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자료삭제' 2심 재판부 "허락받고 자료 지워도 죄인지"

박주영 2023. 4. 11. 17: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검찰 "주말 심야에 범행"…산업부 공무원 "잘한 일이 감사 거쳐 범죄 돼"
대전 법원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월성 1호기 원전(이하 월성 원전) 자료를 삭제해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받은 산업부 공무원들에 대한 항소심이 11일 시작됐다.

2심 재판부는 항소심 첫 공판에서 "후임자에게 허락을 받고 자료를 지워도 죄가 되는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대전고법 제3형사부(김병식 부장판사)는 이날 열린 산업부 A(56) 국장과 B(53) 과장, C(48) 서기관의 감사원법 위반·공용전자기록 등 손상·방실침입 혐의 사건 항소심 1차 공판에서 "만약 제가 판결문을 작성하다가 초고를 남겨둔 상황에서 후임자에게 도움이 될까 넘겨줬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후임자의 승낙을 받아 지우면 그게 공용전자기록 손상 혐의가 될 수 있나 그런 의문이 든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는 곧 피고인들이 감사원에 자료를 제출하고 나서 '그게 전부'라고 얘기했다가 남아있는 게 문제가 될까 싶어 처분 권한이 있는 파일을 지웠다. 그러면 그게 감사방해죄가 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연결된다"면서 "산업부 내부적으로 일부 파일만 넘겨주기로 의견이 모인 게 아닌가 이런 의심이 드는 만큼, 이와 관련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항소 이유를 보완해달라"고 말했다.

검찰은 "자료 삭제가 이뤄진 해당 사무실은 외부인이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하는 공간임에도 1심에서 방실침입 혐의를 무죄로 본 것은 사실관계를 오인한 부분이 있다"면서 "국회 요구로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되자 공무원들이 공모해 주말 심야 시간대에 월성 원전 자료를 삭제하는 등 조직적으로 감사 방해가 이뤄진 사건인 만큼 양형이 원심보다 무거워져야 한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A씨 변호인은 "공무원이 역량을 발휘해 잘한 일이 감사를 거치고 수사를 거치며 범죄 행위가 됐다"며 "피고인들은 월성 원전 업무 관련 현직자도 아닌 전직자였으며, 당시 감사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의사 결정에 대한 감사였음에도 뜬금없이 산업부의 부당 개입 여부를 감사하겠다고 나섰다. 피고인들은 자료 제출에 책임이 없어 감사 방해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항소 이유를 설명했다.

B씨 변호인도 "해당 파일이 삭제할 수 없는 자료인지 면밀히 따져야 하며, 검찰이 공소사실에서 월성 원전 자료라고 제시한 530개 파일 중에는 감사와 상관없는 파일도 많아 감사 방해 여부는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면서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A씨 변호인 측은 이날 재판부에 산업부 공무원들과 감사위원들을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정치적으로 관심 있는 사건이고, 여기에 잘못 연루되면 공무원직이 날아갈 것을 우려해 사실을 진술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증인 신문을 통해 무죄를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는 만큼 피고인 측 변호인들은 증인 신청 여부를 고민해달라"고 말했다.

원전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논란 (PG) [김민아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다음 공판 기일은 내달 16일로 잡혔다.

A씨는 지난 1월 9일 열린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B·C씨는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와 B씨는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인 2019년 11월께 월성 원전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하거나 이를 묵인·방조한 혐의 등을 받는다.

부하직원 C씨는 같은 해 12월 2일 오전에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이 잡히자 일요일인 전날 오후 11시께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약 2시간 동안 월성 원전 관련 자료 530건을 지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감사원이 제출을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삭제하기까지 해 감사원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원전 조기 폐쇄 결정과 관련한 산업부의 개입 의혹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며 "이 때문에 감사 기간이 예상했던 기간보다 7개월가량 지연되는 등 감사원의 감사를 방해했다"고 판시했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인사이동 과정에서 관행에 따라 자료를 삭제했을 뿐 감사 방해에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감사원의 포렌식을 몰랐다 하더라도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상황임을 모두 알고 있었던 점, 다른 자료보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데 유독 시간이 오래 걸린 점 등을 감안하면 인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방실침입 혐의에 대해서는 현 업무를 담당한 직원이 C씨에게 PC 비밀번호 등을 알려준 점을 고려하면 사무실에 출입할 권한이 있었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했다.

jyoung@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