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만에 새 車공장 들어선다… 현대·기아차, 국내 부지 택한 3개 요인
현대차그룹은 11일 경기 화성에서 29년 만의 국내 새 완성차 공장을 새로 짓기 시작했다. 이 공장은 국내 첫 전기차 전용 공장이자, 세계 최초 PBV(목적 기반 차량, Purpose Built Vehicle) 전용 공장이기도 하다. PBV는 화물 배송용 밴이나 이동형 사무실 등 기업들의 다양한 목적에 맞게 맞춤 제작하는 차량을 가리킨다. 전기차 시대에 생길 다양한 수요에 대응할 차량으로 주목받는다. 기아 화성 공장 내 3만평 부지에 1조원을 투자해 2025년 하반기부터 연 15만대 규모를 생산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이 공장을 비롯한 국내 생산 설비를 글로벌 전기차 경쟁의 핵심 거점으로 삼을 계획이다. 2030년 생산 목표인 전기차 364만대 중 절반에 가까운 151만대를 국내에서 만들기로 했다. 현재 12종인 전기차 제품도 2030년 31종으로 늘린다. 이를 위해 올해 안에 현대차 울산 공장에도 새 전기차 공장을 짓는다. 기존 내연기관 생산 라인을 전기차 생산 설비로 바꾸는 작업도 곳곳에서 한창이다.
지난 29년간 현대차·기아는 국내에서 새로 공장 하나 짓지 않았지만, 해외 10국에 16개 공장을 세웠다. 마지막으로 국내 공장을 지을 당시인 1997년 현대차·기아의 국내 생산량은 연 185만대였다. 이후 생산량은 작년 기준 국내 319만대, 해외 360만대 등 연 679만대로 늘었다. 연간 30만대를 생산하는 현대차 아산 공장에 약 4000명이 근무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간 약 5만개의 일자리가 해외에 생긴 셈이다.
그룹 내에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공장 신설은 한때 일종의 ‘금기’였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파업을 하며 공장을 세우는 노조가 있고, 현대차 기준 직원 1인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해 가격 경쟁도 버거웠다. 인구가 줄기 시작한 내수 시장은 한계가 보였다.
◇ 인프라 다 갖춘 국내 제조업 역량이 전기차에 유리…전기차 3강 교두보
이런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현대차그룹이 국내 공장 신설을 결심한 것은, 사실상 IT 기기에 가까워지고 있는 전기차가 고부가 가치 첨단 제품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세계 3대 전기차 기업이 되려면 수십년간 국내에 축적된 제조업 역량이 필수라고 본 것이다.
완성차 공장 입지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부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다. 현대차·기아는 이 점에서 오랫동안 발을 맞춰온 협력 업체 수백곳이 있는 국내가 최적이라고 여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2009년 하이브리드 차를 처음 선보인 후 10년 넘게 내연기관뿐 아니라 전기모터 등 전동 분야 기술력과 경험을 쌓아왔다. 이 과정을 함께한 협력 업체들의 전기차 관련 제조 기술도 세계적인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또 전기차가 첨단 기술이 적용된 고부가 가치 제품이라는 점도 영향을 줬다. 과거에는 현대차·기아가 해외 진출할 때 내연기관 차 핵심인 엔진·변속기 등과 관련된 부품사 몇 곳만 동반해도 생산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특별한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나머지 부품은 현지 조달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는 대부분 부품이 전자적으로 긴밀하게 상호 연관돼 있어 내연기관 차와 같은 현지 조달 전략을 쓰기 어렵다고 한다.
◇ ‘아이오닉’ 성공으로 품질 경쟁 확신 생겨… 2030년부터 국내서 151만대 생산
또 하나는 LG에너지솔루션 등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국내 배터리 제조 기업의 존재다. 이들과 국내에서 다각도로 협력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봤다. 특히 배터리는 전기차에서 비율이 40% 안팎에 이르는 핵심 부품이라 해외 완성차 업체도 배터리 기업과 협력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거기다 국내에서 생산·개발된 아이오닉, EV6 등이 해외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저명한 상을 다수 받는 등 성공을 거둔 경험도 영향을 줬다. 또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 보다 단가가 높아 가격 경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이점이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현대차·기아가 이미 수출처를 다 확보해놨다는 점도 국내 생산이 유리한 부분”이라고 했다.
난관도 많다. 전기차 생산을 늘리고 설비를 바꾸는 등 원활한 전동화를 위해 노조와의 원만한 관계가 숙제다. 전기차 신차 생산을 뒷받침할 경쟁력 있는 협력 업체를 더 발굴하고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첫 전기차 전용 공장을 계기로 전기차 부품 국산화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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