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보도 가이드라인, 새 언어 만들고 대안 나누는 출발점"

김예리 기자 2023. 4. 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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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보도를 위한 저널리즘 원칙 점검' 토론회
"'주의점·체크리스트' 필요하지만 다는 아냐"
"언어의 개발, 대안 공유하는 장 만들어야"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성평등 보도를 실현하려면 단순히 보도 준칙 잣대 삼기를 넘어서서 개별 현장에서의 고민과 어려움에 대해 대화하고 재교육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학자와 기자들의 지적이 나왔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수아 교수는 11일 서울 중구 전국언론노동조합 회의실에서 열린 '성평등 보도를 위한 저널리즘 원칙 점검' 토론회에서 “가이드라인은 출발점”이라며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기 위해 대화하고, 대안과 사례를 공유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지난 6일 젠더보도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가이드라인 세부 내용은 크게 △취재 과정에서 취재원의 대표성(다양성) 보장과 △보도 내용에서 어휘 등 표현에서 성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포함하고 있다. 각 체크리스트별로 문제 보도 사례를 들고, 곳곳에 주제와 관련한 국내외 성평등 보도 준칙을 읽을거리로 덧붙였다. 가이드라인은 현장 기자들의 활용에 용이하도록 목표를 뒀다. 가이드라인은 이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수아언론정보학과 김수아 교수. 사진=김예리 기자

김수아 교수는 “현장 기자들과 학자들의 리뷰를 받으며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여전히 유의할 점에 초점을 뒀다는 점”이라며 “무엇이 맞는지 누군가가 판결을 내리는 방식보다 고민 과정이 더 중요하다. 언어를 개발하고, 수정하는 사례,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축적할 아카이브나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취재원의 다양성을 구현한 대안 사례로 정부 육아 정책을 평가할 때 육아휴직자인 아버지를 인터뷰한 보도를 들었다.

김 교수는 성평등 원칙을 구현한 기사보다 선정적 기사가 손쉽게 수익을 내는 한국 언론의 환경도 토론의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포털 중심 미디어 환경에선 개별 기자들이 기사마다 최선을 다하지만, 그보다 제목을 (선정적으로) 고친 기사가 성과를 내는 환경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슈다. 우리는 BBC나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사들이 자사 기사만으로 수익 올리는 환경과는 다른 차원에서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그럴수록 여러 대안이나 다른 방식을 공유하는 장이 중요하다”고 했다.

홍남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기성 방송사들이 유튜브와 SNS 채널로 생산하는 수익화 전략으로서 뉴스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연구교수는 “언론사가 이른바 '전통 언론보도'와 유튜브 콘텐츠의 방향을 양분하는 '투트랙 전략' 사례들이 보인다. 전통적 보도가 가이드라인을 지키려 노력해도, 자회사를 두는 등 다른 트랙으로 상업화된 뉴스를 생산하며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수용자는 이 보도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점검하지 않기에 생산자가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11일서울 중구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성평등 보도를 위한 저널리즘 원칙 점검'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적용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성평등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예진 기자는 “우리 사회는 페미니즘 담론을 특정 단체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문제만으로 치부해왔다. 사회 일반의 담론으로 받아들이는지 의문”이라며 “언론사 내에서도 성평등 보도의 필요성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부재하다. 사회부장과 개별 기자 사이 '저출생' 표현을 쓰기로 합의해도 정치부 경제부에는 퍼져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조효정 MBC 기자는 “신입기자들이 엄정한 기준으로 기사를 써도 데스크 차원에서 기사가 바뀌고 기자들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데스크 선에서) 전형적인 클리셰 기자체와 고정관념으로 오염돼 문제되는 경우가 많다”며 “팀 데스크급 이상 기자들에게 회사 안팎에서 끊임없는 교육과 모니터링, 지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란 SBS 기자(언론노조 SBS본부 공정방송실천위원장)는 “북한국방 이슈 관련해 취재원 리스트를 보면 여성이 거의 없다. 정답은 여성 인터뷰이를 찾는 것이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가이드라인이 말하는 것을 원칙 삼아 방송뉴스를 만들려면 뭘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며 “현장에서 벌어지는 어려움에 대해서 대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수진 언론노조 성평등위원장은 “언론노조도 각 사업장의 성평등위원회에 공유는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이 데스크와 어떤 합의로 이뤄지는지까지 가 닿기는 매우 어렵다”며 “각 조직에 어떻게 '적어도 이건 하지 말자'는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가 중요하며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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