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2월보다 침체에 무게 … 금리 인하 언급은 부적절” [기준금리 2연속 동결]

이병훈 2023. 4. 1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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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銀 ‘3.50% 유지’ 배경
‘경기’ 26차례 말해 불확실성 작용 암시
SVB 사태 등 신규 글로벌 악재도 영향
3월 물가 상승률 하락에 ‘숨고르기’
‘금리 더 올려 부담 줄 필요 없다’ 판단
금리 인상기 사실상 마무리 평가 불구
“기대 과하다” 추가 인상 가능성 열어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지난 2월에 이어 기준금리를 현행 3.50%로 두 번 연속 동결하면서 2021년 8월부터 총 10차례 기준금리를 3%포인트 올린 ‘금리 인상기’는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자간담회 갖는 李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4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현행 3.5%에서 동결했다. 이재문 기자
경기침체의 골이 지난 2월 금통위 회의 때보다 더욱 깊어진 점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한은은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하향 조정했고, 세계 투자은행(IB)은 우리 경제 성장률이 1%대 초반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의 예상대로 3월 들어 물가상승률이 하락하면서 추가 금리 인상으로 경기에 부담을 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번 전망보다는 (경기침체에) 무게를 뒀다”면서도 “금리 인하 언급은 부적절하다”며 물가 안정이 금리 결정의 최우선 요소임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11일 통화정책 방향 결정회의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기’를 26번 언급하면서 이번 기준금리 동결의 배경에 경기침체 요인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작용했음을 암시했다.

이 총재는 그간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물가가 기준금리 결정에 가장 우선하는 요인”이라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 왔으나, 이번 결정에는 최근 악화한 경기와 글로벌 금융 불안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고려 사항으로 깊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총재는 모두발언에서도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크레디스위스(CS) 사태, 국내 정보기술(IT) 경기 부진 심화, 산유국 감산 결정 등 우리 경기의 다양한 불확실성 요인을 언급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월 발표(1.6%)보다 밑돌 것으로 봤다.

최근 우리 경기가 악화하는 지표가 연이어 발표되면서 침체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 수요 감소로 인한 수출 부진으로 2월 경상수지는 11년 만에 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 1분기 이후 11년 만에 분기 적자가 가시화하는 상황이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 역성장을 기록했으며, 올해 1분기 상승 전환도 미지수다.

외부 전망도 비관적이다. 글로벌 IB들이 지난달 말 보고서를 통해 예상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1%에 그쳤다. 0%대나 심지어 역성장할 것으로 본 IB도 있었다. 한은이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으로 시장에 부담을 더하는 결정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금리 결정에 경기침체를 고려하는 ‘여유’를 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최근 다소 안정된 물가상승률 흐름이 바탕이 됐다. 이 총재의 발언처럼 한은의 금리 결정에는 물가 상황이 가장 우선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올라 2월(4.8%)보다 상승률이 0.6%포인트 떨어졌다. 지난해 3월 이후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달 이 총재는 3월 물가가 4.5% 이하로 떨어지고 연말 3%대에 이를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에 부합하는 물가 흐름이 나타나자 금리 ‘숨고르기’에 나설 수 있었던 셈이다.
이 총재는 2월 금통위 당시 불확실성 요인을 ‘안개’로 비유한 것을 언급하면서 “지난번 (금통위) 회의 이후 물가 경로 등 기존 불확실성은 명확해진 반면, (최근) SVB·CS 사태 등 여러 일이 새로운 불확실성을 더 많이 제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상승률은 한은의 예상 경로대로 움직이고 있으나, 글로벌 금융 불안이 우리 경기를 추가로 위협하면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진단이다.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내걸린 대출 현수막. 연합뉴스
시장의 이목은 금리 인하 시점으로 쏠리고 있다. 한은은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날 금통위원은 6명은 만장일치로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도 5명은 최종금리 전망치를 현재 기준금리보다 0.25%포인트 높은 3.75%로 제시했다. 하반기 물가상승률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짙은 만큼,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도 이날 “물가가 연말 목표 수준인 3% 초반 이하로 떨어져 중장기 목표(2%대)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금리 인하를)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금통위원 중에서도 (금리를 조만간 인하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과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이날 결정으로 한·미 금리 차는 추가로 벌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현행 4.75∼5.00%인 정책금리를 추가로 0.25%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현행 1.50%포인트(상단 기준)인 한·미 금리 차는 1.75%포인트로 벌어지게 된다. 1.75%포인트 차이는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 한국과 미국 간 금리 차가 확대되면 일반적으로 환율 상승, 외국인 자금 유출 기조가 강해져 금융·외환 시장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병훈·유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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