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도청 의혹은 거짓”…근거제시 없이 미국 두둔만
대통령실이 11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국가안보실 도·감청 정황이 담긴 ‘기밀문서’를 두고 “양국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고 밝혔다. 주권 침해를 입고도 미국에 사과 요구조차 하지 않는 것을 두고 ‘저자세’ 비판이 일자, “굳건한 한-미 정보동맹”을 내세워 서둘러 봉합하면서 오는 26일 한-미 정상회담으로 향하려는 모습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대변인실 명의로 이런 내용의 공지문을 내고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전날 “사실 확인이 우선”이라고 한 데서 나아가, 도·감청도 “거짓”이고 문서 내용도 “상당수 위조”라고 규정한 것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방미 출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오늘 아침에 양국 국방장관이 통화했고, 양국 견해가 일치한다”며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도·감청 의혹은 “(한-미 동맹에) 변수가 될 수 없다”며 “세계 최강 정보국인 미국의 역량은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 쪽에 입장을 전달)할 게 없다. 왜냐면 누군가가 위조를 한 것”이라며 “다만 미국은 법무부를 통해 경위, 배후 세력을 찾아내기 시작할 것이고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군사기밀 누출 언론 보도 상황을 설명하고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고 전적으로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국방부가 전했다.
하지만 “상당수가 위조”라는 대통령실의 주장은 “미국이 조사 중”이라는 설명과 모순될뿐더러, 백악관의 설명과도 온도 차가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0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일부(some of them)가 조작된 것을 안다”며 “당장 조작되지 않은 걸로 보이는 모든 문서들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도 한-미 국방장관 통화에 대한 브리핑에서 ‘어떤 부분이 위조된 거냐’, ‘미국 쪽이 어떤 설명을 했고 우리 장관이 어떻게 답했나’라는 질문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대통령실은 위조로 판단하는 근거도 구체적으로 내놓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위조 판단의 근거를 묻자 “어떤 문제에 대해 언제 어떻게 얼마나 아는지도 굉장히 중요한 기밀 사항일 수 있어 직접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 중앙정보국 기밀문서에 등장한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실 자체 조사 과정에서 “보도 내용과 (실제 대화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은 한국산 155㎜ 포탄 33만발을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우회 지원하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기밀문서에 나온다.
대통령실은 도·감청 여부에는 말을 아끼면서, 이번 일을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 연결 짓는 시각은 정면으로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더불어민주당은 ‘용산 대통령실 이전’으로 도·감청이 이뤄졌다는 식의 허위 네거티브 의혹을 제기해 국민을 선동하기에 급급하다”며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핵 위협 속에서 한-미 동맹을 흔드는 자해 행위이자 국익 침해 행위”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청와대 시절 대통령 보안을 중심으로 해 본관 도·감청 방지 시설을 우선적으로 하고, 비서동 보안 시설은 본관만 못한 게 사실이었을 것이다. 용산 이전 뒤에는 대통령과 참모들이 한 건물에 근무해 용산 청사 자체가 대통령 집무실과 같은 수준의 보안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위조됐다는 문서를 직접 원본 문서와 대조해서 확인하고 미 정보기관의 도청이 없었다는 것도 분명히 확인했냐”며 “이 같은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거짓 해명이고 ‘날리면 시즌2’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에 “우리 정부는 철저하게 조사해서 문제가 발견되면 확실히 제기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며 “우방국 미국에 대해 우리의 당당한 태도가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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