 사업에 83개 의료기관이 참여했다. 환자 만족도는 96%에 이른다.

재택의료 원조는 2010년 일찌감치 초고령사회(65세 인구 비율 20% 이상)로 들어간 일본이다. 그때 이미 일본에서는 방문 진료가 한 해 361만 건 이뤄졌다. 2019년에는 954만 건으로, 10년 새 약 3배가 늘었다. 최근에는 집이 마지막 병원이라는 개념하에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로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이상이 있으면 방문 진료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예정으로, 앞으로 재택의료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건세(건국대 예방의학) 재택의료학회 회장은 “재택의료가 지금은 장기요양보험 수급자나 저소득층 복지서비스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일반 고령 환자나 암 환자에서 방문 진료나 가정 간호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다”며 “일단 환자 측이 진료비를 상당 부분 부담하는 방식으로라도 재택의료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방문 진료와 가정 간호 인프라를 키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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