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타고 순식간에 산불 덮친 강릉…오후에 내린 비가 살렸다
태백산맥 넘어온 '양간지풍'
헬기도 못 뜰 정도로 빨라져
비 내리고 소방헬기도 투입
오후 4시30분께 95% 진화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 산불 현장. 짙은 연기가 일대 도로는 물론 경포호수와 백사장까지 뒤덮어 시야를 가렸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기침을 유발했다.
순간 최대 초속 30m의 강풍으로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흙과 쓰레기 등이 바람을 타고 곳곳에 날렸다. 도로표지판 등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사정없이 흔들렸다.
산림·소방 진화 인력은 물론 군 병력까지 현장 곳곳에 포진해 상황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경포호 인근 주민은 "안내 방송을 통해 가족들과 황급히 몸을 피했다"며 "바람이 워낙 강하게 불어 차량까지 심하게 흔들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런 바람은 처음 겪어 본다"며 "일대 도로가 통제되고 온통 연기로 가득해 가족 모두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고 전했다.
화마에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이번 산불로 현재까지 주택과 펜션 등 70여 채 이상이 잿더미로 변하거나 부분 소실된 것으로 파악됐다.
최초 산불이 난 야산 인근 주민들은 계속 물을 퍼 나르며 불씨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강한 바람 탓에 손쓸 틈이 없었다. 아이스아레나 등으로 긴급 대피한 주민들은 멀리서 뿜어져 오르는 연기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최중호 씨(60)는 "집에 있다가 갑자기 전등이 탁 꺼지면서 정전이 됐다"며 "밖으로 나와 보니 옆집이 활활 타고 있었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현장에서 일부 주민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자 경찰이 이들을 제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불길이 번진 경포대초등학교에선 학생 71명과 유치원생 11명이 황급히 버스를 타고 대피하는 등 곳곳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한때 불길은 민가는 물론 문화재까지 위협했다. 문화재청 측은 이날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강릉 경포대 인근으로 불길이 확산되자 현판 7개를 떼어내 인근 오죽헌박물관으로 옮겼다. 국가민속문화재인 강릉 선교장에는 살수 작업을 하며 소실 방지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강릉 '방해정' 일부가 소실됐고, 경포호 주변에 있는 작은 정자인 상영정도 피해를 입었다.
금방이라도 경포 일대를 집어삼킬 기세였던 불길은 오후 들어 바람이 잦아들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헬기가 투입되며 가까스로 잡혔다.
산림·소방당국은 오후 들어 강릉 일대 평균 풍속이 초속 12m로 잦아들자 초대형 헬기 1대, 대형 헬기 2대를 투입해 오후 4시 30분쯤 주불 진화를 완료했다. 불길과 사투를 벌인 지 8시간 만이다. 오후 늦게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도 진화에 큰 도움이 됐다.
이번 산불은 강풍에 소나무가 부러지는 과정에서 전깃줄을 건드려 불씨가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산림청은 국립산림과학원과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 관계자를 현장에 급파해 원인 조사를 벌이고 이 같은 1차 결과를 내놓았다. 현장에 단락된 전선과 발화 지점도 일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도 끊어진 전선을 증거물로 수집한 뒤 현장을 보존 중이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우선 전선 단락이 산불로 번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조사 과정에서 산불 원인 제공자가 있다면 산림보호법에 따라 형사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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