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결단’ 포장 굴욕 대일외교, 그나마 ‘담화 계승’도 빠졌다

한겨레 2023. 4. 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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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공식 외교문서에 한국의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방안은 기술하면서, 일본의 '역대 내각 역사 인식 계승'은 아예 빼버렸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담화 계승' 언급이 '사죄와 반성'의 뜻이라며 의미를 부여해왔는데, 일본 정부는 그 형식적 언급마저 지워버린 것이다.

"3월6일 한국 정부는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 표현) 문제에 관한 자신의 입장('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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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공식 외교문서에 한국의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방안은 기술하면서, 일본의 ‘역대 내각 역사 인식 계승'은 아예 빼버렸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담화 계승’ 언급이 ‘사죄와 반성’의 뜻이라며 의미를 부여해왔는데, 일본 정부는 그 형식적 언급마저 지워버린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에 일방적으로 양보한 것을 “결단”으로 포장해왔지만, ‘굴욕 외교’의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이 11일 내놓은 ‘2023 외교청서’에는 한-일 관계 쟁점이었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관련 부분이 새로 추가됐다. “3월6일 한국 정부는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 표현) 문제에 관한 자신의 입장(‘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조치 뒤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이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확인한다”고 말한 내용은 빠졌다. 당시에도 ‘사죄와 반성’이란 말을 직접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됐는데, 이젠 일본 쪽이 유일하게 취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공식 외교기록에서 지워졌다. 반면, 독도가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부당한 영유권 주장은 올해도 계속됐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은 2018년 ‘외교청서’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6년째 유지됐다.

올해 ‘외교청서’가 한국을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 대응에 있어 협력해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이라고 규정하기는 했다. “안전 보장 측면을 포함해 한-일, 한·미·일의 전략적 연계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하는 것과 연관돼 있다. 일본이 껄끄러운 내용은 빼고, ‘일본에 필요한 한국’은 강조하는 태도다.

한국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논평을 내고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강력 항의”했지만, 뒷북일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후쿠시마 오염수 바다 방류, 일본군 ‘위안부’ 피해 등 현안에서 일본에 무조건 양보하면서 ‘관계 개선’을 졸속으로 하려다 벌어진 구조적 변화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올여름 방류한다는 일본의 계획에 대해서도,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 위험을 줄일 조처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고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한-일 관계 균형 붕괴의 원인을 제대로 반성하고, 무너진 외교 원칙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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