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나는 인간이면서 인공지능
(서울=뉴스1) = 지나고 보니 뒤늦게 놀라는 일이 종종 있다. 2021년 9월, 미국 오픈에이아이(OpenAI)에서 출시한 생성 인공지능 GPT-3에게 지긋지긋한 코로나19가 언제 끝날 것 같은지 묻자 인공지능은 간명하게 ‘2023’이라는 숫자를 제시했다.
당시 그의 ‘예언’은 믿기지 않았다. 한국의 경우,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발생 이래 지속해서 증가했고, 이 추세가 22년 7월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2023이라는 예측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아직 코로나19 종식 선언이 나오지 않았고, 또 선언이 나온다고 해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완전히 없어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당시 GPT-3의 2023년이라는 예측은 지금 봐도 놀랄 만하다. 증가세가 꺾였고 일상의 풍경만 보자면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 거의 돌아왔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경험이 반복된다면, 달리 말해 인공지능에 불확실한 미래를 묻고 그의 대답이 상당히 정확함을 확인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에 인류의 모든 문제를 묻고 그의 대답을 신봉하게 될까. 더 나아가 인공지능에 모든 일의 의사결정을 맡기게 될까. 이렇게 되면 인간중심의 시대는 막을 내리는 것일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2018년 싱가포르에서 펴낸 ‘Living Digital 2040: Future of Work, Education and Healthcare’ 보고서를 보면 3가지 분야에서 인간의 인지능력이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고 전망했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의 분석, 제안, 조언을 지속해서 받다 보면 개인과 조직은 이들이 처해있는 환경의 변화를 점차 이해하는 능력이 감소하고 그에 따라 대응의 전략이나 정책을 내놓는 역량도 감소한다. 회계나 경영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에 지속해서 의존할 경우,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 능력이 퇴화하거나 신입직원들이 필요한 능력을 익히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마추어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운전능력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운전자가 GPS(위성항법시스템)에 의존할수록 뇌의 해마가 위축되고, 이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2018년이면 지금처럼 인공지능의 능력에 대해 열광한 때도 아니었으니, 지금 이런 분석을 다시 하면 아마 인간의 역량 쇠퇴 징후는 더 짙어졌을지 모른다.
일찍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80년에 펴낸 ‘제3의 물결’에서 인간은 “수량화되지 않는 것을 멸시하거나 엄밀성만을 중시해 상상력을 도외시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이어 “어떠한 문제든 기계적 해결만을 추구해 인간 스스로 새로운 질곡을 만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주장을 지금의 인공지능 시대에 비춰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인공지능을 맹신하는 이유는 막대한 자료를 분석하는 능력 때문이다. 반대로 수량화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 예를 들면 사랑의 감정, 오감을 넘어선 육감의 소통력, 공감력, 상상력, 신앙심, 개인의 창발적 아이디어 같은 것은 무시 또는 멸시당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이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퇴화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은 늘 있었다. 예를 들어 1920년대 전화기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전화기가 확산되면 만나고 교분을 쌓는 인간의 오랜 관습이 무너지고, 인간관계가 파편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기계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지속되고 있다.
인공지능도 비슷한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기술을 없앨 수 없다는 점이다. 인공지능기술은 지금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와 장소에 끼어들어 구조화되어 있다. 인간사회에 깊이 내재한 이 기술을 인간의 입맛에 따라 통제하기도 힘들고, 더 나아가 이 기술을 파괴할 수도 없다. 인공지능기술을 파괴한다는 것은 곧 인간을 파괴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존재다. 우리의 행동과 말을 모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앞으로 더욱더 많은 인간의 일을 더 자주 인공지능에 맡길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도 인공지능에 맡길 것이다. 이미 인간이 갈 수 없는 저 우주에는 인간이 보낸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일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에서 보낸 화성 탐사로봇은 오늘도 열심히 정보를 모으고 분석해서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이들이 없으면 우리는 우주의 실체에 대해 알 길이 없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 스스로를 인간이자 인공지능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의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이 시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인간의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보완해줄 인공지능을 마냥 기다리거나, 역으로 인공지능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인간과 인공지능을 이분법적으로, 둘의 존재가 다르다고 봐서는 이 시대의 방향성을 오인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으로 본 결과 인간의 끝없는 자연 착취와 파괴가 이어졌고, 그 결과 환경오염, 기후위기, 코로나19 같은 자연의 역습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인공지능을 인간과 다른 존재라고 분리해서 보는 한, 인간의 문명은 도약하기 어렵다. 기껏해야 인간의 반복적인 일을 인공지능에 대신 시키는 정도에서 이 기술의 활용은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우려되는 일은 인간 스스로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에 갇혀 반복적인 일상을 살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나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그건 내 삶의 패턴을 반복하도록 부추기거나 내가 선호하는 정보만을 지속해서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질곡이다.
내가 다른 삶을 꿈꾸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이 나에게 다른 정보를 줄 리 만무하다. 내가 변해야 인공지능도 변한다. 내가 창의적이어야 인공지능도 창의적으로 된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함께 창의적으로 도전하고 바꿔야 할 일의 목록을 찾는 것이 지금의 전환적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전략이 될 것이다.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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