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도청, 美만 했으면 다행…건물 다 허무는 방법이 유일”
“대통령실 벽에 도청장치 설치 가능성, ‘제로’라고 장담 못 해”
“사후 대응이 더 심각…대통령실, 무지한데 교만하기까지”
(시사저널=구민주·변문우 기자)
국정원 출신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미국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과 관련해 "예정된 일이 일어난 것"이라며 "과연 미국만 도청을 했는지, 지금 이 순간엔 도청을 안 하고 있는지, 어디에 어떻게 설치를 했는지 아무 입증도 하지 못하고 있어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직격했다.
김 의원은 1년 전 대통령실 이전 논란이 이어지던 무렵, '도청' 위험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그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실 이전 당시 공사 현장은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었다. 그때 벽이든 어디든 도청장치가 섞여 들어갔을 가능성을 '제로'라고 장담할 수 없다"며 "오히려 집권 초인 지금 도청 사실이 드러나 다행인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보다 보안이 철저하다"는 대통령실의 입장에 대해 그는 "그야말로 무지한 데다 교만하기까지 한 것"이라며 "도청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방법은 건물을 전부 허무는 고전적인 방법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규정하나.
"많은 분들이 '우려한 일이 터졌다'고 하는데 사실은 예정된 일이 일어난 것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도 사실상 의무를 방기한 것이다. 집권 11개월 만에 터져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다. 도청 사실을 모른 채 시간이 더 흘렀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상상해보라."
지난해 5월, 이종섭 국방부 장관 청문회장에서 이미 대통령실 도청의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어떤 지점에서 우려했던 것인가.
"그 무렵 대통령실 이전 현장을 보니 떼기시장'이나 다름없었다. 드나드는 인력에 대한 철저한 신원조사도 없었고 여러 자재와 시설들이 그냥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벽 작업을 하며 시멘트 안에 도청장치라도 섞어 놓았을지 어떻게 아는가. 그제라도 공사와 이전을 중단시키고 철저한 공간 통제와 인원 및 자재 점검을 했다면 지금처럼 불안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경고를 소홀히 들은 거다."
도청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그 정도로 힘든가.
"2005년 미국이 러시아에 새 대사관을 짓는데 별의별 도청장치가 계속해서 발견됐다. 대도청 기술이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미국조차 도저히 방어를 해내지 못했다. 결국 미국은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지어 15년에 걸쳐서야 완공했다. 이후 마시는 물만 빼고 연필 한 자루까지 모두 미국에서 들여왔다. 도청은 끝까지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자신들이 도청을 당했다는 사실을 패망할 때까지 몰랐다. 독일도 자신들이 굳게 믿던 암호 체계가 뚫렸던 사실을 패망 후에야 알았다. 결코 과한 가정이 아니다."
지금 대통령실이 미군부대 옆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계속 지적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곳곳엔 미군부대가 있다. 이는 즉 미국 정보부대가 많다는 거다. 이들의 주 임무가 바로 정보활동이고, 이 정보활동 중 하나가 도‧감청이다. 도‧감청에 대비하기 위해선 일정한 '거리 확보'가 최우선인데 여기서부터 지금 무너져 있는 것이다."
추가적인 도청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첩보 세계엔 적과 동지가 따로 없다. 우방국이냐 아니냐에 관계 없이, 지금 이 도청이 국익에 부합하느냐 안하느냐만 따진다. 미국은 물론, 일본‧중국‧러시아 모두 우리보다 도청과 대도청 기술이 훨씬 앞서는 나라다. 이들이라고 도청을 하지 않았다고 지금 100% 보장할 수 있나.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일본이 도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100% 입증할 수 있나. 도청을 하지 않았다는 걸 명확히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대도청 검사를 당장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걸 한다는 걸 보여줘야 누군가가 도청을 하다가도 멈추지 않겠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확실한 방법은 건물을 부수고 이사를 가거가 다시 지어서 사는 것뿐이다.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분명한 방법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만큼 그 안에서 다뤄지는 정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국가에 어느 정도 규모로 우리 정보가 누설이 됐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지금 나온 건 빙산의 일각일 수 있고, 앞으로 계속 누설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장 제로베이스에서 모든 걸 점검해야 한다."
대통령실에선 "청와대보다 보안이 철저하다"는 입장인데.
"기가 막히다. 무지한 데다 교만하기까지 한 태도다. 청와대는 근방의 일정 공간 내에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도청장비를 갖췄을 거라고 의심할 수 있는 곳은 주변에 딱 한 곳이었다.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 그래서 대도청 방지벽을 별도로 세워 도청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그런데 지금 용산을 보라. 담벼락 하나 두고 미군부대와 붙어있지 않나. 어떤 부분이 청와대보다 더 안전하다는 건가."
대통령실에선 도청 의혹을 허위로 규정하며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는데.
"도청보다 이후 대통령실의 대응 방식이 더 문제다. 이건 마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먼저 찾아가서 '너 나 안 때렸지. 안 때린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지금은 미국과 협력을 공고히 하는 걸 강조할 게 아니라 '그래서 도청을 했어 안했어'를 명백히 밝혀야 하지 않나. 우리의 이런 태도를 보면 다른 나라에서도 '도청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나."
대통령실과 여당에선 야당이 이를 '정쟁'으로 활용하려 한다고 비판하는데.
"정쟁의 사안이 결코 아니다. 안보와 국익에 관한 일이다. 정쟁으로 안 몰 테니 그저 거짓 의혹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부디 합동팀을 꾸려 철저히 대도청 검사부터 하길 바란다."
이달 말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다른 나라 전례를 보면 도청이 발각됐을 때 국빈 방문을 취소하기도 했다. 근데 우리 대통령실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최소한 방미 전에 미국 측에 강력히 항의하는 모양새라도 보여야 한다. 미국에 관광을 가는 게 아니지 않나. 도청 문제에 대해 항의를 해야 향후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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