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언론규제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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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9년경에 로마제국 원로원에서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를 처음 발행했다.
통속신문인 악타 포풀리에는 관보에 실린 내용과 더불어 항구를 통해 전해지는 다양한 소식과 사건·사고, 물가정보, 원형경기장 검투 일정, 정치인 추문 등 다양한 내용이 가득했다.
가사노동부터 농사, 전쟁에 이르기까지 로마 경제를 떠받친 건 노예였다.
로마나 중국과는 사뭇 다른 오래된 전통이 우리에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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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9년경에 로마제국 원로원에서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를 처음 발행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실물이 없어 기록으로만 추론하지만, 처음엔 벽보이다가 차츰 문서로 발행되었다 한다. 그때로부터 대략 2080여년이 지났으니 신문의 역사는 정말 오래다.
초창기 관보인 악타 디우르나에는 원로원 결정사항과 황제 근황을 실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시민을 위해서 광장에서 읽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차츰 원로원보다 황제의 권위가 커지면서 관보에는 황제를 옹호하고 민심을 현혹하는 허위정보와 선전 글귀가 가득해졌다. 다행히 시장에서는 민간에서 발행하는 악타 포풀리(acta poluli)가 경쟁자로 존재했다. 통속신문인 악타 포풀리에는 관보에 실린 내용과 더불어 항구를 통해 전해지는 다양한 소식과 사건·사고, 물가정보, 원형경기장 검투 일정, 정치인 추문 등 다양한 내용이 가득했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은 악타 디우르나와 악타 포풀리 모두 해외에서 잡혀 온 지식인 노예가 많았다. 가사노동부터 농사, 전쟁에 이르기까지 로마 경제를 떠받친 건 노예였다. 신문을 만드는 필경사도 그들의 하나였다. 중국도 수도에서 발행되는 경보와 지방도시 시장에서 발행되는 저보가 경쟁했다.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정보가 원활히 흘러야 불만이 잠잠해진다.
조선은 조금 달랐다. 조선왕조 500년간 일성록, 비변사일기,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같은 훌륭한 기록문화유산을 남겼지만, 민중이 직접 조보를 만드는 건 금지했다. 선조 시대에 조보를 필사하여 한성부에서 판매했던 상인들이 있다. 용감한 시도였지만, 선조로서는 사사로운 정보유통을 허용할 수 없었다. 나라는 작고 왕의 소갈머리는 좁아터졌었다. 로마나 중국과는 사뭇 다른 오래된 전통이 우리에게는 있다.
오늘날도 신문기자가 ‘기레기’ 소리 들어가며 과로와 저소득, 직업병에 걸려 허덕이는 건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전통인 모양이다. 고용주만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에 시장에서 경쟁하는 통속적이다 못해 저속한 인터넷매체가 넘쳐난다. 기술발달의 축복 속에 너나없이 커피숍 개업하듯 인터넷신문을 창간하는 시대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전달된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 나르는 비논리적인 감상문을 맞춤법 한번 살펴보지 않고 올리는 안타까운 현실도 존재한다.
더 문제는 로마시대처럼 관보나 통속신문 수준의 언론사는 늘어나는데, 정확한 정보와 비평을 확인할 수 있는 의견지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제는 인터넷신문에 이어서 종이신문조차 오직 비트코인 채굴하듯 조회수 채굴에만 매달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행정기관과 정치권은 ‘가짜뉴스’를 핑계로 미디어를 직접 통제하겠다는 욕망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
불과 얼마 전 수습된 신문법 개정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일명 ‘가짜뉴스’를 때려잡겠다는 시도다. 이번엔 여야가 바뀌었다. 다시 여당은 ‘언론 길들이기’, 야당은 ‘언론 북돋우기’에 나선 모양새다. 법안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헛된 욕망은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모두 정치권 탓은 아니다. 권위를 상실하고, 품위를 실천하지 못하는 언론을 추앙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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