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타고 순식간에 산불 덮친 강릉…오후에 내린 비가 살렸다

이상헌 기자(mklsh@mk.co.kr)김혁준(kim.hyeokjun@mk.co.kr) 2023. 4. 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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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530개 면적 태우고 8시간만에 진화
11일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확산돼 인근 해변가 리조트에 옮겨붙은 후 불길이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강원도 강릉에서 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빠르게 확산하면서 큰 피해를 남겼다. 축구장 약 530개에 이르는 산림 379㏊가 강한 불길에 탄 것으로 파악됐다.

또 주택 40채와 펜션 28채, 호텔 3채 등이 전소되거나 부분 소실됐다. 전소 주택에서 80대 주민 1명이 숨진 채 발견되는 등 인명 피해도 나왔다.

이날 산불은 오전 8시 30분께 강릉시 난곡동 야산에서 시작돼 순간 최대 풍속 초속 30m 이상의 강풍을 타고 경포 일대로 급속히 번졌다. 일대에 짙은 연기가 도로는 물론 경포호수와 백사장까지 뒤덮어 시야를 가렸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기침을 유발했다.

순간 풍속 초속 30m의 강한 바람이 불어닥친 11일 강원 강릉시에서 가로수가 부러져 도로 위에 넘어져 있다. 연합뉴스

순간 최대 초속 30m의 강풍으로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흙과 쓰레기 등이 바람을 타고 곳곳에 날렸다. 도로표지판 등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사정없이 흔들렸다.

산림·소방 진화 인력은 물론 경찰과 군 병력까지 곳곳에 포진해 상황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경포호 인근 주민은 "안내 방송을 듣고 가족들과 황급히 몸을 피했다"며 "바람이 워낙 강하게 불어 차량까지 심하게 흔들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런 바람은 처음 겪어 본다"며 "일대 도로가 통제되고 온통 연기로 가득해 가족 모두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고 전했다.

이번 산불로 현재까지 주택과 펜션 등 72채가 잿더미로 변하거나 부분 소실된 것으로 파악됐다. 전소된 주택에선 80대 주민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주민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 주민과 소방대원 등 10여 명이 화상이나 연기 흡입 등으로 부상을 입었다.

주민들은 물을 퍼 나르며 불씨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강한 바람 탓에 손 쓸 틈이 없었다. 대피한 뒤에는 멀리서 뿜어져 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해했다. 최중호 씨(60)는 "집에 있다가 갑자기 전등이 탁 꺼지면서 정전이 됐다"며 "밖으로 나와 보니 옆집이 활활 타고 있었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산불이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경포동과 산대월리, 순포리 일대 주민 529명이 아이스아레나 등으로 대피했고, 인근 리조트와 호텔에 투숙했던 700여 명도 황급히 피신했다. 불길이 번진 경포대초등학교에선 학생 71명과 유치원생 11명이 황급히 버스를 타고 대피하는 등 곳곳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한때 불길은 민가는 물론 문화재까지 위협했다. 문화재청 측은 이날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강릉 경포대 인근으로 불길이 확산하자 현판 7개를 떼어내 오죽헌박물관으로 옮겼다. 국가민속문화재인 강릉 선교장에 살수 작업을 하며 소실 방지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강릉 '방해정' 일부가 소실됐고, 경포호 주변에 있는 작은 정자인 '상영정'도 피해를 입었다.

산불 직후 산림·소방당국은 대응 수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진화에 나섰으나 강풍 등 기상 악화로 헬기 투입이 지연되면서 피해가 급속히 커졌다. 산림청은 오전 10시 30분을 기해 산불 대응 3단계를, 소방청도 최고 대응 수위인 소방 대응 3단계와 전국 소방동원령 2호를 발령하고 대응에 나섰다. 산불로 소방 대응 3단계가 발령된 건 올해 들어 처음이다. 진화 작업에는 인력 2764명, 장비 400대가 동원됐다.

금방이라도 경포 일대를 집어삼킬 기세였던 불길은 오후 들어 비가 내리고 바람이 잦아든 가운데 헬기가 투입되며 빠른 속도로 잡혔다. 당국은 오후 들어 초대형 헬기 1대, 대형 헬기 2대 등을 투입해 오후 4시 30분께 주불 진화를 완료했다. 불길과 사투를 벌인 지 8시간 만이다.

이번 산불은 강풍에 소나무가 부러지는 과정에서 전깃줄을 건드려 불씨가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산림청은 국립산림과학원과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 관계자를 현장에 급파해 원인 조사를 벌이고 이 같은 1차 결과를 내놓았다. 현장에 단락된 전선과 발화 지점도 일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도 끊어진 전선을 증거물로 수집한 뒤 현장을 보존 중이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우선 전선 단락이 산불로 번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조사 과정에서 산불 원인 제공자가 있다면 산림보호법에 따라 형사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전했다.

[강릉 이상헌 기자 / 김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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