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장 "쇼한 거 아니냐 하는데 흐지부지 넘어가진 않을 것"
[인터뷰] 첫 비공채 출신 사장, 최우성 한겨레 대표이사
'김만배 돈거래' 사건으로 한겨레 신뢰도 최악 위기, 해결 방안은
"뉴욕타임스는 2010년대 모델… 2020년대의 플러스 알파 찾아야"
"법조기자단 문제 논의중, 김만배 사건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겠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한겨레는 현재 미디어 산업 위기보다 뼈 아픈 '신뢰도의 위기'를 겪고 있다. 한겨레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지했던 독자들은 편집국 간부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9억 원 상당의 돈거래를 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에 빠졌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초대 한겨레 시민편집인)은 한겨레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한겨레 창간 정신이 퇴색됐다'고 비판했고 독자들은 주주총회에서 '배신당했다'고 성토했다.
[관련 기사 : 1인시위 나선 홍세화 “한겨레 창간 정신 퇴색됐다”]
불황 속 '역대급' 수지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겨레는 수익성과 신뢰도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지난달 27일 공식 취임한 최우성 한겨레 대표이사의 앞길이 순탄치 않아 보이는 이유다. 지난 6일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최우성 대표는 한겨레의 존재가치를 '시대와의 불화'라고 표현하며 “한겨레는 결국 반드시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만배 돈거래' 사건의 원인으로 꼽히는 문제들에 대해선 “아직 내부 조율중이지만 흐지부지 넘어가진 않겠다”고 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한겨레 미래는 커뮤니티… 인공지능이 독자 맞춤형 콘텐츠 제공”
- 그간 한겨레 대표는 창간주역이나 공채 출신이 차지했다. 첫 비공채 출신 사장으로 유력후보가 아니었다는 시각도 있다. 당선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구성원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동안 한겨레가 변화를 많이 얘기했지만 정작 경영인 스스로가 변화 확신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있었다. 출마하면서 그런 답답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세력 규합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밖에서 유력후보를 얘기할 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당선되고 나서 보니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에 공감해준 사람이 꽤 있었구나 생각할 뿐이다.”
- 토론회나 공약집 등에서 한겨레가 변화에 미진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특히 어떤 부분에서 한겨레가 부족하다고 느꼈나.
“한겨레가 기술적으로 못 쫓아간다는 말은 아니다. 한겨레는 창간 때부터 대표적 벤처기업이라 할 정도로 기술적 실험을 많이 했다. 개인적으론 한겨레가 백지상태에서 일궈온 성공경험이 있기 때문에 변화에 소극적이라고 느낀다. 보통 자수성가한 기업인일수록 삶의 태도가 보수적이다. 경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인데 한겨레도 이런 측면이 있다고 본다.”
[관련 기사 : 한겨레 사장 후보들이 내놓은 신뢰 회복 경영 위기 극복 방안]
- 구체적으로 디지털 매출 비중 30%, 번들링 수익 다각화, 디지털 경제매체 창간 등을 공약했다. 어떤 쪽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큰 방향성이 있나.
“단순히 전통적 의미의 언론사가 아닌 '미디어기업'이라 하려면 3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확고한 '저널리즘 정체성'과 '기술'이고 마지막은 '마케팅'이다. B2B(기업 간 거래)에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로 옮겨가야 한다. B2C 기업이라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의 확립을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에 단순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한다는 기분으로 기둥을 세워야 한다. 여기에 '경영'을 추가할 수도 있다. 언론사 경영은 주먹구구인 경우가 많은데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 기능이 자리잡아야 한다.”
- 현재 언론사들 모두가 미디어산업의 위기를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각 언론사들이 유료화, 구독모델 등 다양한 시도를 꾀하는데, 이러한 흐름에서 한겨레가 앞서나간다는 느낌은 없었다.
“알게 모르게 한겨레도 많이 했다. 가시적 성과가 왜 없었을까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명확한 방향성이 없었던 것 같다. 또 한겨레 지배구조 특성상 경영진이 장기간 시야를 가지고 끌고 가기 어렵다. 그래서 공약집에서도 '2030년에 맞춘다'고 강조했다. 2030년이 되면 한겨레 구성원 3분의 1 이상이 바뀐다. 회사의 틀, 조직 문화가 크게 바뀌기 때문에 7년 시간에 맞춰 역순으로 준비하자는 것이 처음 하고 싶었던 메시지고 실제 그렇게 할 것이다. '로그인월'이나 '유료화'는 큰 변화 중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한국언론이 뉴욕타임스의 구독모델을 자주 성공사례로 삼는데 이것은 2010년대 모델이라고 본다.”
