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의 최대 문제는 학부모…교사에게 더 많은 권한 줘야”[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최민영 기자 2023. 4. 1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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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예방 전문가, 성윤숙 선임연구위원
학교폭력 예방 전문가인 성윤숙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4일 세종특별자치시 소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성 연구위원은 “불복 시비가 잇따르고 있는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결정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려면 어디서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기준을 만들고, 현재 30%인 학부모 비율을 줄이고 전문가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학교폭력 예방 전문가다. 학교폭력예방교육지원센터장을 지내며 학폭 예방 어울림 프로그램 개발의 연구책임자로 일했다. 숙명여대에서 아동복지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교육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현재 교육부,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약계층 청소년 지원정책 진단 및 제도 보완 연구’ ‘학교 밖 청소년 이행경로에 따른 맞춤형 대책’ 등을 연구했고, <온라인 게임과 청소년의 삶>을 썼다. 2017년 정보 문화 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애들끼리는 화해했는데 부모들 간 감정싸움
해결 가능한 문제도 변호사 동원해 사안 키워

학교폭력은 학교라는 공간, 학생이라는 시기에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는 어른이 돼도 몸과 마음의 후유증을 겪는다. 가해자의 반사회적 성향은 가정과 직장에서도 이어진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은 ‘방 안의 코끼리’처럼 모두가 알지만 여러 차례의 정부 대책으로도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학교폭력 예방 전문가인 성윤숙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지난 4일 세종시에서 만났다. 성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학교폭력 문제의 중심에는 자녀의 인성과 가치관 그리고 사회성에 큰 영향을 주는 학부모가 있다”며 “이들이 특권의식으로 아이들의 따돌림 문화를 조장하고, 해결 가능한 학폭 문제도 변호사를 동원해 사안을 키우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폭 문제에 있어 담임교사 역량 강화와 함께 더 많은 권한 부여가 필요하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전문가 비율을 올려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 장기간 학교폭력을 목격해도 피해자와 비슷한 수준의 심리적 스트레스와 외상을 경험한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학폭 피해는 전체 초·중·고생의 1.7%(교육부 집계)라는 통계로만 봐서는 안 되는 문제입니다.

“나도 저런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더불어 피해자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는 양심의 가책과 무력감 때문에 우울하고 불안해지는 겁니다. 학폭의 악영향은 예상보다 광범위합니다. 학폭 가해자들은 드라마 <더 글로리>의 연진처럼 졸업 이후 직장을 비롯한 사회관계에서도 동일한 지배적 공격성을 보입니다. 학교에서 가해자를 교정하지 못하면 피해가 사회 전체에 미칩니다. 안전한 사회는 안전한 학교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 코로나19 이후 재등교와 함께 학교폭력이 다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비중이 가장 높은 유형은 언어폭력이고 이어 집단따돌림, 신체폭력, 사이버폭력의 순입니다. 힘의 불균형 상황에서 약자를 괴롭히면서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아이들일수록 자기 존중감이 낮은 경우가 많아요. 2019년 저희가 개발한 학폭 예방 ‘어울림 기본’ 프로그램의 갈등 해결 프로그램(인정·사과·약속)을 적용한 결과 아이들끼리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효과가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애들끼리는 화해했는데도 부모들 간에는 감정싸움으로 번져 법적 조치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 학교폭력을 부모가 키운다는 건가요.

“외동 자녀가 많고 기대 수준도 높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인데, 교육제도 안에서 공정한 문제 해결을 기다리지 않고 피해자든 가해자든 일단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으로 해결하려 듭니다. 1000만원에서 최고 5000만원씩 드는 변호사 비용도 마다하지 않아요. 승소하면 상대편에 비용 부담을 전가하면 된다는 식입니다. 좋은 변호사를 쓰면 자신이 상황을 주도할 수 있다는 태도가 팽배합니다. 학부모가 학교폭력 조치에 불복해 교사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나 직권남용 등 혐의로 형사고발하고,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거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학부모 교육이 정말 필요한 현실입니다.” 교권 침해 지적을 받는 학부모들의 교직원 상대 소송은 아직 정부 통계조차 없다.

- 교육당국을 못 믿어서일까요.

