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릉 산불’ 잿더미 된 상영정…문화재·주택에 남은 검은 상흔

강릉=홍인석 기자 2023. 4. 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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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어떡해..."

강릉에서 축구장 518개에 달하는 면적을 잿더미로 만든 대형 산불이 발생해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현판 7개를 떼 인근 오죽헌박물관으로 옮기기도 했고, 국가 민속 문화재인 강릉 선교장도 살수 작업을 단행했다.

갖은 노력에도 일부 문화재가 잿더미가 되고 주민이 사망하자 강릉시 주민들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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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518개 태운 산불로 피해 속출
문화재도 소실…주민들 “안타깝다”
강원도 강릉에서 산불이 발생해 비지정 문화재 상영정(觴詠亭)이 불에 탔다./홍인석 기자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어떡해...”

11일 찾은 강원도 강릉시 경포호 인근. 전소된 비지정 문화재 상영정(觴詠亭)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상영정은 1886년 강릉 지역 향토유림 16인이 상영계(觴詠契)를 조직해 건립한 역사 깊은 정각이다. 경포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관광객과 인근 주민이 즐겨 찾는 곳. 조그마한 단층 건물로 언덕을 지켰지만 지금은 검은색 잿더미로 주저앉아있다.

오가는 사람을 맞이하던 모습은 사라진 채 형체 모를 기왓장과 나무들이 퀴퀴한 냄새와 섞여 나부꼈다. 상영정 주위를 감싸고 있던 소나무도 불타 허허벌판으로 변했다.

강릉에서 축구장 518개에 달하는 면적을 잿더미로 만든 대형 산불이 발생해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문화재가 불에 타는가 하면 펜션 등 관광객이 머무는 숙박시설도 불길을 피하지 못해 무너졌다. 주불을 진화한 소방당국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잔불 정리에 나섰다. 소방관들은 불길을 잡은 언덕 위에서 물줄기를 뿌리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

11일 산림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22분쯤 발생한 산불 영향으로 370ha가 피해를 봤다. 주택 40채와 펜션 28채, 호텔 3채 등 건물 71채도 불에 탔고, 시도유형문화재인 방해정(放海亭)과 비지정 문화재 상영정이 각각 일부 소실, 전소했다. 인근 마을 주민 530여 명도 강릉 사천중학교와 아이스아레나 등으로 대피했다.

그러나 불에 탄 주택에서 80대 남성이 발견되는 등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그는 안현동에 있는 펜션 업주로 알려졌다.

강원도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월사 터 일부가 소실됐다./홍인석 기자

산림청은 산불 발생 후 대응 단계를 3단계로 올리면서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다. 산불 진화 ‘주요 전력’으로 꼽히는 헬기도 투입하지 못했다. 소방당국은 바람이 다소 멎자 곧장 헬기 4대를 출동시켰고 오후 4시 40분쯤 주불 진화에 성공했다. 추가 산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망하며 잔불을 정리하고 있다.

한 소방당국 관계자는 “주불 진화에 성공해 한숨을 돌렸다”면서도 “오늘처럼 바람이 강할 때 잔불이 남아있으면 다시 큰불로 이어질 수 있다. 잔불 정리와 감시가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상영정 인근에 있는 인월사 터 역시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전소는 막았지만 창호지 일부분과 사라졌고 건물 곳곳에 화마가 지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인월사 터에 있는 또 다른 건물은 창문이 시꺼멓게 그을려 형체만 겨우 간직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차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안타깝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인월사 터와 달리 인월사는 완전히 불에 탔다. 문화재 보유 사찰은 아니지만 주변 경관이 뛰어나고 신라 때 화랑들이 단련했던 사찰로 알려져 관광객이 즐겨 찾던 곳이다. 시도 유형문화재 방해정 역시 일부 소실됐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경포대 주변에 물을 뿌렸다. 현판 7개를 떼 인근 오죽헌박물관으로 옮기기도 했고, 국가 민속 문화재인 강릉 선교장도 살수 작업을 단행했다. 갖은 노력에도 일부 문화재가 잿더미가 되고 주민이 사망하자 강릉시 주민들은 혀를 찼다.

식당을 운영하는 최모씨(60)는 “지난해에는 울진과 삼척에 불이 나 강원도가 애를 먹었는데 이번엔 강릉이 산불 피해로 흉터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재도 무너지고 펜션을 운영하는 주민도 사망해 마음이 좋지 않다”며 “더는 산불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산림청과 소방당국 등은 이번 산불 원인을 ‘전선 단락’으로 추정하고 있다. 거센 바람으로 나무가 부러졌고 이 과정에서 전선을 단락시켜 전기불꽃이 발생해 산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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