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이 된 동생, 회사의 빠른성장 만큼 그는 갈려 나갔다
[안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2018년 1월 3일, 온라인 교육 컨텐츠를 제작‧운영하는 기업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장민순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웹디자이너 장민순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책임이 에스티유니타스(이하 회사)에 있다는 것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장민순 씨의 죽음이 처음 알려졌다.
기자회견에서 '공인단기‧스콜레 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유가족은 회사에서 과도한 업무로 인한 잦은 야근과 상사의 괴롭힘으로 우울증이 악화되어 장민순 씨가 자살에 이르게 되었음을 밝혔다. 유가족 대표로 참석한 장민순 씨의 언니 장향미 씨는 "근로기준법만 지켰어도, 내 동생은 살아있었을 것입니다"라며 동생의 유지(遺旨)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의 기억
2018년 1월 3일, 그날은 장민순 씨의 방에서 알람 소리가 꺼지지 않았다. 원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알람을 끄던 동생이었다고 언니 향미 씨는 말했다. 계속 울리는 알람소리가 이상해 향미 씨는 동생 방문을 열었다. 동생은 쓰러져 있었다. 서둘러 119를 불렀다. 구급대원은 의학적으로 더 이상 처치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지만, 당시 그 말을 죽음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동생의 죽음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향미 씨는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단순 자살인지 타살인지만 중요했다. 그는 동생이 회사에서 힘들어했다고 계속 말했지만 경찰은 관련해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동생의 죽음이 믿기지 않음에도 동생에게 일어난 일의 배후에는 회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그는 동생이 죽은 이유를 반드시 알아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동생이 죽기 한 달 전 회사 일과 상사의 문제에 대해 토로했기에 그는 동생을 대신해 시민사회단체에 상담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상담 받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대책위를 꾸렸고 동생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그는 장례를 마치자마자 평일 저녁과 주말 시간을 쪼개가며 회사의 전현직 동료들 30여 명을 인터뷰했다. 장례 이후 꾸려진 대책위와 언니의 활동으로 장민순 씨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일터의 모습이 드러났다.
크고 담대한 성과만큼 노동자는 과로
회사는 "크고 대담한 비전만큼 우리는 빠르게 성장합니다"라며 스피드한 조직문화와 빠른 성장을 이뤄낸 기업이라 자랑하고 있다. 전현직 직원들은 익명 커뮤니티에서 회사에 대해 "무의미한 야근, 낮은 연봉", "공장부품이 되고 싶으면 오세요"라고 말한다. 회사가 빠른 성장을 이뤄낸 만큼 노동자는 갈려 나갔다.
"다음 주 일정은 아주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 같더만." - 2015.11.6. 장민순 씨의 메신저 대화
2015년 에스티유니타스로 입사한 장민순 씨는 포괄임금제로 산정된 근로계약을 맺었다. 근로계약에 있는 노동시간은 법정 연장근로시간한도인 주당 12시간을 이미 위반하고 있었다. 2015~2016년 장민순 씨의 근로계약(연장근로 주당 약 15시간, 야간근로 약 6시간 가능)에 따르면, 10시에 출근해서 정시퇴근이라면 저녁 7시 퇴근인데 연장근로에 야근까지 하면 새벽 12시에야 퇴근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이 주 단위이기 때문에 어떤 날은 10시 출근을 해서 다음날 출근 10시까지도 일을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2017년 근로계약에서 연장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 한도로 줄었지만 연장근로가 강제되는 회사에서 단기간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을 하는 압축노동(compressed work)의 실상은 여전했다. 회사가 자랑하는 '자율적 출퇴근제'는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의 통제권이나 선택권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상사에게 확인을 받아야 하고 확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디자인‧기획안이 갈아엎어지는 경우가 많아 출퇴근 시간은 무의미했다. 근로기준법상 하루 연장근로시간에 대한 제한도 없고 야근을 하게 만드는 회사에서 장민순 씨는 무리하게 과로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과 저는 퇴사를 하라고 했지만 동생은 책임감 때문에 그만두지 않았어요. 동생이 사실 회사에 여러 차례 휴직을 요청했어요.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서. 우울증 말고도 신체적으로 안 좋아져서 휴직을 요청을 했는데 계속 반려를 당했거든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신청에도 반려되면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그제서야 회사에서 쉬라고."
2017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상태가 안 좋아진 장민순 씨는 어렵게 한 달 휴직을 했다. 그러나 휴직 후 돌아온 장민순 씨가 맞아들인 현실은 여전히 퇴근 없는 회사였다. 장민순 씨의 죽음 전 3개월, 특히 2017년 11월 주당 평균 연장근로 10.5시간이었다. 11월 동안 10일은 밤 10시 넘도록 일했고, 5일은 자정이 넘어야 퇴근했다. 몸을 돌보고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틈이 주어지지 않았다.
과도한 업무량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가중된 직장 스트레스
"정말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에요. B2B도 나보고 PM하라하고. 스콜레 브랜딩도 하라 하고. 강좌상세도 디벨롭하라하고. 카드뉴스는 매번 다르게 하라고 하고. 책도 읽어오라고 하고. 정말 머리가 터질 거 같아요." - 2017.11.24. 장민순 씨의 메신저 대화
장민순 씨는 장시간 노동과 잦은 야근뿐만 아니라 과중된 업무량을 감당했다. 웹디자인 외에도 SNS 카드뉴스를 제작하고 홈페이지 리뉴얼을 담당하게 되면서 브랜딩 작업까지 맡게 되었다. 퇴직자의 증언에 따르면 장민순 씨의 업무는 4명 분량을 몰아 받은 것이었다. 게다가 체계적이지 않은 업무 프로세스에서, 상사의 확인을 받기 위해 기약 없이 대기해야 하고 수시로 기획이 엎어졌다.
