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영칼럼]양 날개 꺾인 韓기술인재

김대영 기자(kdy@mk.co.kr) 2023. 4. 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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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대 기피현상 심화
현장 기능인력은 붕괴
엔지니어 파격 보상하고
정년 후 보장 대폭 늘려야
韓성장동력 살아난다

'745명 대 80명'.

올해 미국 스탠퍼드대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CS) 입학 정원 비교다. 2008년엔 각각 141명과 55명이었다. 산업계의 급속한 디지털 전환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자 스탠퍼드대는 CS학과 정원을 528% 늘렸다. 그러나 같은 기간 서울대의 증원은 45%에 그쳤다. 교수들의 밥그릇 지키기와 교육부의 대학 정원 규제가 빚어낸 결과다. 이처럼 한국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갈라파고스 군도로 전락했다.

한국은 전 세계 공과대학 순위에서도 밀리고 있다. 영국의 대학 평가기관인 QS의 2022 세계 공과대 평가에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1위를 차지했다. 2·3위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 4위는 난양공대, 5위 스탠퍼드대 순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KAIST는 겨우 20위에 턱걸이했다.

실제 제조업 현장의 기능인력 상황은 어떨까. 금형과 주조, 열처리, 소성가공 등 뿌리산업은 한국 제조업 생태계의 근간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뿌리산업 기술인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기능경기대회 응시자가 2013년 8468명에서 올해 4729명으로 줄었다. 10년간 거의 반 토막으로 감소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가난한 농업국에서 제조강국으로 변신한 역사를 잊어버렸다. 산업 현장은 신기술 개발력을 가진 엔지니어와 실제 제조 현장에서 개선을 맡은 기능인력으로 구성된다. 비유하자면 두 종류의 인재가 비행기의 양 날개처럼 산업 현장을 떠받쳐 온 것이다. 특히 특급 엔지니어들이 혁신에 앞장섰으며 성장엔진을 돌렸다. 포항제철을 설계하고 공장을 완성시킨 고 김재관 박사를 비롯해 울산정유공장 건설을 주도한 고 전민제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에는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공대를 지원했고 졸업 후 제조 현장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지금은 어떤가.

성적 우수자들은 예외 없이 의대를 택한다. 반도체학과 합격자가 의대로 발길을 돌리면서 반도체학과는 정원을 채우기 위해 최대 6차까지 추가 합격자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의대 졸업자와 공대 졸업자의 산업에 대한 기여도는 비교할 수 없다. 고 이건희 회장은 한 명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는데 바로 특급 엔지니어를 두고 한 말이다. 이들이 내놓은 신제품은 엄청난 시장을 만들어내고 수출 증대에도 기여한다.

학생들이 왜 공대를 외면하고 의대로 가는가.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보상과 안정성, 사회적 인정이다. 따라서 한국의 신성장동력을 만드는 데 공헌할 엔지니어에게는 국가가 영웅으로 대우하고 평생을 보장해줘야 한다. 첨단 분야의 석·박사 지원자에게는 정부가 해외 유학 비용 일체를 지원해줘야 한다. 슈퍼 엔지니어에게는 의대를 졸업해 벌어들일 소득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에 이르는 파격적인 보상을 해줘야 한다.

정년 후에도 마에스트로로 선정해 후학을 양성하도록 '슈퍼 엔지니어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수한 교수가 많아야 공대의 질이 향상되는 만큼 한국의 공대 교수 처우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 미국 MIT 정교수의 평균 연봉은 3억원을 넘는데 한국은 포스텍의 경우 1억6000만원 수준이다. 높은 연봉을 주고서라도 특급 교수들을 영입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특급 엔지니어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꿈꾸고,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에 도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은 초특급 엔지니어와 슈퍼 숙련공이 나올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고 기술인재 생태계를 새롭게 만들 때다.

[김대영 부국장(산업부장 겸 지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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