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기준금리 2연속 동결] 수출·투자 내리막… 경기부양 카드마저 쓸 수 없는 `사면초가`
한은, 물가 잡으려면 금리 못내려
세수 부진으로 확대재정도 난관
"협력 DNA 발휘해야 위기 극복"
한국은행(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11일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동결을 선택했다. 2월에 이어 두차례 연속 동결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연내 금리 인하설'은 과도한 기대이며, 최종금리 수준에 대해서도 당분간 연 3.75%로 가져갈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지만 물가 안정보다는 경기 부양에 방점을 두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은이 미국의 기준금리가 우리보다 최고 1.50%포인트 높은데도 불구, 금리를 동결한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가 좋지 않다는 반증이다. 한은은 이날 올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경제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1.6%)를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월 전망치(3.5%)를 유지했다.
◇물가보다는 경기에 방점= 최근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에 빠진 모습이다. 생산과 투자가 줄어드는 가운데 수출은 급감세다. 무역적자는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세수 또한 줄어 나라빚(재정적자)도 쌓이고 있다.
급속한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부동산금융발 위기 우려도 높아져가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다중채무자의 증가로 금융사들의 부실여신도 단기간에 급증 추세다.
한국은행이 이날 올 성장률 전망치를 1.6% 미만으로 제시한 데 이어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 성장률을 또다시 1.5%로 낮춰잡았다. 1월 전망치(1.7%)보다 석달만에 0.2%포인트나 낮춘 것이다. 작년 10월 전망치(2.0%)보다는 무려 0.5%포인트나 낮다.
이는 2%대로 추정되는 잠재성장률에 한참 못미친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1%대 성장도 쉽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바클레이즈, 씨티, 골드만삭스 등 8개 주요 외국계 투자은행(IB)이 지난달 말 기준 보고서를 통해 밝힌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1%에 그쳤다. 씨티는 0.7%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고, 노무라는 역성장(-0.4%)할 것으로 예측했다. 8개 투자은행들은 내년에도 우리 경제가 2.0%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성장률은 △소비 △투자 △수출 △재정지출 등에 의해 좌우된다. 올들어 소비와 투자는 월별로 증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 비해 수출은 반도체 부문 악화로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무역 부문이 저성장의 원인이라는 얘기다. 한은도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소비가 작년 4분기 부진에서 다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수출이 IT 경기 부진 심화로 큰폭의 감소세를 이어가면서 성장세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 성장률(전분기 대비)은 마이너스(-0.4%)로 돌아섰고, 올 1분기도 소폭의 플러스로 전환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동결이냐 한차례 더 인상이냐= 한은은 그러나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감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2월과 같이 이번 회의에서도 다섯 분의 금통위원은 당분간 최종금리가 3.75%까지 오를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한 분은 3.50%로 동결하는 게 적절하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에 따르면 금통위원 5명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물가와 주요국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이다.
이 총재는 "예상한 대로 물가 둔화 흐름이 이어지겠으나 산유국 추가 감산이 국제 유가에 미칠 영향, 공공요금의 인상 시기·폭과 관련해 하반기 물가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주요국,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정책을 어떻게 가져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전했다. 연준은 5월 2~3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조정한다.
이에 대해 증권가는 최종금리가 연 3.50% 수준에서 동결될 가능성이 높으며, 하반기 금리 인하를 고민하기 시작할 것으로 봤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월과 4월 연속 동결 결정으로 최종금리가 3.5%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공고해졌다"며 "한은은 특별한 침체 징후나 신용위험 확산 징후가 나타나지 않으면 앞으로 5월, 7월까지 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기중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유동성 축소 여파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며 "추가 금리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종금리 수준이 3.5%로 동결되고 올해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다는 기존 전망을 유지하면서 "경기 하강 우려가 커지며 점차 물가보다 금융 안정으로 시선이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 인상이 끝났다는 평가로 채권시장이 강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금통위원들은 금리 인하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기준금리 인하는 연내 이뤄질 가능성은 작고, 내년 1분기 중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월이 인상의 마지막 기회였고, 더 올리기는 쉽지 않다"며 "물가가 불안해지더라도 한은으로서는 경기 때문에 금리를 더 올리기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밝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이번까지 두 번 연속 동결한 뒤 갑자기 5월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다시 올리면 시장에 큰 혼란을 줄 수 있다"며 "일단 금리 인상기는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리더십 부재에 진퇴양난 경제정책=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수단으론 크게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두가지가 있다. 경기를 부양하려면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 공급을 확대해야 하며, 정부가 씀씀이(재정지출)를 늘려야 한다. 수출 확대도 필요하다. 하지만 기준금리를 낮추면 물가 안정이 훼손될 수 있어 한은으로선 금리를 섣불리 낮추기 어렵다. 재정도 세수가 급감하고 적자가 쌓이는 상황에서 지출을 늘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무려 62조원을 지출한 상태다.
수출은 세계적인 반도체 경기 불황에다 중국 경제의 리오프닝 효과도 가시화되지 않아 단기간내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 정부는 반도체 자동차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기업 투자를 늘려 경제를 살리고 산업 경쟁력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효과를 거두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연일 정쟁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은 벌써부터 1년뒤 총선에만 매달릴 뿐 위기를 극복할 정치적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정부는 리더십을, 국민은 혁신과 협력의 DNA를 각각 발휘해야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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