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창성의 '용산 리포트'] 13. 허위정보와의 전쟁
부활절 예배, 신문의 날, 민주주의정상회의서 경고
'일광횟집' 등 선동 반일(反日)기류 편승 확산
총선 맞아 정책선거 뒷전 허위정보 가짜뉴스 우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습니다. 그해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을 거론할 때 탈진실이 자주 인용됐습니다.
탈(脫)진실은 실제 일어난 일, 즉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전체주의의 기원’을 저술한 한나 아렌트는 1972년 ‘정치학에서의 거짓말’이라는 논문에서 ‘탈사실(defactualiza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허구와 사실을 판별할 수 없는 상황. 탈진실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예지일까요.
오늘날 정치와 언론에서 자주 인용되는 ‘가짜뉴스’는 탈진실의 배다른 형제라고 봅니다.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 사례를 살펴보고 윤석열 대통령의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에 대한 인식도 추적해 보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부산에서 전국 시·도지사와 중앙 정부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4차 중앙지방협력회의를 가졌다. 2030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원팀을 당부하며, 결의를 다지는 자리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를 마치고 해운대 한 횟집에서 야당 출신 시·도지사들도 참석한 가운데 저녁 식사를 하고 2030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해 힘을 모아준 시·도지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뒤 횟집 이름인 ‘일광(日光)수산횟집’과 일제의 ‘욱일기(旭日旗)’ 등의 연관성을 주장하며 윤 대통령을 친일(親日)로 몰아가는 가짜뉴스들이 온라인에서 전염병처럼 창궐했다.
용산 대통령실은 9일 “본질을 외면한채 식당 이름을 문제 삼아 반일(反日)을 선동한다”고 비판했다.
기장을 비롯해 장안·정관·일광읍과 철마면 등 4개 읍과 1개 면을 두고 있는 부산 기장군은 10일 “일광읍 주민과 기장군 주민 전체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횟집 이름인 ‘일광수산’의 ‘일광’은 기장군 ‘일광읍’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일광읍은 기장군의 옛 읍성의 진산(鎭山)이었던 일광산(日光山)에서 유래했다. 기장향교 남루(南樓) 상량문에는 ‘일광산’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이 상량문은 인조 6년(서기 1628년)에 지은 글로, 역사가 무려 395년에 이른다.
청담동 술자리부터 세월호 참사 관련 괴담,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둘러싼 음모론, 광우병 괴담까지 가짜뉴스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이 존재하면서 일종의 비즈니스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오후 서울 영락교회에서 열린 부활절 예배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제가 늘 자유민주주의라는 우리의 헌법 정신,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제도와 질서가 다 성경말씀에 담겨있고 거기에서 나온다고 했다. 진실에 반하고 진리에 반하는 거짓과 부패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없도록 헌법 정신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부활절 예배 연설은 자유민주주의와 우리의 헌법 정신이 성경 말씀에 담겨 있다고 강조하면서, 진실과 진리에 반하는 거짓과 부패는 자유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위협하고,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는 점을 역설한 것으로 해석된다.
교회라는 공간적 한계, 성도라는 대상적 한계를 고려한 완곡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솔직한 속내에 한발 더 접근해 보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67회 신문의 날 기념식에 김은혜 홍보수석을 보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윤 대통령이 부활절 예배에서 언급했던 진실과 진리, 거짓과 부패는 공론의 장을 담당하는 언론의 영역에서 절대적 가치라는 점에서 신문의 날 축사는 대통령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창(窓)이다.
