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일했는데…“고용관계 아니었다” 임금 안 준 사업주, “근로계약 형식적” 한 술 더 뜬 노동청
근로계약서를 쓰고 9개월간 일했다가 임금체불을 당한 외국인 노동자가 진정을 제기했으나 고용노동청이 근로계약 관계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로계약서에 기재된 임금과 실제 약정했다는 임금이 다른 점, ‘근로계약서는 비자 연장을 위해 형식적으로 작성한 서류일 뿐’이라는 사측의 주장을 배척하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들었는데, 전문가들은 근로계약서 일부 내용에 다툼이 있더라도 근로계약의 효력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노동자 A씨는 지난해 4월부터 약 9개월간 경기 안양의 한 무역회사에서 해외 바이어 발굴 및 상품 판매 업무를 맡았다. A씨는 회사와 월급 225만원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나 출입국사무소에서 비자 발급 규정을 이유로 이를 반려하자 연봉 3600만원으로 근로계약서를 재작성했다. 계약서상 임금이 올랐지만, 실제로는 월 225만원을 받기로 구두로 약속했다. 임금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으면 비자가 발급되지 않으니 실제 임금보다 부풀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A씨는 지난해 12월 회사가 폐업하기 전까지 일했다.
사업주는 A씨의 월급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다. 지난해 6월 한 차례 200만원을 ‘임금’ 명목으로 A씨 통장에 입금한 뒤 매달 30만~50만원 정도만 입금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A씨는 지난 2월7일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양지청에 ‘1200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며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했다. 그러자 사업주는 “월급제가 아닌 인센티브제였다. 근로계약서는 비자 발급을 위해 필요하다고 해서 형식적으로 작성해준 것일 뿐”이라며 A씨와의 근로계약 관계를 부정했다.
A씨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사실, 지난해 9월부터 월급을 독촉할 때마다 회사 대표가 “다음 주까지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점 등을 들어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재택근무를 지시하는 등 근무 장소를 특정한 점, 상품 가격 견적 및 바이어 발굴과 관련해 여러 차례 회사 사람들과 논의한 점도 근거로 제시했고, 근로계약서와 대표와의 대화 내용, 통장 입금 내역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안양지청은 구체적인 업무지시나 업무 보고 등 상당한 지휘˙감독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A씨의 진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제출한 근로계약서에 대해서도 “근로계약서상 제시된 연봉과 진정인이 주장하는 연봉이 다르고, 비자 연장을 위해 형식적으로 작성한 서류라는 사업주의 주장을 배척하기 어렵다”며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을 처리한 근로감독관은 “그간의 대법원 판례와 양쪽의 주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했다”고 했다. A씨는 안양지청의 결정에 반발해 재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근로계약서 내용 일부를 두고 당사자 간 다툼이 있더라도 근로계약의 효력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11일 “설령 근로계약서와 실제 약정한 월급 액수가 다르더라고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근로계약서의 효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근로자가 회사의 관계망을 이용해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한 것으로 보이므로 지배·종속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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