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는 말없이’ 들으며... 현미, 하늘나라로 갔다
“두고두고 못다 한 말 가슴에 새기면서/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오리다~”
11일 오전 9시 30분쯤 서울 동작구 중앙대병원 장례식장. 환히 웃고 있지만, 말이 없는 고(故) 현미의 영정 앞에 조가 ‘떠날 때는 말없이’가 울려 퍼졌다. 현미가 1964년 발표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곡이었고, 그가 직접 데뷔 50주년 기념 앨범에도 다시 수록할 만큼 아꼈던 곡이었다.
이날 이곳에선 한국식 스탠더드 팝 시대를 열었던 ‘영원한 디바’ 가수 현미의 영결식이 약 한 시간 동안 열렸다. 고인의 조카인 노사연, 한상진 등 유족과 서수남, 문희옥, 한지일, 양지원, 남일해 등 연예계 동료와 후배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자연 대한가수 협회장은 “수많은 별 중 가장 아름답고 큰 별,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셔서 못다 한 꿈을 하늘나라에서 꼭 이루시길 바란다”고 조사를 읽었다. 사회를 맡은 코미디언 이용식은 “현미 선배님 데뷔 70주년 콘서트는 하늘나라에서 송해 선생님이 사회를 보는 천국 콘서트가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 추도사를 맡은 후배 가수 박상민과 알리는 ‘아무 조건 없이 후배의 미국 공연에 게스트로 서주었던 큰 가수’로 그를 기억했다.
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현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7년 미8군 무대에서 현시스터즈로 노래를 시작했고, 1962년 번안곡 ‘밤안개’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짧은 파마 머리에 짙은 눈 화장,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건강미 넘치는 무대로 1960년대 큰 인기를 얻었고, 작곡가 이봉조(1932~1987)와 콤비를 이뤄 번안곡 ‘아, 목동아’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그는 지난 4일 오전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상태로 팬클럽 회장에게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아들 이영곤·영준씨가 있다. 고인은 영결식 이후 국내가 아닌 두 아들이 거주하는 미국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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