“2019년 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장에게 경미한 사안의 경우 자체 종결할 권한을 주고 처벌보다는 선도를 하도록 했습니다. 전치 2주 이상의 진단서가 발급되지 않고, 재산상 손해가 없고, 지속적이지 않은 사안이 이에 해당됩니다. 2020년부터는 단위학교별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를 폐지하는 대신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심의 기능을 이관해 학부모와 학교 간 분쟁을 줄이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학교장에서 끝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학폭위로 넘어갑니다. 문제는 학폭위의 전문성입니다. 재적 위원 3분의 1이 학부모인데, 매뉴얼이 있어도 사안마다 조치 결정이 들쑥날쑥해 신뢰성이 떨어집니다. 비슷한 사안인데도 어디서는 서면사과 조치를 내리고, 다른 데서는 사회봉사 조치가 나오는 식입니다. 이는 가해 학생·학부모가 결정에 불복하는 원인이 됩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20~2022년 가해 학생이 학교폭력 조치사항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청구한 건수는 2077건, 행정소송은 575건에 달한다. 낙마한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처럼 자녀의 학폭 징계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전을 벌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무원 징계처럼 등가성 원리의 기준 만들고
학폭위에 전문가들 비율 늘려서 신뢰 높여야

-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일단 공무원 징계절차처럼 전국 어디서나 등가성의 원리에 따라 공정하게 적용되는 기준이 마련돼야 합니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학교폭력 유형을 언어, 신체, 사이버 폭력 등 행위 유형 중심을 넘어 더 체계적으로 세분화해 범주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현재의 학교장 자체 해결과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의 두 범주에 더해 담임교사 종결과 경찰 종결의 두 범주를 추가하고, 이 네 범주에 포함될 학교폭력 행위를 세분화해 포함시키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특히 간단한 갈등은 교사 선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교사에게 책임과 권한 관계를 명확히 해줘야 합니다. 교실은 교사가 가장 잘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육적 해결을 시도하면 부모들이 아동학대 혐의로 교사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게 현실이에요. 게다가 교사가 소송비용 대부분을 부담해야 합니다. 요즘은 선생님들이 이에 대비한 보험까지 든다고 해요. 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교사들에게 학생생활지도 권한이 생긴다지만, 실효성은 충분해 보이지 않습니다.”

- 미국은 ‘변호사의 나라’로 불릴 정도인데, 한국처럼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소송은 없습니까.

“한국처럼 학폭 문제에 변호사 많이 쓰는 나라도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의 경우 입학 때 민주적 공동체로서 교사, 학생, 학부모 대표가 모여 생활협약을 맺습니다. 휴대폰 소지 여부, 학교폭력 징계 등에 대해 동의절차를 밟고 서명을 합니다. 싱가포르의 경우 가해 학생 학부모가 별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았다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자녀가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제대로 교육 못한 부모도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가해자 학부모 대상 교육이 권장될 뿐 안 받아도 그만입니다.”

학폭에 엄벌 강화는 큰 틀에서 볼 때는 옳지만
피해자 보호엔 더 불리…소송 횟수 제한 필요

- 발표 예정인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은 ‘엄벌주의 강화’로 예고됩니다. 중대 학폭은 최대 10년간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보존해 취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교육법 일부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고교 학교폭력이 중학교에 비해 적은 데는 생기부 기재와 입시 영향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강화 방향은 큰 틀에선 옳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엄벌이 아닌 원칙에 따른 공정성과 일관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순신 변호사 아들처럼 고교 졸업 때까지 소송을 질질 끌거나, 전학(8호)이나 퇴학(9호) 처분을 더 낮은 수준으로 낮추려는 시도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가해 학생의 분리조치도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터라 피해자 보호에 더 불리합니다. 학폭 조치에 대한 불복 소송에 대해서는 횟수나 기간을 제한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피해 학생 보호도 강화해야 합니다.”

<더 글로리> 넷플릭스 제공
<니 부모 얼굴이…> 마인드마크 제공

최근 대중문화계에 <더 글로리>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비롯해 학교폭력의 폐해를 다룬 드라마 콘텐츠가 잇따르고, 과거 학폭 가해 사실이 폭로된 유명 인사들이 업계에서 퇴출되고 있다. 학폭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감수성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학생 엄벌이라는 가지치기만으로는 썩은 뿌리를 잘라내기 어렵다. 성 선임연구위원은 “극단적 피해 사실이 보도되면 학폭 논의가 불붙다가 땜질식 처방 이후 사그라드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 학교폭력은 예방이 중요한데, 한국은 2012년 노르웨이를 벤치마킹한 ‘멈춰!’ 예방 프로그램 적용이 흐지부지됐죠.

