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전 천일화랑의 흔적 본다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4. 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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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은 예화랑 대표
외조부 기리는 기념전
이완석 천일화랑 대표가 디자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3인 유작전 포스터. 예화랑

10일 서울 강남구 예화랑 3층. 김명성 씨(79)는 무려 69년 전 흑백 사진에서 열 살인 자신과 오빠들을 발견하고 놀랐다. 한국전쟁 때 작고한 부친 김중현과 구본웅, 이인성을 기리는 3인 유작전과 추도식이 열렸던 그날의 옥상을 기억했다. 김씨는 "혹독한 추위에도 그림을 놓지 않던 아버님(김중현)은 술을 드시며 몸을 데우셨는데 그것이 위암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낡은 사진은 이인성의 아들 이채원(73)이 고이 보관해 왔던 것이다. 이날 구본웅의 두 아들(구상모·순모)도 부친의 생동감 넘치는 토르소 소묘를 보며 감회에 젖었다.

올해 창립 45주년을 맞은 예화랑 기념전시 '밤하늘의 별이 되어'를 준비하며 작가의 유족들을 수소문하던 김방은 대표는 지난 5일 전시 오픈 후에야 김중현 유족과 연락돼 이날 전시에 초대했다. 김중현 작품은 이번에 전시되지 않았지만 행방은 파악했다.

김방은 대표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작고한 외조부 이완석(1915~1969)의 흔적을 찾는 여정이 바로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뿌리를 찾는 길이었다. 국내 1세대 산업디자이너 이완석은 천일제약에서 일하며 계열사 천일백화점 지배인과 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1954년 7월 서울 종로4가 광장시장 인근 천일백화점 안에 천일화랑을 열었다. 화가는 물론 이경성 등 평론가도 그 주변에 모였다. 전후 척박한 여건 때문에 화랑은 결국 반년 만에 닫았지만, 1세대 서양화가 3인 유작전 등 역사적 전시를 열고 고희동·김환기·도상봉·장욱진 등 당대 최고 화가들을 모으며 큰 족적을 남겼다.

이번 전시는 이완석의 장녀 이숙영이 남편 김태성과 함께 1978년 예화랑을 열고 전시로 연결된 화가 21명을 모아 열리게 됐다. 김환기 작품 '새와 항아리'(1958)가 부인 김향안의 몽블랑 풍경화(1980)와 나란히 걸렸다. 이 밖에 오지호, 남관, 임군홍, 윤중식, 최영림, 유영국, 손응성, 장욱진, 임직순, 이대원, 홍종명, 문신, 권옥연 등 쟁쟁하다. 족히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들을 유족과 예화랑의 오랜 고객을 통해 모았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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