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 논란…예술인들 “민주화운동 외면 인물, 폐지해야”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처음 제정해 시상한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을 두고 논란이 일고있다. 지역 예술인들은 박서보 작가의 지난 행보가 광주비엔날레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광주지역 예술인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박서보 예술상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은 11일 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광주의 역사적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박서보 예술상을 즉각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광주비엔날레는 지난해 2월 기지재단과 협약을 맺고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을 제정했다. 기지재단은 박 작가가 후진 양성을 위해 기탁한 재원으로 2019년 세워진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기지재단은 100만 달러를 후원하고 광주비엔날레는 2023년을 시작으로 2042년까지 매 대회마다 10만 달러를 상금으로 주는 ‘박서보 예술상’을 시상하기로 했다.
광주비엔날레가 특정 작가의 이름을 딴 예술상을 제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6일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첫 수상자를 시상했다. 하지만 시상식장에는 작가가 ‘수상을 거부해야 한다’는 피켓이 등장했다.
1931년 경북 예천 출생인 박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홍익대 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광주비엔날레는 “박 작가는 교육자이자 행정가이며 한국 추상미술을 개척하고 이끌어온 세계적인 거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작가에 대한 광주 지역 예술인들의 평가는 상반된다. 시민모임은 “박 작가는 4·19혁명에 침묵하고 5·16군부정권에 순응했으며 19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만든 유신정권 관변 미술계의 수장을 역임하는 등 미술권력자”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외면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살아온 인물의 이름을 쓰는 예술상은 저항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광주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킨 광주비엔날레 설립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돈만 내면 누구든 상을 제정해 줄 것인가. 앞으로 20년 동안 광주비엔날레의 국제적 위상을 팔아버린 행위”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작가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사실 관계도 맞지 않고 사유의 흔적도 읽을 수 없다”며 “더 많은 작가가 나서 후원하고 이름을 빌려 상을 만드는 것이 광주비엔날레를 키워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비엔날레 관계자는 “인종· 지역·성별 등의 차별을 두지 않고 오직 작품성만을 고려해 수상자를 선정했다”며 “향후에도 다른 기관에서 미술계 발전을 위한 후원 의사를 밝힌다면 그에 걸맞은 시상이나 작가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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