“한국은 장시간 노력이 드는 예방보다는 빠른 처벌로 학폭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합니다. 저희 연구원에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90종을 개발했는데, 학교 현장에서 11회 수업 일정만 잡아놓고 성적 위주의 과목 수업을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학교를 친사회적 문화로 바꾸려면 관리자인 교장·교감급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정서 역량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미국의 경우 학교폭력·자살·학업중단·성문제·약물 등에서 장기적으로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사회정서 역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년 보고서를 낼 정도로 균형 잡힌 시민을 키워내는 데 중요합니다.”

<돼지의 왕> 티빙 제공
우등생 성공시대 끝나고 이젠 ‘인성’ 성공시대
기성세대가 먼저 배려와 존중의 모습 보여야

- 가해 학생의 재교육도 중요하죠.

“저는 학폭 예방 기본교육을 학교에서 받지 못한 채 가해자가 되는 학생도 큰 맥락에서는 피해자라고 봅니다. 어릴 때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탓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사회경력이 끝장나고,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삶을 살게 되니까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타자 지향성이 있는 만큼 가해 학생도 사랑과 이해를 받으면 변화가 가능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모도, 학교도, 정부도 아이들을 안전한 학교에서 올바르게 키우겠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저출생으로 아이들도 줄어드는데 제대로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학교 밖 청소년 비율은 2.6%지만 학폭 사건으로 검거된 인원의 35.5%를 차지합니다.

“현재 학교폭력 해법은 학교 안의 해법일 뿐 학교를 벗어나면 안전망에 허점이 많습니다. ‘꿈드림센터’를 비롯한 지원체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 학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최근 학폭 추세를 보면 중심에 ‘특권의식’이 똬리를 튼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끼리끼리 어울리고, 자녀에겐 ‘쟤하고는 어울리지 말라’며 친구까지 정해줍니다. 친구를 학교에서 두루 사귀어야 하는데 오히려 배척하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기성세대가 차이를 존중하지 않고 차별하니까 학교에서 문제가 빚어지는 거죠.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극심한 성적 경쟁 속에 아이들은 타인을 배려할 여유를 배우지 못하는데, 4차 산업혁명에 접어들면서 공부만 잘하면 성공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인성이 성공’인 시대예요.”

“미디어·게임에 노출되며 폭력 ‘무감각’…스마트폰이 학폭 심화에 적잖은 영향”


“사회적 환경 고려, 유치원부터 학교폭력 예방교육 시작할 필요성”

성윤숙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초등학생인 두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구입 계획도 없다고 했다. 자녀의 친구들은 필요할 경우 성 선임연구위원을 통해 아이들에게 연락한다. 스마트폰이 없지만 ‘왕따’를 당하는 일도 없다. 오랫동안 게임중독을 연구한 그는 “최근 학교폭력이 더 잔인해지고 심해진 데는 아이들이 폭력적인 미디어와 게임에 노출된 영향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쥔 아동·청소년은 호기심에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청소년 관람 불가 콘텐츠도 거리낌없이 본다. 게임에서 쓰는 ‘패드립’을 일상 대화에서도 쓴다. 다른 캐릭터를 죽여야 자신의 레벨이 올라가고, 캐릭터의 죽음을 리셋으로 무효화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폭력에 무감각해진다. 사이버 폭력의 경우 24시간 스마트폰을 통한 괴롭힘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는 “유명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들이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을 안 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회 환경을 고려하면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7세부터 아동의 자아가 생성되면서 타인을 괴롭히려는 성향을 보일 수 있으므로, 이때부터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고, 힘이나 권력을 얻기 위해 타인을 강압하지 않도록 하는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급 토론을 통해 폭력과 장난을 구분하고, 공동체 협약을 통해 폭력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아이들이 분명하게 인지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는 “이는 장기적으로 세계시민 교육이자 융합인재 교육”이라며 “이런 학교 분위기가 조성될 때 아이들은 폭력의 두려움 없이 안심하고 학교 생활을 하고 바람직한 자아실현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영 논설위원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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