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산불 르포] 삶의 터전 잃은 노부부 이재민 텐트서 망연자실

김솔 2023. 4. 1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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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산 집이랑 밭이 전부 잿더미가 됐으니 살 맛이 안 나."

1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아이스아레나에 마련된 산불 이재민 임시 대피소에서 만난 전모(69)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2000년 4월에도 동해안 산불로 터전을 잃어 한동안 이재민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했던 전씨는 이날 23년 전의 아픔을 다시 겪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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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 불길에 맨몸 피신…23년 전 산불 피해 아픔 다시 겪게 돼"

(강릉=연합뉴스) 천경환 김솔 기자 = "20년 넘게 산 집이랑 밭이 전부 잿더미가 됐으니 살 맛이 안 나."

강릉 산불 이재민 대피소 (강릉=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강원도 강릉시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한 11일 오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산불 피해 이재민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2023.4.11 kw@yna.co.kr

1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아이스아레나에 마련된 산불 이재민 임시 대피소에서 만난 전모(69)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강릉시 저동 주민인 전씨는 이날 오전 강릉시를 덮친 산불로 23년간 아내와 지냈던 99㎡ 규모의 2층 주택과 채소를 기르던 밭을 한순간에 잃었다.

대피할 때 집어 들었던 흙탕물투성이 고무장화를 신고 있는 그의 모습은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짐작게 했다.

전씨는 "아침 8시 반쯤 동네 주민으로부터 '근처에 산불이 났으니 대피하라'는 연락을 받고 집 밖으로 나왔는데 사방이 새카만 연기로 가득해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며 "곧바로 집에 있던 아내, 아들과 함께 나와 탁 트인 곳을 향해 계속 뛰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뒷산을 타고 내려온 불이 순식간에 민가를 덮치면서 전씨의 집은 새카만 폐허로 변했다.

2000년 4월에도 동해안 산불로 터전을 잃어 한동안 이재민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했던 전씨는 이날 23년 전의 아픔을 다시 겪게 됐다.

그는 "가족이 다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입고 나온 옷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막막하다"며 "그동안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밭이 다 타버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산불 이재민 위한 긴급 구호 물품 (강릉=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11일 오후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 긴급 구호 물품이 쌓여 있다. 2023.4.11 kw@yna.co.kr

다른 이재민 70대 김모 씨는 이번 산불로 수 년간 운영하던 펜션을 잃었다.

그는 "아침에 직선거리로 우리 펜션에서 60여m 떨어져 있는 인월사 대웅전 지붕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봤는데, 그로부터 10분도 안 돼 불이 펜션 앞까지 번졌다"며 "진화된 뒤 바로 펜션으로 달려갔지만 모두 타 뼈대만 남아 있었다"고 한숨 쉬었다.

근처에 있던 강릉시 안현동 주민 정모(81)씨도 "이 나이 먹도록 달방을 내주고 농사를 지으며 지냈는데 불이 나서 모든 걸 잃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곳 임시 대피소에서는 이날 산불 이재민 400여명이 130여 개 텐트에서 밤을 보낸다.

강원도와 강릉시. 대한적십자사, 구세군 관계자 등이 이재민을 돕고 있다. 각계 후원 물품도 답지하고 있다.

임시 대피소에서 대기 중인 강릉시 관계자는 "이재민들이 새로운 거처를 얻고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동안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8시 22분께 강릉시 난곡동에서 산불이 나 8시간 만에 꺼졌다.

이번 산불로 축구장 면적(0.714㏊)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가 소실됐으며 1명이 숨지고 16명이 연기를 마시거나 다치는 등 사상자 17명이 발생했다.

또 주택과 펜션 등 시설물 101곳이 전소되거나 일부가 타는 피해가 났다.

s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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