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몇 번으로 공공기관에 내 정보 거부할 수 있어야”

정인선 2023. 4. 1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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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디지털 정부, 현장을 가다]
⑤전문가 좌담회
최돈위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왼쪽부터), 송호철 더존비즈온 플랫폼사업부문 대표, 배순민 KT융합기술원 AI2XL 소장,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겨레>는 지난 1~2월 부작용은 최소화하며 효율성은 높이는 공공부문 디지털 전환의 전제 조건을 찾아, 에스토니아·덴마크·영국·싱가포르 등 앞서 이 길을 먼저 간 나라들을 현장 취재했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 선진국들엔 이용자 중심 서비스 설계, 적극적인 데이터 공유, 철저한 보안 등 여러 공통점이 있었다. 다만 각 나라가 처한 사회적 맥락이 서로 달라, 이를 한국 사회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디지털 플랫폼 정부 전환 준비 작업에 참여 중인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한겨레>가 취재·보도한 선진국 사례에서 배울 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분과별 위원인 송호철 더존비즈온 플랫폼사업부문 대표(인프라 분과), 배순민 케이티 에이아이투엑스랩(KT AI2XL) 소장(인공지능·데이터 분과), 최돈위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일하는 방식 혁신 분과), 최경진 가천대 교수(정보 보호 분과)가 참여했다.

― 여러 부처의 전자정부 시스템이 하나의 플랫폼에 통합되면 국민 일상이 어떻게 변할까?

배순민 소장(이하 배) =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구축하는 건 결국 ‘창구 일원화’를 한다는 거다. 공무원들이라면 부처별로 업무가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지만 국민들은 그렇지 않다. 창구가 파편화돼 있으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디에 가서 누구를 찾아야 관련 법규에 대해 설명해주는지 알기 어렵다. 그걸 일일이 알고 있지 않아도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

챗봇이 됐건, 음성비서가 됐건, 인터페이스가 쉬워지는 것은 노약자나 장애인 등을 위해서뿐 아니라,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더 많은 외국인이 국내에 정착해 일하고 소비하도록 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지금은 공공 시스템의 대다수 정보가 한국어로 돼 있다. 외국인 접근성이 떨어진다. 디지털화와 인터페이스 혁신이 이뤄진다면 이들이 우리나라에 녹아들기도 쉬워질 거다.

송호철 대표(이하 송) 데이터에 기반해 선제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도 큰 변화다. 지금까지의 전자정부는 국민이 요청한 것에 대응하는 구실밖에 못 했다. 전자정부에 이미 수많은 데이터가 있지만 파편화돼 있고, 정리가 안돼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가능해지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출생 신고부터 지원금 신청까지 국민 개개인에게 필요한 걸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여러 전자정부 서비스를 한 플랫폼에 모아내는 게 그동안 왜 어려웠나?

= 에스토니아는 인구 133만여명의 작은 나라다, 정부 서비스 디지털화 추진 시기도 소련에서 독립한 직후이다 보니 ‘백지’에서 시작해 극복해야 할 ‘레거시’(유산)가 없었다고 들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 조직을 만든지도, 전자정부 시스템을 구축한지도 오래되다 보니 극복해야 할 레거시가 상대적으로 많다. 예를 들면, 정부가 민간 기업들에 개발 과제를 내려 주고, 기업이 납품하는 방식 자체가 소프트웨어의 성격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모든 소프트웨어의 생명력은 유지·보수에서 나온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그때는 옳았던 게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를 납품한 업체가 정부 부처에 “이제는 버전 2.0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러게 왜 버전 1.0을 제대로 안 만들었냐”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니 연속성 있는 디지털 서비스 설계와 운영이 어려웠다.

송 = 그동안은 전자정부 시스템 구축의 많은 부분을 민간에 위탁하다 보니, 정부가 큰 차원의 기술적 로드맵을 갖고 움직이기 어려웠다. 여러 정권을 거칠 때마다 기술적 로드맵을 발전시키거나 조정하지 못하고, 새로운 좋은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거기에 휩쓸려 다녔다. 그리고 그게 부처마다 다 따로따로 이뤄졌다. 정부가 기술 측면의 확고한 리더십을 가져가는 동시에 부처간 사일로(장벽)를 허물려면, 여러 부처의 디지털화 사업 기획·예산 배분·실행 과정을 총괄하는 ‘시티오’(CTO·최고기술책임) 조직을 따로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기존에 개별 부처 단위로 구축된 시스템을 국민들이 이용하기 편하도록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거기서 나오는 데이터를 가지고 찾아가는 서비스도 만들 수 있다.

― 지난해 민간 서비스인 카카오톡이 ‘먹통’이 됐을 때 국민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 공공 서비스의 경우 장애 발생 시 혼란이 더욱 클 수 있다. 최근 크고 작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르면서 부처 간, 공공과 민간 간 안전한 데이터 공유가 가능한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최경진 교수(이하 경) = 지능형 기술이나 데이터를 모든 곳으로 흐르게 하면 ‘빅브러더’ 등장에 대한 우려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를 해결하려면 지금처럼 형해화된 방식으로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주체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제·개정하는 등 명확한 법적 근거를 우선 획득해야 한다.

투명성 확보도 중요하다. 개인정보가 정말 처음 고지한 목적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국민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대시보드’로 보여주거나 알림을 보내 알려줘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기관은 더이상 내 정보를 안 가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클릭이나 터치 몇 번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까지 가능해야 한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의 개인정보처리자들도 스스로 내부 통제를 제대로 해야 한다. 또 이를 정부가 바깥에서 꾸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최돈위 교수(이하 최) = 디지털플랫폼정부의 지향점 중 하나가 ‘디지털로 가치를 창출한다’이다. 단순히 행정 업무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걸 통해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게 궁극적 목적이라는 의미다. (인공지능 기반 정책 결정 등에)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비식별화, 가명화 등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조치를 철저히 한다면 위험은 줄이는 동시에 사회적 효익을 높일 수 있다.

미국에선 시민들의 의료기록을 비식별화 조처를 한 뒤 학자들에게 연구용으로 제공한다. 환자들의 거주지와 입원 기간, 재입원 여부 등 정보를 바탕으로 어느 지역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이 낮은지 알아낼 수 있다면, 어디쯤에 어떤 과목 병원을 더 지어야 하는지 제시할 수 있다.

경 = 인프라는 다소 낙후됐지만 자연 경관 등이 좋은 지방 소도시 가운데 임의로 시범 지역을 선정해 행정 실험을 한 뒤에 전국 확산 여부를 검토한다면, 수도권 인구 밀집을 해소하는 데에도, 부작용 적은 공공부문 디지털 전환을 이루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 행정업무 자동화가 공무원 일자리를 앗아갈 수 있다는 반감도 적지 않다.

= 새로운 기술이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이야기는 산업혁명 때부터 나왔다. 우리 사회의 탄력성이 그렇게까지 낮지는 않다고 본다. 다만 노동력 재배치 논의가 미리 이뤄져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가 목표한 수준에 단계적으로 다가갈수록 행정력 절감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고 고용의 유연성이 높고 사회안전망이 탄탄한 덴마크처럼 공무원들을 해고할 수는 없다. 복지 수급 대상을 선별하는 데 드는 행정력을 아껴서 긴밀한 대면 접촉이 필요한 업무에 자원을 더 투입한다면, 국민들에게 더 질 높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거다.

진행·정리/정인선 기자 ren@hani.co.kr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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