회사는 자사 콘텐츠를 홍보하기 위해 각종 자격증 시험이 치러지는 주말에 ‘주말 응원이벤트’라는 행사를 했다. 행사 참여가 업무평가에 20% 반영되는 것이었기에 겨우 쉴 수 있는 주말에도 주말 수당 없이 출근을 해야 했다.
“커넥츠 스콜레 페이스북 작업을 진행하며 오늘 또 한 번 배우고 부끄러운 하루였습니다. 00님께서 늘 말씀주신 이전보다 작아도 하나라도 더 나은 아웃풋을 내야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잊은 채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였습니다." - 2017.11.23. 장민순 씨의 업무일지
장민순 씨는 매일 퇴근하면서 업무일지를 적었는데, 업무일지를 보면 업무보고가 아닌 자아비판이나 반성문에 가까운 내용이 적혀있다. 장민순 씨는 장시간 많은 양의 일을 하면서 힘든 감정을 부정하면서까지 업무에 대한 열정을 증명해야 했다.
"회사에 동생이 우울증이 있는 걸 얘기했어요. 왜냐하면 병원 치료도 다녀야 되고 약도 먹어야 되고 하니까 자기 상사한테 얘기를 했어요. 처음 팀장은 알고 있었고 그 팀장이 다른 부서 옮기면서 실장한테 얘기를 했대요.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니까 너무 심하게 야근을 시키거나 이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해요. 근데 뭐 안 지켰죠. 더 괴롭혔죠."
압축노동의 일터에서 장민순 씨는 직장 내 괴롭힘까지 시달렸다. 상사는 프로젝트 마감으로 바쁜 와중에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라고 했다. 책의 내용은 업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책이었고 프로젝트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데 주말 동안 그러한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 상사는 비건 지향의 생활방식과 신념을 갖고 있던 장민순 씨에게 육식을 강요하기도 했다.
"자꾸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해요. 제 신념이라고 말해도 아니라고 하고. 고기를 먹어야 단백질이 풍부해져서 뇌가 잘 돌아가고 그렇다면서 자꾸 고기 먹냐고 물어보고 재촉해요. 아니 왜 제가 뭘 먹는지까지 이렇게 강요받아야 하나 싶어요." - 2017.11.23. 장민순 씨의 트위터 대화
이미 일상이 무너졌다
장민순 씨는 일터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고 양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부담인 업무를 해내야 했다. 직장 내 괴롭힘과 자기비판의 업무보고를 하며 자존감이 깎여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회사는 우울증을 악화시켰다.
자살 이전 장민순 씨의 우울증 악화는 일상을 어그러뜨려갔다. 향미 씨는 동생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야근을 마치고 들어온 동생은 녹초가 되어 자신의 방으로만 들어가면서 대화는 단절되어 갔다. 때로는 자제하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시기도 했다. 걱정됐다. 2017년 12월 한 달 동안 탈진해서 겨우 몸을 이끌어 출근했지만, 매일 지각이었다.
향미 씨는 2017년 12월 2일 토요일 아침을 기억한다. 평소 가족에게 걱정을 끼칠까봐 힘든 내색을 안 하던 동생이 언니 앞에서 통곡한 날이기 때문이다. 상사로부터 "잠은 자면서 해라. 머리가 맑을 때 일을 해야지 디자인도 좋은 게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날이었다.
"아침부터 통곡을 하고 저한테 너무 힘들다고. 일이 너무 많고 상사가 너무 괴롭힌다고. 정말 펑펑 자지러지듯이 방을 때굴때굴 구르면서 막 울었거든요. 처음이었어요. 그날이 토요일이었거든요. 또 회사를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너무 기진맥진하고 있는 상태고. 제가 그날 너무 화가 나서 못 가게 했어요."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2016년 10월 에스티유니타스에 대한 고용노동부 강남지청 근로감독이 있었다. 최저임금 미지급, 연장·야간근로수당 미지급 등 법 위반사항에 대한 시정조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장민순 씨의 연장근로 위반 사례는 포함되지 않았다. 근로감독 결과는 노동 현장을 바꾸고 노동자의 과로사‧과로자살을 막기에는 부실했다.
향미 씨는 통곡하는 동생을 보고, 2017년 12월 고용노동부 강남노동지청에 동생 회사의 근로감독을 진정했다. 강남노동지청은 ‘진정은 본인만 가능’하기 때문에 청원 신청하라고 했다. 그는 다시 청원으로 근로감독을 신청했다. 그러나 두 번째 근로감독 신청에 대해 강남노동지청은 "올해 근로감독을 나가는 일정이 모두 끝났으니" 나갈 수 없다는 답을 보내왔다.
"올해 근로감독은 다 끝났고 내년에 다른 회사 신고 들어온 거 같이 해서 내년 2월 이후에 나가겠다고 대답이 왔어요. 2월에 나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2월 이후에 나가겠다. 그런데 동생이 죽고 기자회견 준비하는 4월까지 아무것도 안 했어요. 고용노동부는 동생 기사가 나가고 나서 그제서야 부랴부랴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어요. 왜냐하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게 드러났잖아요."
'어쩌면'이란 가정을 하게 된다. 2016년 근로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2017년 12월에 근로감독이 있었더라면 장민순 씨는…. 향미 씨와 대책위는 장민순 씨의 죽음이 개인의 안타까운 자살이 아닌 일터에서 일어난 사회적 타살임을 밝히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였다. 그 결과 2019년 10월 16일, 장민순 씨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았다.
[안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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