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원에 팔리는 ‘피카소의 성경’을 헐값에 다시 찍은 이유는?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4. 1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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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역사 세계적 佛 예술 출판사
‘카이에다르’ 스테판 아렌버그 대표
2011년 거리를 걷다 우연히 인수
피카소 미로 칼더 이우환 등 잡지와
다양한 아트북 펴내며 ‘명가’ 재건
1940년대 폐간전의 미술잡지 ‘카이에다르’(위쪽)와 2012년 새로 펴낸 매거진 ‘카이에다르’(아래쪽) [Cahiers d’Art]
‘토탈 이클립스’ 등의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로 일했던 스테판 아렌버그(66)는 2011년 4월의 어느 아침, 파리의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출판사를 샀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예술비평지를 펴내던 카이에다르(Cahiers d’Art) 건물이 먼지가 쌓인 채 문을 닫고 있는 걸 발견한 그는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회사를 팔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카이에다르는 1926년 그리스 비평가 크리스티앙 제르보스가 설립해 어니스트 헤밍웨이, 사무엘 베켓 등이 비평을 했던 세계에서 가장 유서깊은 예술 출판사 중 하나였다. 인수를 한 뒤, 1960년대 이후 끊어진 예술책(Art book)의 전통을 되살리려 그는 매년 책과 잡지가 합쳐진 새로운 형식의 매거진(Revue)을 부활시켰다.

4일 개막한 국제갤러리의 알렉산더 칼더와 이우환 전시 참석차 방한한 그를 최근 만났다. 아렌버그는 “말 그대로 사고처럼 일어난 일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잠들었던 대단한 명성의 출판사를 발견한거다. 부친이 대단한 미술 수집가였고, 나는 미술작품에 둘러싸여 자랐지만 내가 미술 출판을 할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날 아침, 나는 출판인이 되기로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전시와 출판을 병행하는 파리의 ‘카이에다르’
미술잡지 문외한인 그가 명가를 재건한 비결은 미술계 ‘드림팀’의 합류였다. 친구였던 바이엘러재단 전시감독 샘 켈러, 서펜타인갤러리 전시감독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등이 편집진으로 참여했다.

그는 자신이 책을 만드는 철학을 “오늘의 최고의 예술가와 100년 전 설립자 제브로스 시대의 최고의 예술가의 만남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2년 흑백으로 알렉산더 칼더의 세계를 조명한 첫 책을 펴낸 이후, 첫 매거진으로 엘스워스 켈리를 선보였다. 이후 1세기 전부터 끈끈한 인연을 자랑하는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알렉산더 칼더를 비롯해 호안 미로, 프랭크 게리, 크리스토 등에게 헌정하는 책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예술품처럼 세공한 책은 한정수량을 찍어 출간한 탓에 품절이 쉽게 된다.

2014년 재출간된 파블로 피카소의 카탈로그 레조네 [Cahiers d’Art]
미술사에 기록된 거장의 책을 낼 수 있는 비결을 묻자 그는 “이들은 가족과도 같다. 1926년 창간한 잡지의 첫 표지가 마티스였다. 거장들의 자녀, 손주들과 직접 연결이 되어 협업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카이에다르의 대표작은 1932년 제브로스가 편찬한 파블로 피카소의 전작 도록인 ‘카탈로그레조네’다. 33권에 1만6000여점의 전작이 모두 실려 고서점에서 가격이 2억원에 달할 만큼 귀하게 거래된다. 아렌버그 대표는 대중화를 위해 2014년 1250부(영어·불어)를 2만5000달러(약 3000만원)에 재출간했다. 그는 “500부를 더 찍었지만 완판 되어 다시 제작할 계획이 있다. 스페인어, 아랍어로도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스테판 아렌버그 카이에다르 대표
카이에다르는 넓은 안목으로 아시아 작가인 히로시 스기모토, 아이 웨이웨이, 김용익, 구정아의 전시도 열었다. 2019년에는 이우환의 첫 출판물 전시를 열어 파리 시민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아트북과 함께 길이가 6m에 달하는 펼치는 형식의 드로잉이 담긴 한정판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칼더와 이우환은 추상적 공간을 공유하고, 이 공간을 명상적이면서도 유희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라고 전시를 기대했다.
2019년 출판한 이우환의 6m 폭 드로잉이 실린 한정판 아트북. 10부만 제작됐다. [Cahiers d’Art]
그는 부친의 유산을 포함해 7000여점을 소장한 컬렉터로도 유명하다. 좋은 컬렉터가 되는 법을 묻자 그는 “나도 모른다. 내 취향을 믿을 뿐이다. 열아홉살부터 컬렉팅을 했고 난 언제나 시각예술과 지식의 연결을 흥미로워했다”라면서 “돌이켜보면 나는 늘 아트딜러가 되지 않으면서, 예술가와 예술이라는 세계에 연결되고 싶었다. 나는 이 꿈을 예술출판을 하며 결국 이뤘다”라고 말했다.

작년 ‘아트바젤 파리’가 처음 열리는 등 유럽 미술의 중심지가 런던에서 파리로 이동 중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파리는 언제나 예술의 중심지였다. 이제 과거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파리는 예술가들에게 언제나 매력적인 도시였고 브렉시트도 있었다. 동시에 한국과 중국이 커지는 것처럼 변화가 많다. 나는 미술세계는 뒤집어진 피라미드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도시를 향해 성장해가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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