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 경포 일원 화마에 쑥대밭···해변가 송림도 불타[산불 현장]
동해안 최대 관광지인 강원 강릉시 경포 해변 인근 마을과 관광시설이 화마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11일 오전 8시 22분쯤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초속 30m 안팎의 강풍을 타고 동해바다 쪽으로 급속히 번지면서 경포관광단지 인근인 안현동·저동·경포동 일대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해변 소나무 숲 옆에 자리잡고 있는 전원주택 뿐 아니라 수십채의 펜션과 소규모 호텔 등이 불에 타 앙상한 몰골을 드러냈고,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은 눈물을 머금은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
보물 2046호인 경포대 정자에서 도보로 4분 거리에 위치한 16객실 규모의 한 한옥펜션은 산불에 초토화 돼 검게 그을린 잔해만 남아 있었다. 20년 전부터 이 펜션을 운영해 온 김남수씨(57)는 “이날 오전 10시쯤 시루봉 줄기의 야산에서 우리 마을쪽으로 산불이 번지는 모습을 보고 아내, 자녀 2명과 함께 피신했다가 1시간 30여분 만에 돌아와 보니 집과 펜션이 전소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어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며 망연자실했다. 이어 “관광시설 피해는 복구하면 되지만 경포 일원의 수백년 된 소나무 숲이 불타면서 아름다운 풍광이 훼손된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저동골길 126번지 일대 관광숙박단지의 펜션 10여동도 모두 불에 탔다.불에 탄 펜션에서 잔해를 치우고 있던 한 업주(52)는 “관광시설 피해가 너무 커 올 여름 피서철 관광객 유치에도 큰 차질을 빚을 것 같다”며 “산불이 강풍을 타고 ‘휙’, ‘휙’ 소리를 내며 도깨비 불처럼 번져 미쳐 손쓸 틈도 없었다”고 말했다.
탄식 소리가 이어진 경포 인근 마을 곳곳에선 잔불 정리작업을 하는 119소방대원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주민 조복순씨(80)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며 “10여m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가득차 마을을 빠져 나오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는 “이웃 주민의 집 4채가 타는 것을 보고 마을을 벗어났는데 얼마나 더 탔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안현동 주민들은 “작은 불덩이가 삽시간에 골짜기를 뛰어넘어 700~800m 가량 떨어진 주택과 펜션으로 날아들었다”라며 “공무원들이 총 동원되고, 놀러왔던 젊은 관광객들까지 진화작업을 도왔으나 불길이 워낙 거세 피해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산불의 확산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이날 주민 530여명은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을 뒤로한 채 대피할 수 밖에 없었다. 경포 호수 주변에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한 박영수씨(78)는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이다”라며 “피해를 입은 이웃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경포해수욕장 인근은 연간 1000만명 가량이 찾는 동해안 최대 관광지다. 경포 해변 인근 상인들은 “하루빨리 관광시설이 복구되지 않으면 관광경기 침체 등 2차 피해가 장기화 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방으로 거세게 휘몰아치던 불길은 이날 오후 3시30분쯤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후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주불이 진화됐다.
진화 과정에서 80대 주민 1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16명은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다. 주택, 펜션, 호텔 등 100여채가 불에 탔고, 산림 379㏊가 소실됐다.
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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