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파이브아이즈, 유엔·IAEA 수장들의 대화도 엿들었다(종합)

최재서 2023. 4. 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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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 추정 문건에 국제기구 수장 상대 첩보활동 내용도 담겨
"구테흐스, 젤렌스키의 키이우 방문 요청에 귀찮아해"
"그로시, 자포리자 원전 시찰 준비할 때 유엔쪽에서 난감해하자 기분 나빠해"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최재서 기자 = 최근 유출된 미국 정부의 기밀 문건에서미국이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기구 수장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첩보 활동을 벌였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11일 확인돼 또 다른 파문이 예상된다.

현재 소셜미디어에 공유되고 있는 여러 자료 중 연합뉴스가 입수한 한 문서를 보면 "유엔 사무총장(UNSG)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해 3월 초 우크라이나 방문을 검토 중"이라는 소제목 아래 관련 동향이 정리돼 있다.

이 항목에는 'TS//SI-G//OC/REL TO USA, FVEY/FISA'라는 표기가 붙었다.

통상 미국 정보기관에서 활용되는 용어에 비춰보면, 미국과 관계된 '일급비밀'(TS·Top Secret)을 미국 해외정보감시법(FISA)에 따라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5개국의 정보 공유 네트워크인 '파이브 아이즈'(FVEY·Five Eyes) 채널을 통해 입수하거나 공유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중 'SI-G'는 '특수정보'(SI·Special Intelligence) 중에서도 전화 도청 등 특별히 더 민감한 신호정보(시긴트·SIGINT)를 통해 획득한 정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유엔 수장이 보좌진과 나눈 대화가 도청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2월 28일 그의 보좌진 중 한 명인 미겔 그라카 사무국장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문건에는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3월 초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는 내용이 논의됐다고 적혀 있다.

문건은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이 구테흐스 사무총장에게 '젤렌스키 대통령이 사무총장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이는 구테흐스 사무총장을 '귀찮게'(annoy) 만드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그라카에게 키이우 방문을 위해 가능한 시나리오를 짜보라고 지시했고, 그가 키이우 방문을 명백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방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또한 문건은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그라카에게 방문 가능성을 비밀에 부칠 것을 당부했다고 전하면서 "유엔이 우크라이나 방문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크라이나 측이 모르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문건에 따르면 논의 직후 그라카는 안보담당 사무차장에게 2가지 방문 시나리오를 제시했는데, "3월 6일 유엔여성지위위원회(CSW) 개회 직후 뉴욕을 떠난 뒤 9일에 유엔 총회에 맞춰 돌아오거나, 아니면 뉴욕을 10일에 떠났다가 14일에 돌아오는 것"이다.

이어 그라카를 인용해 "(우크라이나) 키이우로의 여정은 자동차나 기차로 이뤄질 것이며, 아직 우크라이나 등 국가나 외부 단체와 접촉하지 않은 채 내부 검토 중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실제 지난 3월 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자포리자 원전을 찾은 그로시 IAEA 사무총장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유엔 산하 독립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관리들 사이 오간 대화도 담겼다.

작년 8월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전쟁의 포화를 뚫고 러시아군에 점령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시찰을 다녀왔는데, 그와 관련해 유엔쪽에서 난색을 보이자 그로시 사무총장도 언짢아했다는 내밀한 내용이다.

해당 문단은 "유엔이 교전 중인 자포리자 원전(ZNPP)에 대한 방문을 불허할 듯하자 IAEA 사무총장이 화가 난 것으로 보인다"는 소제목으로 시작된다.

이 항목 역시 'TS//SI//REL TO USA, FVEY'라는 표기가 붙었다.

문건은 2월 중순 포착한 대화를 옮기며 "유엔 쪽 인물들이 IAEA의 자포리자 방문을 꺼리는 것을 두고 그(he)가 불쾌해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맞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IAEA 관계자들의 발언 그대로를 옮긴 뒤 해석을 덧댄 형식을 보면, 정보기관이 IAEA 특정 인물을 도·감청해 첩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 IAEA 사무총장 수석고문 디에고 칸다노 라리스가 '해당 지역'의 지도를 확보했다며 "아무도 이 경로를 지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상부에 보고했으나, 그로시 총장은 "그런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해당 지역 통과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방문을 강행한 정황까지 상세히 담겼다.

앞서 그로시 총장이 이끄는 IAEA 사찰단은 작년 8월 자포리자 원전을 방문해 안전 상황 등을 점검했으며, 지난달 29일 두 번째로 원전을 다시 찾았다.

결국 그로시 총장이 유엔 관계자 등 안팎과의 실랑이 끝에 자포리자 방문을 관철시킨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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