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국민보도연맹 희생자, 73년만에 첫 유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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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덕(87)씨의 아버지 홍채화씨는 1950년 7월5일 충북 충주시 살미면 싸리고개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충주 보도연맹 사건은 1950년 7월 4~5일 사이 6사단7연대 헌병, 충주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충주·원주·춘천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을 이 일대 '싸리고개'로 이송해 사살한 사건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은 충주 지역에서는 73년 만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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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취임 뒤 첫 유해발굴 행사 참석
홍병덕(87)씨의 아버지 홍채화씨는 1950년 7월5일 충북 충주시 살미면 싸리고개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나중에 집단사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서 아버지로 짐작되는 형체가 짓이겨진 주검을 수습해 묻었지만, 지금은 기일이 돌아와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아버지라고 믿고 묻은 주검의 옷색깔을 전해들은 어머니가 “아버지일 리 없다”면서 강하게 부정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사망 뒤 20여년간은 제사를 지냈으나 매년 제사 때마다 아버지 주검을 수습하지 못해 원통하다며 우는 어머니를 이기지 못했다. 홍씨는 아버지가 싸리고개에 묻혀 있다고 믿는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충주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관련해 유해발굴을 시작했다. 진실화해위는 11일 오후 2시 충북 충주시 호암동 749-4 건국대 실습농장 인근에서 희생자의 영령을 위로하는 개토제를 엄수한 뒤 본격 발굴 작업을 개시했다.
충주 보도연맹 사건은 1950년 7월 4~5일 사이 6사단7연대 헌병, 충주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충주·원주·춘천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을 이 일대 ‘싸리고개’로 이송해 사살한 사건이다. 발굴현장의 추정 유해는 50여구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 전향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관변단체다. 군경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 속에 구체적 불법행위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이들을 구금한 뒤 선별해 사살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20~30대 농민이었다. 이 사건은 2008년 3월부터 2009년 6월까지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를 진행해 한국전쟁 전후 충주지역에서 발행한 민간인 희생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로 결정한 18건 중 하나다.
진실화해위 조사 과정에서 당시 14살이었던 한 참고인은 “트럭에서 50~60여명이 내려 산으로 올라가는 광경을 집 마당에서 목격했는데,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은 포승줄로 묶여 있지 않았고, 일상복 차림이었으며, 이후 여러 명이 한 발씩 쏘는 총으로 난사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며 희생 장소를 확인하기도 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은 충주 지역에서는 73년 만에 처음이다. 충주 출신이기도 한 김광동 위원장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유해발굴 행사에 참석해 희생자를 기리고 행사 뒤에는 유가족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충주 글·사진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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