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에 부러진 소나무, 고압선 끊어 발화”... 경포 해안까지 번져
379ha의 삼림과 100여 채의 주택·펜션을 태운 11일 강릉 산불은 ‘태풍급’ 강풍(强風)에 부러진 소나무 가지에서 시작됐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불은 오전 8시 30분쯤 강릉시 난곡동 샌드파인 골프장 옆 야산에서 소나무 가지가 부러져 전깃줄을 건드렸고, 전선이 끊어지면서 불꽃이 튀어 낙엽에 옮아붙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고압 전선이 끊어진 곳과 발화 지점이 일치하는 점, 지역 주민들도 비슷한 시간에 정전이 일어났다고 말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이번 산불은 전선 단선(斷線)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은 당시 순간 최대 풍속 초속 30m 강풍을 타고 직선거리로 300m가량 떨어진 골프장을 덮쳤다. 필드에 있던 골퍼는 물론 클럽하우스 안에 있던 사람들도 긴급 대피했다. 이어 불은 남서풍을 타고 펜션 등이 밀집한 바닷가 쪽으로 빠르게 번져 민가와 펜션, 호텔 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전소되거나 일부 불에 탄 곳만 100여 곳에 이른다.
피해가 컸던 안현동 한 주택에선 80대 주민 전모씨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숨진 채로 발견됐다. 또 이날 불로 진화 작업을 벌이던 소방대원 2명과 주민 1명이 2도 화상을 입었고, 주민 12명이 연기에 질식했다.
강풍이 몰아치며 불길은 발화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2.8㎞ 떨어진 사근진 해변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불길이 이어진 둘레만 8㎞에 달하기도 했다. 불이 번지자 강릉시는 경포동 10통·11통 등 7개 통 주민들에게 주민 대피령을 내렸고, 550여 명이 빙상경기장인 아이스아레나 등으로 몸을 피했다. 낮 12시 40분쯤 경포해수욕장 인근까지 불길이 닥치자 한 리조트 등 투숙객 700여 명이 한꺼번에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저동 주민 김정자(71)씨는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연기를 보고 너무 놀라서 작업복 차림으로 대피했다”며 “집이 홀라당 타버리는 걸 보면서도 휴대폰만 들고 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강풍은 진화 헬기가 이륙도 못 할 만큼 거세게 불었다. 진화를 위해 헬기 12대를 대기시켰지만, 강풍 때문에 6시간 넘게 투입하지 못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바람이 초속 16m 이하로 잦아들어야 헬기를 띄울 수 있다”고 했다. 바람이 잦아진 이날 오후 2시 30분쯤에야 헬기 4대를 투입했다.
건조한 날씨도 불의 확산을 키웠다. 강릉 지역에 많이 분포한 소나무 숲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당시 강릉을 비롯한 영동 전역에는 강풍 경고와 함께 건조 경보가 내려져 있었다.
바짝 마른 소나무 가지와 잎을 통해 불은 무섭게 번졌고 경포 해변의 소나무 숲 일부가 피해를 당했고, 짙은 연기가 백사장과 숲을 뒤덮었다. 강원도산불방지센터 소장은 “소나무의 송진엔 기름 성분이 있어 불의 화력을 키웠고, 건조한 날씨가 더해져 피해를 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불은 오후 3시 18분쯤 비가 내리면서 기세가 꺾였다. 이때부터 바람도 잦아졌고, 화재 발생 8시간 만인 오후 4시 30분쯤 주불이 잡혔다. 산림청 관계자는 “오전 같은 바람과 날씨였으면 강릉 전체를 태웠을지도 모른다. 정말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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