- 뉴욕타임스의 성공모델이 이미 '구식'이라는 뜻인가.
“만약 한국언론이 무언가 새로운 해법을 찾으려면 단순 구독 모델이 아니라 2020년대에 맞는 플러스 알파를 찾아야 한다. 2020년대는 기술 기반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미 인공지능이 판을 바꿀 것으로 점쳐지고 있지 않나. 나도 물론 구성원들에 B2C 기업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 한겨레의 '플러스알파'를 찾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한겨레의 경우 구독에 더해 커뮤니티, 맞춤형 콘텐츠가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 시대는 사람들이 나에게 딱 맞는 것을 요구하고 거기에 미디어가 답을 줘야 하는 시대다. 단순히 구독하는 걸 넘어 구독자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엮어내는 게 필요할 것이다. 한겨레의 독자나 주주, 후원자들은 집단 자체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언론보다 커뮤니티 형성에 더 강할 수 있다.”
- 뉴욕타임스의 구독모델이 10년 전 모델이라고 하지만 그마저도 아직 한국에서 자리 잡지 못했다. 자리 잡지 못한 원인으로 언론의 포털 종속이 꼽히는데, 출마 당시 탈포털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가능하다고 보는가.
“현실적으로 (포털에서) 연 단위로 수십억 매출이 발생하는데 당장 올해부터 포털을 떠나겠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몇 년 사이에 뉴스 유통 과정이 옮겨갈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포털 입장에서도 이미 초기에 뉴스로 사람들을 충분히 모은 상태다. 이미 데이터를 파악했는데 초기 때만큼 뉴스에 큰 비중을 둘 것이라 보지 않는다. 완전 선형은 아니더라도 길게 보면 탈포털은 이뤄질 것이다.”
- 지난달 대부분 인사가 마무리됐다. 첫 쇄신 결과물인데 생각보다 혁신이 없었다는 내부 불만이 있다. 인사가 이전과 비교해 크게 바뀌지 않았고 팀원이 얼마 없는데도 팀장부장 보직이 남발됐다는 것이다. 특히 구성원들이 변화를 기대했기에 아쉬움이 크게 나왔던 것 같다.
“이번에 불만을 크게 느꼈을 것 같다고 인정한다. 내 입장에서 구성원들이 아쉽게 느꼈을 것 같은 부분은 조직 자체를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은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기존 잣대로 보면 한 부에 10명이 안 되면 다 없애버리자 하는 걸 혁신이라 느낄 수도 있다. 이번 경우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건 통상적인 과거와 달리 회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적어도 이런 기능을 하고 있는 조직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모자라서 '앙상하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고 충분히 그런 지적에 공감을 하지만 스스로 타협을 했다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당장은 거기가 한 두명이더라도 이 기둥을 중심으로 이런 기능을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구성원들이 좀 더 길게 봐줬으면 한다.”
- 정책적으로도 공약했던 것들에 비해 구체적인 변화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주총이 얼마 전에 끝나 좀 이른 감이 있지만 구체성에 계속 아쉬운 목소리가 나오는 건 사실이다.
“보통 평기자 인사가 4월 말, 5월 초에 나는데 지금은 비상 상황이기 때문에 무조건 모든 인사를 3월 말에 끝낸다고 얘기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2분기인 4월부터 각 본부 국실별로 내부 과제를 정비하고 올해 단기적으로 할 일을 논의하는 미팅이 있을 예정이다. 또한 4월말에는 회사 전체적으로 중장기 과제에 대해 얘기하는 워크숍 자리를 만들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구체적인 변화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조기자단 문제 딜레마 있어… 차근차근 스텝 밟아 답 찾겠다”
- 석진환 전 신문총괄이 김만배씨와 수억원 돈거래를 한 사실은 한겨레가 내세운 가치를 생각했을 때 매우 뼈 아픈 일이었다. 기자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회사 차원에서 잡아내지 못했다는 문제도 불거졌다.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기본적으로는 진상조사에서 나온 의견과 내 판단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 윤리가 무뎌졌던 것도 있고, 문제 싹을 잘라내지 못했던 조직의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한겨레 내 '온정주의'가 있다. 지침같은 걸 한겨레가 선도적으로 많이 만드는 편지만 실제 집행은 상당 부분 개인의 영역으로 넘긴다. '우리는 믿으니까'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내부 구성원들이 더 아파하는 것 같다.”
