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속 몸만 빠져나온 주민 망연자실…강릉 산불에 축구장 530개 잿더미

2023. 4. 1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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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주택 인근으로 번지자 주민들이 화재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11일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축구장 면적 530배에 이르는 산림이 소실되고, 주택과 펜션 등 시설물 101곳이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주불은 산불 발생 약 8시간 만에 진화가 완료됐다. 순간풍속 초속 30m에 달하는 강풍 탓에 산불 진화의 핵심 전력인 헬기의 발이 묶였으나 오후 들어 바람이 잦아들고 천둥·번개를 동반한 거센 소나기가 내린 덕분이다.

강원도는 피해지역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건의할 방침이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인한 산림 피해 면적은 379㏊다. 축구장 면적(0.714㏊)으로 따지면 530배에 이르는 규모다.

시설물 피해로는 주택 59채, 펜션 34채, 호텔 3곳, 상가 2곳, 차량 1대, 교회시설 1곳, 문화재 1곳 등 총 101개소가 전소되거나 일부가 탔다.

안현동 한 주택에서 8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주민 중 1명은 대피 중 2도 화상을, 진화대원 2명도 가슴에 2도 화상을 입는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불이 나 주택이 전소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현재 강릉에는 강풍경보와 건조경보가 동시에 내려져 있다. [연합]

대피 인원은 총 557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대부분 대피령이 내려진 경포동과 산대월리, 순포리 주민들로 아이스아레나와 사천중학교로 각각 528명과 29명으로 나뉘어 대피했다. 인근 리조트와 호텔 등에 투숙했던 708명도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이날 산불 진화에는 헬기 4대와 장비 396대, 진화대원 등 2764명이 투입됐다.

산림 당국은 화재 초기에 8000L(리터)급 초대형 헬기를 비롯해 헬기 6대를 투입했으나 순간풍속이 초속 60m에 달하는 태풍급 강풍에 회항해야 했다.

오후 들어 바람이 평균풍속 초속 12m, 순간풍속 초속 19m로 잦아들면서 오후 2시 40분께 헬기 4대를 투입해 진화에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 3시 30분께 강릉 일대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거센 소나기가 내렸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불이 난 가운데 소방대원이 주택으로 옮겨붙은 불을 진화하고 [연합]

긴장감이 맴돌던 산불 현장에는 ‘단비’ 덕에 진화율이 올랐고, 일몰 전 주불 진화에 성공했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마지막까지 불을 다 진압하고, 재산 피해를 더 확실하게 조사해서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되도록 중앙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화마에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강풍을 타고 급속도로 번지는 산불 앞에서 겨우 몸만 빠져나온 주민들은 세간살이가 잿더미로 변해가는 모습을 하릴없이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허탈하게 불이 난 집을 바라보는 주민,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오열하는 주민,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경찰에 제지당하는 주민 모습 등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확산되는 가운데 해변가 리조트 인근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연합]

강릉을 상징하는 대표적 침엽수인 소나무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소나무 숲을 벗 삼아 영업을 이어온 펜션들을 잇달아 집어삼켰다. 산불은 태풍급 강풍을 타고 경포해변까지 덮쳤다.

이번 산불의 원인은 강풍으로 말미암은 ‘전선 단락’으로 굳혀지는 모양새다.

산림청은 산불이 발생하자 곧장 국립산림과학원과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 관계자를 현장으로 급파해, 발화 추정지점을 보존하고 원인 조사에 나섰다.

1차 조사 결과 강풍으로 나무가 부러지면서 전선을 단락시켰고, 그 결과 전기불꽃이 발생해 산불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 단락된 전선과 발화지점이 일치하는 점, 지역 주민들도 비슷한 시간에 정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확산되는 가운데 해변가 리조트 인근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연합]

조사에 참여한 경찰은 끊어진 전선을 증거물로 수집한 뒤 현장 보존을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산림청은 조사 결과에 따라 산불 원인 제공자에게 산림보호법에 따른 형사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산불 발생과 확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봄철 대형산불 주범인 ‘양간지풍’이 꼽힌다.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고도 불리는 이 바람은 ‘양양과 고성 간성 사이에서 국지적으로 부는 강한 바람’을 일컫는다. 이날 강릉을 강타한 양간지풍 역시 나무를 부러뜨려 전깃줄을 덮쳐 발화의 빌미를 줬다.

또 산불 초기 진화의 핵심인 헬기를 뜨지 못하게 해 공중 진화를 무력화시키는가 하면 ‘비화(飛火)’ 현상을 통해 경포 전역을 순식간 연기에 휩싸이게 했다.

11일 산불이 발생한 강릉시 저동 야산 인근에서 주민 이세기(64) 씨가 집이 전소된 뒤 살아남은 키우던 소를 가족과 함께 구출하고 있다. 이씨는 이곳 저동 야산 아래 42년째 거주 중이었으나 이번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 키우던 소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화마에 도망갔고 두 마리는 구출됐다. [연합]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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