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호불호? 비정한 극장가, ‘넘사벽 웰메이드’만 된다[MK무비]
흥행은 하늘의 뜻? 아니 관객의 뜻
신드롬의 스타트를 끊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그 바통을 이어 받아 더 매서운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무려 4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치열한 기록 전쟁 중이다. 탄탄한 만듦새와 뚜렷한 개성,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따뜻한 메시지, 장르적 쾌감, 생생한 에너지까지 골고루 갖춰 유례 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1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은 전날까지 누적 관객수 437만 4877명을 기록하며 34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작품은 ‘너의 이름은.’(2016) ‘날씨의 아이’(2019) 등을 히트시킨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으로,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소녀 스즈메가 일본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개봉해 1000만명이 넘는 관객이 봤으며, 지난달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찬사를 받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300만 관객 돌파 시 다시 내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27일 내한할 예정이다. 5월에는 한국어 더빙판도 나온다.
먼저 10대 관객들은 또래인 고등학생 ‘스즈메’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문단속 여정에 오른 모습에 깊이 몰입하고 있다. “스즈메 파이팅. 세상을 지켜줘서 고마워” “충격적이고 아름다움” “스즈메의 활약 하나하나가 삶의 원동력을 형성해줬다” 등 리뷰를 남기며 ‘스즈메’의 문단속 여정에 함께 동행하고 있다.
20대 관객들은 “영상미 최고” “배경이 너무 예뻐 또 보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아름답네요. 오감이 힐링된다” 등 황홀한 영상미와 중독성 짙은 OST에 높은 점수를 줬다.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규슈, 고베, 시코쿠, 도쿄 등 일본 각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섬세하게 표현, 로드 무비의 재미까지 녹여내 다채로운 즐길거리를 제공해 여행 욕구도 자극한다.
30대, 40대 관객들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느끼게 해준 영화” “감독의 위로 방식이 감동적” “아프고 뭉클하고 따뜻하다” “마법 같은 영화” 등 진정성 있는 메시지에 깊게 공감했다. 앞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오래도록 잊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했다. 아픈 상실을 마주하고 고이 보낸 뒤 한 발 나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를 통해 재난 이후의 삶을,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다독이고 있는 것.
남녀노소, 세대 불문 누구나 기억할 수밖에 없는 ‘다이진’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다이진’은 등장과 동시에 시선을 강탈하는 ‘졸귀’ 비주얼의 소유자. 하지만 알고 보면 ‘자연’의 상징이요, 인간 세상의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신’이다. 인간의 눈에는 변덕스럽고, 아름답다가도 무시무하게 (인간을) 덮쳐오는 엄청난 위력을 지녔다. 그런 변화무쌍한 자연의 속성이 일면 고양이의 성격과 닮아, 고양이의 모습으로 표현됐다.
오랜 기간 재난의 문을 지키는 ‘요석’으로 갇혀 지낸 ‘다이진’은 자신을 깨운 ‘스즈메’의 다정한 미소에 그녀의 아이가 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잠시나마 느낀 행복과 자유로움을 자신이 자식처럼 사랑한 인간 소녀 ‘스즈메’를 위해 기꺼이 포기한다.
관객들은 ‘다이진’이 상징하는 이 같은 ‘희생’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겼다. 단지 귀여운 비주얼보단, 그 숨은 의미에 대한 감동이, 슬픈 그의 운명이, 가혹한 신의 책임에 몰입하고 있는 것. “불쌍한 ‘다이진’”, “파스라지는 ‘다이진’의 모습을 보고 엄청 울었어요.”, “‘다이진’의 엔딩이 가장 슬펐어요.”, “고마워 다이진”, “미안해 다이진”, “다이진 사랑해” 등 반응을 쏟아냈다.
시작은 ‘추억의 힘’이었을지 모르나, 결국은 웰 메이드 원작을 똑똑하게 변주해 정성스레 스크린에 옮긴 ‘완성도의 힘’이었다.
원작 ‘슬램덩크’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주간소년점프’(슈에이샤)에서 연재된 레전드 만화.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초중반 만화책으로 출간돼 신드롬을 일으켰고, TV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으로 제작 됐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가 10년간의 망설임 끝에 직접 연출과 극본을 맡아 제작을 결심, 마침내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탄생했다.
작품은 원작 만화의 주역인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이 전국 최강 산왕공고에 맞선 경기를 주요 골자로 했지만, 원작의 가장 인기 캐릭터였던 강백호·서태웅에 가려진 포인트가드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새로운 에피소드를 추가했다. 송태섭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 다른 인물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고민하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합축적으로 다뤄진다. 원작의 핵심 장면과 새로운 이야기가 조화를 이룬다.
원작에선 송태섭의 전사가 없지만, 영화에서는 그의 가족 이야기가 상당히 깊게 다뤄졌다. 연재당시 20대였던 감독의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시야와 그리고 싶은 범위가 달라졌고, 이에 따른 영화의 색채도, 메시지의 깊이도 달라진 것.
이처럼 다채로운 볼거리와 즐길거리, 오감자극으로 극장가를 사로 잡은 두 웰메이드의 시대는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더 드라마틱한 건,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개봉 전까지 국내에서 역대 일본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고 있던 작품은 ‘스즈메의 문단속’을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었단 것.
‘스즈메의 문단속’이 445만 관객을 넘으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날씨의 아이’(74만 명)와 ‘너의 이름은.’(381만 명)을 통해 국내에서만 900만 관객 동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더불어 ‘슬램덩크’의 기록까지 앞지를 경우, 빼앗긴 역대 1위 왕좌를 되찾는 동시에 톱3 안에 무려 두 작품을 올리는 영광의 새 역사를 쓰게 된다.
극장가를 완벽하게 장악한 있는 일본 애니 열풍의 최종 승자는 누가될지, 그 뒤를 이을 새로운 ‘웰 메이드’ 주자에도 기대가 쏠리고 있다.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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