[관련 기사 : '김만배 돈거래' 한겨레 80쪽 분량 최종 보고서 결론은]
- '김만배 돈거래' 사건에 연루된 언론사 간부들은 모두 법조기자단 출신이다. 일종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는 법조기자단의 폐쇄성은 이전부터 지적됐던 문제다. 이전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법조기자단을 나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거나 공약집에서 팀 일부를 순환시키는 '교차출입제'를 언급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법조기자단 문제는 지금도 수시로 편집인, 국장, 책무실장 등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있다. 조만간 사내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번 주총에서도 그렇고 사내에서도 '법조기자단 당연히 나와야지' 하는 의견이 있는데 쉬운 문제는 아니다. 현재 현장에서 매일 부딪치고 있는 기자들의 상황에 우리가 무지하기 때문에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큰 틀의 공감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아직은 결론을 말하기 조심스럽다.”
[관련 기사 : 한겨레 사장 후보 5인이 밝힌 '김만배 돈거래' 해결책은]
- 현재 국장단 정도의 논의에선 대략적인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고 들었다. 법조팀 취재 관행 개선 등 큰 방향에 대해 대표이사 차원의 주문이 있었나.
“편집인이나 국장한테 일방적으로 지시한 건 없다. 그냥 같이 얘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적어도 큰 줄기에선 공판 중심으로 가고 소위 말하는 법조 기사의 다른 유형을 만들어보자 이런 공감대는 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왜 이렇게 질질 끄나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디더라도 밟아야 할 스텝을 차근차근 밟으면서 결국 답을 찾을 것이다.”
- 이것도 구체성의 문제 같다. 한겨레가 김만배 사건 이후 진상조사위를 열고 경과보고서를 내는 등 타 언론사에 비해 적극적으로 조치했지만 결국 실질적인 해결 방안은 앞으로 고민해야 하는 영역으로 넘겨버렸다. 그런 부분에 대해 언론계에서 진상조사위 활동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한겨레가 '쇼'한 거 아니냐 이런 지적이 있는 걸 알고 있다. 내부에서도 진상조사위 결과를 발표할 때나 주주총회, 혹은 5월 창간 기념 시점에 맞춰 무언가를 내야 하는 거 아닌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마련한 대책이 앞으로 정말 효력을 나타낼지가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일정에 쫓겨 무언가를 내놓지 말자는 공감대가 있어 앞으로도 특정일에 공식 발표하거나 하진 않을 것 같다. 비판을 하면 달게 받겠다. 하나 약속하는 건 올해 초 사건을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마무리하는 과정이 추후에 있을 것이다.”
“한겨레 가치는 '시대와의 불화', 해야 할 일 하겠다”
- 지난해 한겨레가 신뢰보고서를 내는 등의 시도를 한 건 갈수록 극단화되는 정치 지형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은 저널리즘과 수익성 사이의 딜레마가 있다. 주요 독자들이 싫어하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식이다. '한겨레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은 무엇인가.
“한겨레의 존재 가치는 표현 자체가 웃길지 모르지만 나는 '시대와의 불화'라고 생각한다. 그게 80년대에는 민족, 민중이라는 단어로 표현됐고 어느 시점에선 평화나 다른 언어로 표현됐다. 지금 시대에 어떤 문제가 있고 우리가 어떤 것에 아파하고 있는지 무엇이 시대에 가려지고 있는지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 그것이 설령 한겨레를 아껴주시는 분들과 생각이 좀 다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비난받거나 조롱당해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한겨레가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다. 우리의 시각에 대해서도 늘 겸허하게 비판대에 올릴 것이다.”
- 지난해 신뢰보고서를 보면, 외부 책무위원들이 한겨레가 정파성을 떼고 보편적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방금 한 말과 같은 맥락인가.
“중도를 확장해야 하느냐 정파성을 깨느냐의 문제와는 무관하다. 그것과는 약간 결이 다르게 지금 시대의 문제는 우리가 끝까지 붙들고 있을 거란 얘기다. 그렇게 해서 외부의 비판 지점들도 자연스럽게 해소됐으면 좋겠다. 희망하지만 안 되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린 우리의 길을 갈 것이다.”
[관련 기사 : 실수 드러내고 “윤석열에 비우호적” 비평까지 실은 한겨레 신뢰보고서]
- 한겨레를 아껴주는 독자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전한다면.
“우리가 쓰러졌다거나 지쳤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시 일어선다는 표현도 굳이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저희는 저희 일을 반드시 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왜 한겨레인지 증명을 할 것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으로 모였던 선배들처럼 지금도 정말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면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개인적인 다짐이기도 하고 구성원들에 전하는 당부이기도 하다. 독자분들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한겨레가 바뀌는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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