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지워진 벌금 기록까지, 당사자 몰래 직장에 알려준다

장나래 2023. 4. 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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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국가중요시설이면 민간업체라도
보안업무 이유로 2월부터 말소된 전과기록 통보
“업무무관한 모든 기록 통보는 이중 처벌” 지적
국가정보원 내곡동 청사 모습. 공동취재사진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된 한 민간업체에 다니는 ㄱ씨는 최근 회사에 10여년 전 벌금형 전과기록이 회신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안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ㄱ씨가 최근 보직 변경으로 신원조사를 다시 받게 되면서다. 업무(보안) 관련 범죄가 아닌데도 모든 범죄 경력이 회사로 통보된 것이다. ㄱ씨는 “이미 10여년 전 형이 실효된 벌금형 전과인데, 갑작스럽게 회사에 알려져 당황스럽다”며 “인사 불이익뿐 아니라 기업 인사팀 역시 순환 보직인데, 사내 유출될 것 같아 회사 생활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1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정보원은 지난 2월부터 국가중요시설 관련 근무자에 대한 신원조사 결과 통보 시 형실효(전과사실 말소)된 기록까지 통보하고 있다. 업무와 관련없는 모든 전과 기록을 통보하는 것은 이중 처벌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과 기록을 전달받은 공공기관이나 민간업체 등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한 기업 인사 담당자는 “신원조사 결과를 통보받으면 보통 한두달 안에는 처분을 내려야하는데, 업무와 관련없는 형실효된 전과 기록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대통령 훈령인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에 따라 신원조사를 하고 있다.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된 모든 기관은 신규 채용 시 또는 비밀취급인가가 필요한 보직으로 이동 시 신원조사를 하게 돼있다. 통합방위법에서 규정하는 국가중요시설은 공공기관뿐 아니라 공항·항만, 주요 산업시설 등 국가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설로, 국정원장이 지정한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정유사나 제철소, 방산업체, 조선소, 통신사 등 민간기업이 관리하는 시설까지 국가중요시설에 포함될 정도로 광범위하다. 국정원은 군인, 군무원 등은 국방부 장관에, 3급 이상 공무원 임용 예정자 등을 제외한 나머지 대상자는 경찰청에 위탁해 신원조사를 진행한다.

문제는 지난 2월부터는 실효된 전과기록까지 회신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국정원은 지난해 11월28일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을 개정했고, 이에 따라 실효된 형과 관련된 범죄 경력도 회부 대상에 포함됐다.

국정원 관계자는 “충성심과 신뢰성 등을 확인하는 신원조사의 목적을 고려해 실효된 형과 관련된 범죄 경력도 회부하도록 규칙을 바꿨다”고만 밝혔다. 형실효법은 전과자의 정상적인 사회복귀를 보장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신원조사에 관해 ‘조회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중 처벌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대통령 훈령 외에 법적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어떤 근거로 실효된 형을 모두 회신하는지 내부 규정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참여연대 장동엽 선임간사는 “신원조사는 당사자에게 통보되지 않는다. 자신의 실효된 형이 회신된다는 사실을 알 방법이 없다”며 “법률상 근거도 없이 과도한 이중 처벌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조지훈 변호사도 “국가안전보장에 한정된 국가기밀을 취급하는 업무 수행자에 한해 일정한 신원조사가 필요할 수 있겠지만, 직책과 직위 등에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개인정보 일체를 요구하고 조사하는 건 과잉금지 원칙에도 위배된다”며 “실효된 형은 민감한 정보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보호돼야 한다. 형실효법상 모호한 내용은 개인정보보호법 취지와도 충돌한다”고 짚었다.

이런 우려가 끊이지 않자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국정원감시네트워크 등은 신원조사와 관련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장동엽 간사는 “법률이 없다 보니 시행령이나 내부 지침으로만 신원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법률로 규율해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월 관련 진정을 받고 조사에 착수했다. 인권위는 업무와 관련있다해도 실효된 전과를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는 건 차별이라는 결정을 수차례 내려왔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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