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헌재 “위헌”에도 기약 없이 ‘외국인 구금’
강제징집 피해 온 러시아인
조건부 입국 허가받았지만
출입국센터 내로 활동 제한
사실상 ‘무기한 구금 조치’
변호사 “중대한 인권 침해”
우크라이나 전쟁 강제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인 안드레이(30대·가명)는 최근 몸무게가 크게 줄었다. 20일 넘게 곡기를 끊은 탓이다. 인천 중구 영종도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 머물고 있는 그는 센터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처지다. 지난달 28일 법무부로부터 조건부 입국 허가를 받았는데, ‘무단이탈 불가’라는 조건이 달렸기 때문이다. 단식투쟁을 이어가던 안드레이는 “어제(10일) 두 차례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안드레이 등 러시아인 2명은 지난 1일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조치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는 난민 신청자들이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무부 소속 기관이다. 안드레이 측은 일종의 ‘기숙사’ 개념인 지원센터에서 사실상 ‘구금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안드레이는 지난해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 동원령을 내리자 급하게 비행기표를 구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안드레이 등 러시아인 5명은 난민 신청을 했으나 법무부는 심사 자체를 거부했다. 안드레이는 넉 달가량 공항 화장실 세면대에서 빨래를 하는 등 노숙 생활을 이어가다 법무부를 상대로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을 제기해 지난 2월 승소했다. 하지만 법무부가 항소해 ‘조건부 입국 허가’만 받은 상태다.
당시 입국 허가서를 보면, 안드레이의 행동 범위는 영종도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로 제한된다. 또 소송 확정 전까지 난민 신청을 할 수 없고, 지원센터를 무단으로 이탈할 수도 없다.
안드레이 측은 행정기관이 자의적인 기준으로 외국인을 구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송대리인 이일 변호사는 “거주지만 외국인지원센터로 제한된다고 생각했던 안드레이는 밖에서 러시아 음식도 먹고 필요한 물건도 살 생각이었다”면서 “센터 직원들도 처음엔 ‘외출 절차는 신고만 하면 된다’고 안내했다가 나중에 센터 밖으로는 일절 못 나간다고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외국인을 구체적인 요건과 기약도 없이 무기한 구금하는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했다.
안드레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범죄자도 아닌 사람을 무작정 가둬놓을 수 있냐”고 했다. 그는 “지금처럼 자유가 없는 생활이 지속되면 여기 머물 의미가 없다”면서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러시아 난민이 대거 유입되는 것이 싫어서 계속 시간을 끌고 보호조치도 안 해주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난민 신청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어 수업 등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무기한 구금’에 제동을 건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비춰봐도 법무부 조치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4일 헌재는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외국인을 국외로 추방할 때까지 계속 보호시설에 가둬둘 수 있도록 한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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