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급한불 꺼지자 사실상 금리 인상 끝…한미 금리차가 과제
한미 1.75%p 금리차에 석유감산 겹쳐 환율·물가 뛰면 재인상 여지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박대한 민선희 기자 = 한국은행이 지난 2월에 이어 11일에도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경제 주체들과 시장은 2021년 8월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 사이클이 사실상 끝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 초반까지 떨어지는 등 한은의 전망대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점차 줄어드는 데다, 1∼2월 연속 경상수지 적자를 비롯해 갈수록 경기 하강 신호가 뚜렷해지는 만큼 한은이 다시 기준금리 추가 인상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한은의 동결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5월 추가 인상에 나서면, 금리 격차는 1.75%포인트(p) 이상으로 벌어지고 원/달러 환율 상승과 외국인 자금 유출 압박이 커진다는 점은 한은의 고민거리로 남아있다.
3월 4.2%로 떨어진 물가…한은 "연말 3%대로"
이날 기준금리 동결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110.56)는 작년 같은 달보다 4.2% 올랐다. 상승률이 2월(4.8%)보다 0.6%p 떨어졌고, 작년 3월(4.1%) 이후 1년 만에 가장 낮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앞서 지난달 7일 물가 전망과 관련해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로 낮아졌는데, 3월의 경우 4.5% 이하로 떨어지고 연말 3%대에 이를 것으로 본다"고 말한 바 있다.
3월 상승률이 이 총재와 한은의 전망보다 오히려 더 낮고 경로에서도 벗어나지 않은 만큼, 무리하게 기준금리를 더 올려 경기 위축을 부추기기보다는 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물가·환율·경기 등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도 기준금리 결정에 앞서 "인상의 명분은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압력일 텐데,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년 만에 가장 낮은 4.2%로 내려와 인상 압박이 많이 줄었다"고 진단했다.
역성장 우려 속 금리인상 무리…한은, 올해 성장률 전망 1.6%보다 낮출 듯
가라앉는 경기도 동결의 핵심 명분이 됐다.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분기 대비)은 수출 부진 등에 이미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0.4%)로 돌아섰고, 올해 1분기 역성장 탈출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1∼2월 경상수지는 11년 만에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통관기준 무역수지도 3월(-46억2천만달러)까지 13개월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세계 경제 침체를 경고했고, 미국 지표도 그렇다"며 "지금은 경기 침체가 인플레이션보다 더 큰 이슈로, 금통위가 이를 고려해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진욱 씨티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오는 5월 내놓을 수정 경제 전망에서 현재 1.6%인 올해 실질 GDP 성장률 예상치를 1.0∼1.5%까지 낮추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5%에서 3.3∼3.4%로 하향 조정할 것으로 봤다.
금융불안지수 5개월째 '위기'…한은 "SVB사태로 외인자금 유출 가능성"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CS) 유동성 위기 등으로 고조된 금융위기 가능성도 한은의 추가 인상을 막았다.
조 연구위원은 "글로벌 은행들의 파산으로 신용공급 경색 우려가 커졌고, 국내 금융시장과 자금시장에서 아직 부동산 관련 비은행권의 불안도 해소되지 않았다"며 "이런 상태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은도 앞서 지난달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SVB사태의 영향에 대해 "국내 금융기관은 SVB 등과 자산·부채 구조가 다르고 각종 금융규제도 유동성·상황도 비교적 좋아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다만 이번 사태로 글로벌 금융 여건이 급변하면 금융시장 가격변수 변동성 확대, 일부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 경계감 부각, 취약부문의 잠재 리스크 등이 현실화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SVB 사태 등으로 위험회피 성향이 강해지고, 글로벌 유동성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금융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실물·금융 지표를 바탕으로 산출된 금융불안지수(FSI)는 올해 1월과 2월 각 22.7, 21.8로 집계됐다. 지난해 10월(23.5) '위기' 단계(22 이상)에 들어선 뒤 5개월째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SVB 사태 등의 영향으로 3월 이후에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미 금리차에 환율 뛰고 외인자금 유출되면 다시 인상 고민…유가도 변수
이날 연속 동결로 한은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은 희박해졌지만, 아직 한미 기준금리(정책금리) 격차가 변수로 남아있다.
미국 연준이 지난달 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를 0.25%p(4.50∼4.75%→4.75∼5.00%) 올리면서, 현재 한국 기준금리(3.50%)는 미국보다 1.50%p 낮은 상태다.
1.50%p도 이미 2000년 10월(1.50%p) 이후 가장 큰 금리 역전 폭인데, 시장의 예상대로 5월 연준이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만 밟아도 미국(5.00∼5.25%)과의 격차는 1.75%p까지 벌어진다.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한미 금리 역전 폭이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이 한은의 기준금리 재인상 여지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상이 끝났다고 단정하기 이르고, 금통위도 이번에 동결을 결정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올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로 한은은 연내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메시지는 주지 않을 것 같은데, 물가보다 금리가 낮은 실질금리 마이너스(-) 상태가 지속되는 만큼 지금 통화 완화 기대를 키우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 연구위원도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매우 높은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한은은 내년 이후에나 미국의 인하를 지켜본 뒤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한미 금리 격차가 계속 1.5%p 이상이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원/달러 환율 상승)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국제 유가도 향후 한은 통화정책의 불확실성 요인이다. 최근 산유국들의 감산 결정의 여파로 유가가 치솟고 국내 물가가 다시 들썩일 경우 한은도 기준금리 재인상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 총재도 지난달 "우리(한은)는 국제 유가가 올해 배럴당 70∼80달러로 유지될 것으로 가정하지만, 중국 경제 상황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라 유가가 90달러 이상 100달러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고, 공공요금 조정도 예정된 만큼 이런 변수들을 다시 봐야 할 것"이라며 유가 동향을 우려한 바 있다.
shk999@yna.co.kr, pdhis959@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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