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이 판소리로…원작 비장함에 해학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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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를 쥔 소리꾼 이승희와 북채를 잡은 고수 김홍식이 무대를 채운다.
'입과손 스튜디오'가 '소리꾼의 입과 고수의 손'에 집중하는 단체임을 짐작하게 한다.
2020년부터 차례로 무대에 올린 토막소리 '팡틴'과 '마리우스', '가브로슈'를 모으고 엮어 한 편의 완창 판소리로 구성한 것.
이향하 입과손스튜디오 대표는 "원작의 비장함과 웅장함에 판소리의 풍자와 해학을 더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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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손스튜디오·두산아트센터 기획
“둥그렇고 커다란 구구선은 바다를 떠난 적 없이 끝없는 표류 중이라 구구선 사람들은 뭍에 가 닿는 것이 간절한 꿈이더라!”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이 ‘‘판소리 레미제라블 구구선 사람들’로 다시 태어났다. 원작의 메시지를 ‘지금 이곳의 불쌍한 사람들’로 변형하되, 세상을 ‘구구선’이란 이름의 한 척 배로 설정한 작품. 판소리 공동창작단체 ‘입과손 스튜디오’와 두산아트센터가 함께 기획했다. 판소리에 밴드 음악과 민요, 연극을 버무린 복합예술이다.
부채를 쥔 소리꾼 이승희와 북채를 잡은 고수 김홍식이 무대를 채운다. 작은 의자 말고는 별다른 치장도, 소품도 없다. ‘입과손 스튜디오’가 ‘소리꾼의 입과 고수의 손’에 집중하는 단체임을 짐작하게 한다. “새 삶에 어울리는 이름부터 지어보자. 성은 장이요, 이름은 영식이라!” 장영식으로 바뀐 장발장, 조병렬로 변한 자베르의 쫓고 쫓기는 사연이 판소리 가락을 타고 구성지게 흘러간다. 씩씩한 우조로 가더니 어느새 구슬픈 계면조로 넘어간 소리꾼의 입에, 진양조로 늘어졌다가 휘모리로 몰아치는 북재비의 손과 추임새가 감칠맛을 더한다.
망망한 바다를 표류하는 ‘구구선’은 ‘1% 모자라는 99% 세상’에서 따온 작명이다. 소리꾼 이승희는 “언제나 100에 가닿지 못하고 99에 그치고 마는 세상에서 단 한 번도 사라진 적 없는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빈부와 계층을 떠나 모두 한 배에 타고 있다는 발상은 ‘불쌍한 사람들’이 맞닥뜨린 비참한 현실과 구조적 모순을 파헤치고자 했던 위고의 의도를 잘 담아낸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 안에서 사람들은 모두 연결돼 있으며,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 앞에서 동등한 운명이기 때문이다. 낙관을 지지하는 결말이 희망의 여운을 남긴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2020년부터 차례로 무대에 올린 토막소리 ‘팡틴’과 ‘마리우스’, ‘가브로슈’를 모으고 엮어 한 편의 완창 판소리로 구성한 것. 원작에 나오는 팡틴은 방미영, 마리우스는 백군, 가브로슈는 가열찬으로 한국 이름을 갈았다. ‘길고 유명하며 등장인물이 많은 고전’을 원작으로 찾았는데 금세 ‘레미제라블’로 낙착됐다고 한다. 2547쪽에 이르는 위고의 원작을 100분 분량으로 압축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2021년엔 프랑스 파리의 판소리 축제에서 작품 일부를 공연했고, 제작·출연진이 위고의 생가도 방문했다.
장막이 드리워진 무대 뒤쪽에서 울려 나오는 기타와 키보드, 드럼이 생동감을 자아내며 사운드의 단출함을 보강해준다. 이름하여 ‘개미굴 밴드’. 노래로 세상에 부조리를 알리는 역할을 맡는다. 이향하 입과손스튜디오 대표는 “원작의 비장함과 웅장함에 판소리의 풍자와 해학을 더했다”고 했다.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오는 9월엔 경기 광명시와 경북 영덕군에서도 공연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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