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먹는 ‘퐁당 마약’, 법도 퐁당퐁당
"술 깨는 약이야. 먹어봐"
어제(10일) 새벽 5시쯤, 서울 중랑구의 한 술집에서 30대 여성 A 씨는 처음 본 20대 남성에게 '분홍색 알약 반 알'을 건네받았습니다.
꺼림칙하게 여긴 A 씨는 알약을 먹지 않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알약, '마약'으로 의심되는 물질이었습니다.
남성은 술집 앞 하수구에 이 알약을 버렸지만, 경찰이 CCTV를 확인해 알약을 찾아냈습니다.
경찰은 남성을 상대로 마약류에 대한 간이시약 검사를 했고, 그 결과 엑스터시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문제의 알약은 국립과학수사원에 보내 조사를 의뢰해둔 상태입니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이 남성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이 알약을 아무런 의심 없이 먹었다면 어땠을까요?
■무심코 피운 전자담배에도…
SNS 팔로워가 20만 명인 '인플루언서', 30대 여성 B 씨.
B 씨의 '팬'이라며 꾸준히 연락을 해 온 20대 남성이 지난 2월, B씨의 집 앞에 찾아왔습니다.
남성은 B 씨에게 전자담배를 건넸고, B 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 두 모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고 합니다.
B 씨는 몇 시간 뒤에야 집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남성을 긴급 체포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그는 "전자담배에 마약을 탔다"고 진술했습니다.
다만 간이 마약검사에서는 두 사람 다 양성 반응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간이 검사는 필로폰과 대마, 모르핀 등 일부 마약만 확인할 수 있고, 투약 후 경과 시간에 따라 검출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달 30일 이 남성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남 몰래 마약 타 먹이는 '퐁당 마약'…가중처벌 근거 없다
이렇게 남 몰래 마약을 먹이는 행위를 이른바 '퐁당 마약' 수법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 '퐁당 마약' 행위 자체는 가중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앞서 두 사례의 피의자들에게 적용된 건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입니다.
현행 마약류관리법 상에는 '마약을 소지·소유·관리 또는 수수하는 경우에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타인에게 마약을 '투약'한 행위를 처벌하는 별다른 법안은 없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몰래 마약을 먹이는 행위는 성폭행과 금전 갈취 등의 2차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위험합니다. 지난 2018년 발생한 '버닝썬' 사건에서도 이같은 '퐁당 마약' 수법이 쓰였습니다.
영국에서는 몰래 마약을 투약하는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관련 법령을 만들어뒀습니다. 영국의 성폭력관련법(Sexual Offences Act 2003)은 알코올이나 약물을 타인의 음료에 넣었을 때, 이를 마시지 않았더라도 징역 10년까지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강남 '마약 음료' 배포책 처벌은?
이번 강남 '마약 음료' 사건의 배포책에게도, 적용할 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마약을 먹인'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할 근거가 없는 겁니다.
학생들이 마약을 먹은 뒤 몸에 이상이 있거나 어떠한 증상이 나타난 경우에는 형법상 '상해죄'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마약 관련 법안이 아닌, 위험한 물질을 몸에 투약함으로써 사람의 신체적 훼손을 일으켰다는 측면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다만 이번 마약 음료 사건 피해자 중에서 몸에 특별한 이상이 나타난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배포책들이 마약을 소지하고 유통한 행위에 대해서도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이 어렵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배포책들은 4명 모두 "단순히 고액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했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이들을 불송치하는 결정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지난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이제 '마약'은 나도 모르게 접촉할 수 있을 정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마약에 노출될지 몰라, 국민들의 불안 역시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몰래 먹인 사람'을 처벌할 법안이 없다면, 피해는 계속 반복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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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영 기자 (inyou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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