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관심·수상, 버겁긴 해도 좋은 촉매라 생각해요"
지난해 10월 경기도 평택의 SPC그룹 계열 공장에서 새벽 작업을 하던 청년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사건을 기사로 처음 알리고 이후 추적 보도를 이어온 김산 경인일보 기자는 ‘이달의 기자상’을 비롯해 ‘인권보도상’, ‘민주언론실천상’, 그리고 최근 ‘한국신문상’까지 다수의 상을 휩쓸었다. 만 1년이 안 된, 수습 시절을 포함해도 11개월 차에 불과한 ‘초년병’ 기자치고는 놀라울 만큼 화려한 이력이다. 하지만 상을 받을 때마다 그의 마음은 들뜨기보다 무겁게 내려앉았다. 비극을 가까이서 지켜본 그로서는 그 일을 두고 ‘잘했다’, ‘큰일 했다’며 상을 받고 공적처럼 평가받는 것 자체가 버거웠던 탓이다. 그 부담감과 부채감을 감당하는 법을 익혀야 했던 그는 이제야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취재를 더 잘 이어가 봐라’ 이런 명령처럼 저를 계속 일깨워주는 것 같아요. 심사평 하나하나, 듣게 되는 여러 말씀과 글귀들이 좋은 취재를 하라는, 숨진 분을 두고 안주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다른 취재를 할 때도 항상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거죠. 좋은 촉매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인기 드라마의 대사처럼, 여기까지 오는데 우연은 한 줄도 없었다. 1주일 전 같은 공장에서 손 끼임 사고가 있었다는 제보를 흘려들었다면, 무작정 현장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주변 중·소규모 공장을 압도하는” ‘난공불락’ 같은 공장 앞에서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면, 다음 날 아침 그곳에서 노동자가 사망한 소식을 공장 사람에게서 전해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죽음은 우리 사회의 ‘흔한’ 죽음 중 하나로 조용히 묻혔을지 모른다. 수습 딱지를 뗀 지 두 달째, 하지만 여전히 “수습의 마음가짐이었던” 그는 ‘성과가 없더라도 경험 차원에서 현장에 가보라’는 선배들의 말을 새긴 덕에 그 사회적 죽음을 길어 올릴 수 있었다.
꼭 그곳만이 아니다. 김 기자는 별일이 없어도 경기도 내에 있는 공단이나 산업현장 등에 가보곤 한다. 가면 소위 ‘함바집’이라 불리는 식당에도 꼭 들른다. “공장 노동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몇 없는 귀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이나 공단은 일반인으로서 가본 적 없으니 다니는 게 재미있기도 해요. 산업단지에 관한 다른 기사를 쓰더라도 환경이나 내부구조를 부딪쳐 본 경험이 있으면 쓰는 게 다르니까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저널리즘의 오랜 격언이 있지만, 현장 한 번 안 가보고 쓰이는 기사가 많은 게 현실이다. 김 기자는 항상 현장을 출발점으로 삼으려 한다. “사회부 기자라면, 사회에서 벌어지는 뭔가를 알아낸다고 하면 주변 취재를 통해 알아내서 현장을 마지막 방점으로 가는 게 아니라 현장을 가보고 다른 것들을 통해 방점을 찍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역 언론의 장점”이자 “지역 매체의 가치인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지역 언론의 가치를 지키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면서도 존립을 걱정해야 한다는 게 지역 언론이 처한 딜레마이자 숙명이다. 그래서 많은 지역 언론이 포털 입점에 사활을 걸었고, 경인일보도 마찬가지였다. 김 기자의 SPC 단독보도가 있기 하루 전, 경인일보는 네이버·카카오 콘텐츠제휴(CP) 특별심사에서 최종 탈락했다. 네이버에 들어갈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버스”를 놓친 셈이었다. 충격의 여파는 상상외로 컸다. 그는 최대한 영향받지 않고 일에 집중하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언론 산업계가 처한 딜레마적 상황”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플랫폼에 따라 매체의 존속을 고민해야 하는 게 특정 언론사만의 위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우리(경인일보)가 조금 일찍 맞닥뜨렸을 뿐,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독자가) 잘 보게 만드는 것이 다를 때 언론 산업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기자 준비에 반년, 기자가 된 지는 1년 남짓, “여전히 배우는 과정”이지만, 그는 특히 경기도의 격차 문제에 관심이 많다. 경기도 내 도시 간 격차, 경기도와 서울의 격차, 그리고 수도권과 다른 지역 간의 격차까지. 이런 격차도 현장을 많이 다니면서 느낀 것들이다. 그런 그에게 어떤 기자가 되고 싶냐 물으니 “발광체가 아닌 반사체가 되고 싶다”고 답한다. “내 관점을 관철하고 알리기보다 사회 현상에서 중요한 걸 반사체처럼 투영해내는 게 좋은 기자 아닌가 싶어요. 제가 원래 가진 주관도 내려놓고 최대한, 이 사회 현상이 어떤 의미인가 집중해서 보려는 태도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목소리나 입지가 두텁지 않은 분이라도 그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면 그걸 반사해주는 역할을 하는 기자를 지향점으로 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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