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월급 37만원···최저임금 따위 없는 ‘그들이 일하는 세상’

민서영 기자 2023. 4. 1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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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11일 국회에서 연 ‘장애인 최저임금법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민서영 기자

장애인은 노동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최저임금도 안 주는 일자리를 감지덕지 받아야 할까. 그렇게 하면 일자리 수라도 늘어날까.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실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장애인 최저임금법 제도 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에 관한 최저임금법 7조가 장애인에 대한 명시적 차별조항이라며 해당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6년 제정된 최저임금법 7조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에 대해선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업주는 고용노동부에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신청을 하고,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작업능력 평가를 거쳐 노동부가 인가 승인을 하면 합법적으로 장애인에게 최저임금 미만으로 급여를 줄 수 있다.

2005년 작업능력평가 제도 도입 후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 신청 인원은 빠르게 증가해왔다. 2005년 당시 140명에 불과하던 신청 인원은 2007년 1176명, 2014년 5697명, 2019년 9227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대부분이 실제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도록 승인됐다. 2021년 강은미 의원실 국정감사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인가 승인 비율은 모두 97%를 넘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사실상) 신청하면 모두 허가해주는 구조에서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작업능력평가가 의미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자의적이고 사용자 중심적인 평가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 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등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9월15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중증장애인고용촉진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최저임금법 시행규칙에선 최저임금 적용이 제외되는 노동자라도 유사 직종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임금수준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급할 것을 사용자에게 ‘권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최저임금 적용이 제외된 장애인들이 받는 실제 임금은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8월 기준 최저임금 적용제외 장애인의 월평균 추정 임금은 37만9622원으로 당시 최저임금의 19.8% 수준이었다.

참석자들은 장애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을 삭제하면 고용률이 떨어질 것이란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했다. 명숙 활동가는 “입증되지 않은 내용이 하나의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최저임금제도의 장애인 고용영향 평가’라는 2010년 강동욱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인상되든 안 되든 장애인 고용률은 계속 바닥”이라고 말했다.

“보호작업장은 사회로부터 분리 고용···공공일자리 만들어야”

대부분의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노동자가 일하는 곳인 직업재활시설(보호작업장)의 역할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정다운 전장연 정책실장은 토론회에서 “직업재활시설은 장애인 노동자를 경쟁 노동시장으로 이전하는 데에도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재활’보다는 사회로부터 ‘분리’를 낳는다는 것이다.

2019년 노동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직업재활시설엔 비장애인과 거의 유사한 작업능력을 가진 장애인도 함께 근로하는데, 이들에 대한 시설 의존도가 높아 근로능력이 양호한 장애인 노동자도 다른 사업장에 취업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2017년 기준 직업재활시설 장애인의 일반 노동시장 취업률은 3.3% 정도에 불과하고, 약 60%가 4년 이상 재활시설에 머문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도 지난해 9월 보호고용이 아닌 개방고용으로 전환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지만, 현재 정책 기조에서 보호작업장은 오히려 계속 늘어나고 있다.

참석자들은 보호작업장 확대 대신,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을 삭제하고 비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만들자고 제언했다. 정 실장은 “장애인들에게 최저임금도 주지 않으면서 억지로 ‘정상적 노동력’이 되도록 훈련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들이 현 존재 그대로 수행할 수 있는 최저임금 이상의 사회적 가치 창출 일자리를 마련하는 게 더 적실한 대안”이라며 “민간부문에서 포괄하고 강제하기 어려운 최중증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을 공공부문이 앞장서서 이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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