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이 사회 양극화 원인…51%가 “임금 격차 해소해야”
‘비정규직 정규직화보다 임금격차 해소가 우선이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노동개혁의 중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최근 10여 년 사이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비정규직 문제 해법이 ‘정규직화’에서 ‘격차 해소’로 변화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 꼽힌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노회찬 재단은 11일 서울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불평등 사회 국민인식조사 결과 발표회’를 열어 비정규직과 노동조합, 정부 노동 정책에 대한 이같은 국민인식조사(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식조사는 윤 정부의 ‘노조 때리기’가 이어지던 지난 2월3일부터 20일 사이에 2000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는 “노조에 대한 인식 조사는 여러 기관에서 부정기적으로 있었지만 비정규직에 대해서까지 체계적이고 전반적인 조사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비정규직 문제 해법에 있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지목한 이들이 15.9%에 그친 점이다. 2009년 한국방송(KBS) 방송문화연구소 조사 때는 27.1%였으며 그동안 비중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대신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차별 시정을 통해 비정규직의 임금 현실화’를 지지하는 응답이 51.4%로 절반 이상이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이 일부 영향을 미쳐 시민들이 좀 더 점진적인 해법을 선호하게 된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정규직 노조와 취업준비생 등 청년층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했던 이른바 ‘인국공 사태’가 대표적이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태도 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보는 의견도 나왔다. 홍춘기 대전시 노동권익센터장은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낮은 처우였는데 정규직화 이후에도 처우가 개선되지 않은 실망감 또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원인으로 가장 많은 시민이 지목한 것은 ‘기업의 과도한 이윤추구’(42.1%)였지만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보호’가 원인이라는 인식도 17%에 이르렀다. 특히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응답은 15.4%에 그쳤다. 조돈문 이사장은 “노조가 노동-자본 관계에서 노동소득분배율 증대에 기여하지만 노동계급 안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양극화를 방조하거나 조장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소속 연구기관인 민주노동연구원의 이창근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의 권리 보장을 우선하는 연대주의적 운동을 하지 않으면 노조의 사회적 고립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80%의 응답자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윤 정부에 대한 실망감도 큰 것으로 조사됐다. ‘현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에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응답이 11.1%에 그쳤다. 특히 ‘정부가 노사 관계에서 기업 편만 든다’고 평가한 시민이 72.9%였다. ‘노동자가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인식은 38.7% 였는데, 이는 2017년 노동연구원이 했던 인식 조사(27.4%)에 견줘 11.3%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장홍근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바람직한 노동정책 방향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입안돼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인데 이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사뭇 달라 정부의 노정 정책 방향성에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노동정책 방향은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응답은 54.2%로 나타나, 2017년 노동연구원 조사(50.2%)보다 4%포인트 늘었다.
한편 시민들은 비정규직을 한국 사회 양극화의 주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비정규직이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라는 인식은 58.5%로 그렇지 않다(11.1%)는 인식에 견줘 5배 넘게 높았다.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차이 때문’이라는 주장에 반대한 응답이 62%로, 절반 이상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업무의 정규직 고용’(79%), ‘원청의 사용자 책임 강화’(78.7%) 등에 있어 ‘동의한다’는 응답이 높았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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