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천국 된 네덜란드와 마약 배달 [만물상]
1800년까지 미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는 19세기 내내 미국 산업화의 중추였다. 1876년 유럽 밖에서 처음으로 세계박람회가 열린 곳도 필라델피아였다. 그때 전화기가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의 어둠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도심은 점점 황폐해져갔다. 도시를 빠져나간 백인 중산층의 자리를 남부에서 올라온 흑인들이 채웠다. 흑인 대이동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쇠락한 도심을 파고든 건 마약이었다. 지금도 필라델피아 켄싱턴가(街) 풍경은 영락없는 ‘좀비 영화’다. 마약에 취한 노숙인들이 허리, 팔다리를 심하게 꺾은 채 약 3㎞에 달하는 거리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좀비 랜드’란 오명까지 붙었다. 경찰도 사실상 마약 거래 단속은 포기하고, 범죄가 일어나야 개입할 정도라고 한다. 이곳을 좀먹은 마약은 펜타닐. 말기암 환자를 위한 진통제로 개발됐는데 2~3달러만 주면 약국에서 구할 수 있어 ‘악마의 마약’으로 불린다.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급속도로 번진 것이다.
▶네덜란드는 1976년 이래 마약에 대해 이른바 ‘관용 정책’을 펴왔다. 헤로인·코카인 등 중독성 강한 마약 유통은 금지하되, 대마 등 연성 마약을 제한적으로 합법화한 것이다. 마약 가격을 대폭 낮춰 마약 조직의 수익률을 낮추고 마약 중독자들이 더 위험한 약물에 손대는 걸 막겠다는 독창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2년 전 이 정책이 네덜란드를 ‘마약에 찌든 국가’로 만들었다고 했다.
▶실제 세계 마약 조직들이 네덜란드로 모여들었고, 북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마약을 네덜란드를 거쳐 유럽에 유통시키는 것에 주력하던 마약 조직은 2010년대부터 코카인 제조까지 시작했다. 유럽의 마약 범죄 전문가는 “마약 유통이 허용되면 유통업자들은 결국 제조에도 손을 댄다”고 했다. 2017년 기준 네덜란드의 합법적 마약 시장 규모만 259조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10대 청소년으로 가장한 본지 기자가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 운반책을 모집하는 마약상들에게 연락했다가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교복 입고 운반하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 오히려 더 낫다”고 했다는 것이다. 마약상들은 “적어도 월 1000만원 이상을 보장한다”며 운반책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 마약 유통이 쉬워지니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까지 학생을 상대로 ‘마약 시음회’를 벌이는 세상이다. 여기에 마약 배달로 큰돈 벌 수 있다는 인식까지 생기면 정말 큰일이다. 마약은 유통이 쉬워지면 막기 어렵다. 미국과 네덜란드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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