윤 대통령은 축사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인쇄 기술이 불러온 신문의 탄생과 보편화를 통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신문인들의 노력은 우리의 헌법 정신이자 번영의 토대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원동력이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잘못된 허위 정보와 선동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국민의 의사 결정을 왜곡함으로써 선거와 같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시스템까지 와해시킨다. 신문이 정확한 정보의 생산으로 독자들로부터 신뢰받을 때 우리의 민주주의도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대한 정보의 확산이 온라인을 타고 빠르게 이뤄지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신문의 역할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특히, 지식 문명을 선도해 온 신문이 사실에 기반한 정보 생산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신문의 날 축사를 통해 최근 윤 대통령의 생각과 걱정의 단면을 좀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진실과 진리, 거짓과 부패라는 철학적 명제가 허위정보와 선동이라는 현실적 문제로 분명해졌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나라는 최근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미국, 네덜란드 등과 공동으로 주최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12월 전 세계적으로 도전받고 있는 민주주의를 되살리자는 취지로 처음 개최한 국제회의다. 당시 회의는 △반(反)권위주의 △부패 척결 △인권 증진을 의제로 약 110개국 정부와 시민사회, 민간단체가 참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개막 연설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각국의 노력을 당부하는 동시에 언론자유 등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4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서울에서 열린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도-태평양 지역회의에 참석해 환영사를 했다. 이날 연설도 최근 윤 대통령의 생각과 걱정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여한 국가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모두가 자유, 법치, 인권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민주주의는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이고 또 법치는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로서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제도다.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는 것이 바로 부패다. 부패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개별 부패 행위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개별 부패 행위의 그 본질을 추출하면 바로 공동체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마비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윤 대통령은 나아가 “특정 집단과 세력이 주도하는 허위정보 유포와 그에 기반한 선동, 또 폭력과 협박, 은밀하고 사기적인 지대추구 행위, 이런 것들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더 본질적으로 이야기하면 진실에 반하고, 진리에 반하는 것 일체가 바로 부패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자유를 억압한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최근들어 연이어 강조하고 있는 특정 집단과 특정 세력이 주도하는 허위정보 유포와 이에 기반한 선동, 그리고 이 선동이 민주주의라는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무력화한다는 발언은 확신에 찬 믿음으로 보인다.
이 연설 하루 전인 지난달 29일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본회의 제1세션의 윤 대통령 모두 연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세계는 지금 다양한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정학적 갈등과 이익 경쟁이 어우러져 국제사회가 분절되고 다자간 협력이 크게 위축됐다. 특히, 지난 세기 인류의 자유와 번영을 이끌어온 민주주의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권위주의 세력들의 진영화에 더해서 반(反)지성주의로 대표되는 가짜민주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 2021년 제1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퇴조에 공동으로 대처하고자 시작됐다. 우리는 각고의 혁신과 연대를 통해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힘에 의한 현상변경 시도가 자유를 위협하고 있고, 온라인을 타고 전방위로 확산되는 가짜뉴스는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협함으로써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잘못된 허위정보와 선동은 국민의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선거와 같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시스템을 와해시킨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아울러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과 규범에 의해 이뤄져야 하고 그것이 바로 법치다.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 구현될 수 있다. 저는 취임직후부터 자유, 인권, 법치를 강조해왔다. 이것은 우리 민주주의를 작동하는 요체다. 민주주의는 인류의 자유를 지켜내고 보장하는 유일한 시스템이자 메커니즘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자유민주주의에 충성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소신은 국내는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변함이 없다.
진실과 거짓이 뒤엉켜 돌아가고, 진리와 부패가 승부없는 투쟁에 몰입하는 동안 결과적으로 허위정보와 선동이 국민의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선택은 무엇일까.
영국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 가운데 한 명인 제임스 볼(James Ball)이 내놓은 책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는 하나의 팁을 제공한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1994년 언론 시장에서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관한 보도 열풍이 불자 이를 이용해 아파트와 리조트를 팔기 위해 작전에 들어갔다. 그는 찰스와 다이애나 부부의 가짜 리조트 회원권 신청서도 만들었다. 그리고 뉴욕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사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찰스와 다이애나가 트럼프타워 아파트를 구매할 예정”이라고 거짓정보를 알렸다. 그뒤 편집자는 자료 조사를 하고 영국 버킹엄궁에 전화를 했다. 버킹엄궁은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그뒤 관련 보도를 접한 사람들에게는 다이애나와 찰스 부부가 트럼프타워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임스 볼은 책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트럼프가 리조트 회원권이나 트럼프타워 아파트를 파는 방식은 일반적인 판매 전술과 많이 다르다. 이는 그냥 사기다”라고 저격한다. 그 도널드 트럼프가 24년후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됐다.
정책선거의 효과보다 음모론과 가짜뉴스의 달콤함에 중독된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트럼프식의 허위정보와 선동으로 선거판을 뒤집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 전조가 이미 나타나고 있고 지금 우리가 그 피해의 당사자일 수 있다.
진실과 거짓, 진리와 부패와의 전쟁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의 헌법 정신과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까. 또한 허위정보와 선동을 이겨내고 내년 총선에서 노동·연금·교육개혁을 뒷받침할 안정적인 의석과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 필자소개 *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15년 동안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청와대와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대통령실을 취재하고 있다. 지난해 ‘BH 청와대 그 마지막 15일, 북악에서 용산까지’를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강원도민일보 지면은 물론 네이버와 카카오의 뉴스 서비스를 통해 용산 대통령실 국정을 주제로 전국의 뉴스 콘텐츠 소비자들과 실시간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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