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대표의 ‘기본대출’엔 기본이 없다[朝鮮칼럼]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 시절, 적극적 재정관리를 통해 흑자가 누적되면서 국채 발행 수요가 줄어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후임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2001년 10월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최장기채인 30년 국채 발행을 중지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지출 증가로 재정이 적자로 돌아선 데다 장단기 금리 차가 마이너스로 역전되면서 2006년 다시 30년 국채 발행이 재도입되었다. 과거 미국 행정부와 재정수지를 살펴보면 대체로 공화당 집권 시 재정적자 규모가 확대되다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적자 규모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왔다. 일각에서는 공화당 정부 집권 시 감세정책과 군비지출 증가로 적자가 누적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편에서는 일정 이상 높은 세율은 근로의욕 및 투자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오히려 세수가 줄어든다는 래퍼커브(Laffer curve)의 타당성을 주장하면서 다만 감세로 인한 정책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정권 교체 시 다음 정권인 민주당 정권에서 그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에 대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는 좌우 정권을 가리지 않고 대체로 재정을 잘 관리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관리재정수지는 외환 위기나 금융 위기 그리고 2014년 경기침체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GDP 대비 -1% 수준에서 운용되어왔다. 정권에 따라 세율을 높이거나 낮추긴 했어도 세수에 맞춰 나라 살림을 운영해 균형을 유지해 온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정권하에서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인 –2.8%를 기록한 후 코로나 발생 후인 2020년 –5.8%, 2021년 –4.4%, 2022년 –5.1%로 수직 하락했다. 참고로 관리재정수지가 도입된 1990년 가장 적자 비율이 높았던 때는 외환 위기가 발생했던 1998년으로 –4.6%였다. 코로나로 인한 재정적자 규모 확대는 불가피한 면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코로나 발발 이전인 2019년의 재정적자 확대는 ‘나랏돈 퍼주기’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코로나 이후의 재정악화 중 일부에는 이러한 퍼주기 지출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재무학자인 존 코크런(John Cochrane)은 ‘물가의 재정이론(The Fiscal Theory of the Price Level)’이란 저서를 통해 인플레이션이 재정적자에 의해 유발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물가 수준은 결국 향후 재정수지의 현재가치가 국채의 실질가치와 동일하도록 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이에 따라 정부가 향후 국가부채를 상환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자국 통화로 표시된 국가부채는 채무불이행이 일어날 수 없다. 기존 부채 상환이 어려울 경우 신규 국채의 차환발행을 통해 롤오버 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즉 일종의 폰지 스킴(Ponzi’s scheme)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부채 상환 시점이 미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국채의 실질가치를 하락시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를 비롯해 최근 학계에서는 코로나에 따른 직접적 현금 지급으로 인플레이션이 악화되었다는 ‘재정유발 인플레이션(fiscal-driven inflation)’이 화두가 되고 있다. 무분별한 재정지출의 위험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최근 야당 대표가 기본대출 카드를 들고 나왔다. 지난 대선 당시 주장한 기본소득, 기본주거와 더불어 공약한 기본 시리즈 중 하나다. 그러나 기본소득과 기본대출은 기본 개념이 상이하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현금이든 지역 화폐든 현금성 자산을 나눠준다. 즉 무차별적이다. 반면 기본대출은 대출금리 수준에 따라 참여자가 결정되므로 선택적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통합균형 (pooling equilibrium)’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본대출 금리를 5%로 정하면 신용도가 낮아 현재 금융권에서 5% 이상의 대출금리를 지불해야 하는 사람들만 기본대출을 받으려 하는 역선택 문제(adverse selection)가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기본대출을 한 은행은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되는 만큼 이를 재정으로 보전해야 한다. 이를 우려해 기본대출 금리를 올리면 실질적으로 신용도가 더 낮은 계층만 참여하게 된다. 즉 재정부담과 ‘탈기본’이 상충하게 되는 문제가 발행한다. 재정에 부담을 덜 주면서 고금리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중간에 접점을 찾아야 한다. 이럴 경우 결국 현재 금융 당국이 금융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내놓은 각종 지원책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 ‘기본’이 없는 기본대출에 집착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 금융 당국의 정책 지원 규모를 늘리거나 사각지대를 살펴 보완하는 것이 민생 면에서는 더 효율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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