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키운 ‘양간지풍’ 오늘도…당분간 ‘겨울 같은 봄날’
강원도 강릉시 난공동 일대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을 급속도로 확산시킨 ‘주범’은 최대풍속 30㎧(시속 110㎞)에 달하는 태풍급 강풍이었다.
이날 오전 8시22분께 강원 강릉시 난곡동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경포대 북부 해안 방향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산불 발생 당시 강원 지역은 강한 바람에 대기까지 매우 건조한 상황이다. 1973년 이래 ‘역대 가장 더운 3월’로 기록될 정도로 고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당시 강릉 지역에는 습도 50% 미만으로 ‘건조 경보’가 발효된 상태였다.
올해 처음 ‘산불 3단계’가 발령된 강릉 산불 현장에는 평균풍속 15㎧, 순간 최대풍속이 30㎧에 달하는 바람이 불었다. 기상청은 평균풍속 17㎧를 ‘태풍’의 기준으로 삼는데, 평균풍속 20㎧가 넘어가면 큰 나뭇가지가 꺾이고 굴뚝이 넘어지는 수준(영국 보퍼트 풍력 계급 기준)이라고 한다. 산불 진화가 한창 이뤄지던 오후 2시께에도 평균풍속 12㎧, 순간풍속 19㎧의 바람이 계속 이어졌다.
산림청은 최대풍속 30㎧에 달하는 강풍의 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무가 부러지면서 전깃줄을 단락시켰고, 그 결과 전기불꽃이 발생해 산불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산불이 발생한 지역에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군락지가 있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소나무의 기름 성분인 ‘송진’은 불씨를 키우는 역할을 해 이전부터 대형산불의 주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특히 산불을 급속히 부채질한 태풍급 강풍의 정체는 봄철 국지풍인 ‘양간지풍’이다. 양간지풍은 봄철 양양과 고성(간성) 사이에 발생하는 남서풍으로 차가운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어 동쪽 급경사면을 타고 영동지역으로 빠르게 내려오는 바람을 뜻한다. 대개 4월에 양양, 고성, 속초, 강릉 지역으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인데, 국지적으로 강한 돌풍도 발생한다. 기상청은 일본 남동쪽에서 올라오는 이동성 고기압과 중국 북동쪽에 중심을 둔 저기압이 만나 둘 사이 폭이 좁아지면서 그 사이로 유입된 강한 남서풍, 태백산맥을 올라탄 뒤에 습도를 낮추고 온도를 높인 채 영동지방으로 넘어가 강릉 산불에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오후 강원도 동해안 일대에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5mm 수준의 적은 양으로 산불 진화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내리는 비의 양이 많지 않아 습도를 조금 높이는 정도”라며 “불이 난 바닥을 적실 수는 있겠지만 대형 산불을 진화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건조하고 강한 남서풍의 영향으로 지면에 닿기도 전에 증발하는 양도 상당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상청은 “내일도 전국적으로 강풍이 예보된 데다 강원영동, 경상권은 매우 건조하므로 추가 산불이나 화재에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12일 찾아오는 강풍은 11일과 다르게 북서쪽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으로, 국지성 돌풍을 동반해 화재 위험을 더 키울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12일 바람의 경우 전국 어디든 주의 안 할 지역이 없다”며 “북쪽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자체적으로 건조하기 때문에 화재 위험에 각별히 신경 쓸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제주, 양양공항 등에는 강풍 및 급변풍 경보가 발효 중이라 항공 교통 이용객은 사전에 운항정보를 확인할 것도 강조했다.
이번 바람은 12일 아침 전국적으로 잦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강원영동, 경북동해안 일대는 12일 아침까지 순간풍속 20㎧ 이상으로 매우 강하게 불겠고, 경북북동산지, 일부 경남권 해안은 11일 밤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11일 밤 9시 기준 경기 연천, 포천, 충남 천안, 전남 장성, 대전 등 일부 지역에는 한파특보가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한파특보는 아침 최저 기온이 전날보다 10도 이상 하강할 때 내려지는 것으로, 12일 불어오는 북서풍의 영향으로 체감 기온이 많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파특보가 발효되지 않은 지역도 전국적으로 11일 오전 대비 7~9도 정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낮 기온은 급격히 올라 일교차가 클 것으로 예상하므로 건강 관리에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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