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소피의 탄생’ 김환희 인터뷰…뮤지컬 ‘맘마미아!’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17]
- “춤 잘 춘다고요?” 하하! 사실은 뚝딱이랍니다
- “너 뮤지컬 해볼래” 교수님 말씀에 가수 꿈 접어
- 롤모델은 최정원 선배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져”
‘일일공프로젝트’ ‘맘마미아!’ 편에서 김환희 배우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이라면, 저는 김환희 ‘소피’가 썩 마음에 들었습니다. 독특하면서도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에 완벽하게 부응합니다. 이전까지는 극의 중심에 도나가 있고, 그가 극을 움켜쥐고 끌어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김환희 소피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맘마미아!’의 문을 열고 닫는 캐릭터가 소피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김환희 배우와의 인터뷰는 뮤지컬 ‘맘마미아!’가 공연 중인 충무아트센터 1층의 카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맘마미아!’ 제작사 신시컴퍼니 홍보팀의 최승희 실장과 오랜 만에 담소를 나누고 있자니 이름처럼 ‘환한’ 웃음과 함께 김환희 배우 도착.
- 한번 들으면 좀처럼 잊기 어려운 이름인데요. ‘환희(歡喜)’. 사전적 의미로는 ‘매우 기뻐한다’랄까 ‘큰 기쁨’이랄까. ‘기뻐할 환’에 ‘기쁠 희’. 한자로도 같을까요?
“저는 빛날 환(奐)에 여자를 의미하는 희(姬)예요.”
- 빛나는 아가씨?
“네, 맞아요(웃음)”
- 예명이라고 해도 아주 예쁜 이름인데요. 본명이죠?
“본명이에요. 흐흐 감사합니다.”
- 뮤지컬 ‘킹키부츠’에서는 로렌, ‘브로드웨이42번가’에서는 페기 소여, 이번에 ‘‘맘마미아!’!’에서는 소피 역을 맡았죠. 그러고 보면 세 인물이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어딘지 당차고, 고난 앞에 굽히지 않고 ….
“저는 캔디 생각을 했어요. ‘외로워도 슬퍼도~’. 소피 역을 연습할 때도 그렇고, 공연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김환희로서도, 소피로서도 울면 안 됐거든요.”
- 지금까지 ‘맘마미아!’를 대여섯 번은 봤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관람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이번에는 좀 각별하게 봤거든요. 뭐랄까. 이번 시즌 ‘맘마미아!’는 굉장히 박력이 있었어요. 흥겹고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이라고 생각은 해 왔지만 이번엔 좀 더 화끈하고 색깔이 짙다고 해야 할지. 이런 걸 배우들도 체감하고 있을까요.
“확실히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최)정원 선배님이랑 (홍)지민 선배님께서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이번엔 왜 이렇게 좋지?’ 하신 적도 있고요. 저는 이번이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이번 시즌이 기존에 비해 좀 다른 느낌이 확실히 있긴 한 모양이에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연습을 하다가 ‘내가 이걸 다르게 하고 있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어요. ‘너무 너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가지 말라’고 연출님이 말씀하셨죠.”
- 아하, 그거 흥미로운데요.
“그때 전 솔직히 반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건 순간적인 감정이었을 뿐이고,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다르더라고요. 망치로 한대 딱 맞은 기분이었죠. ‘지금까지 했던 것들이 너무 김환희의 감정만으로 갔었구나’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캐릭터를 먼저 생각하고, 캐릭터로 갔어야 했는데. 연출님 얘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렇게까지는 안 갔겠구나’ 싶었죠.”
- 그래서 이후에는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연출님의 디렉팅과 대본을 우선으로 놓고 갔죠. 누구 것을 따라 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주신 것 그대로, 내가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 그대로.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김환희만의 소피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굳이 꾸미려고 하지 않아도 말이죠.”
- 듣고 보니, 어떤 장면이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연인인 스카이랑 해변에서 싸우고, 아빠 후보 중 한 명인 샘이 나타나서 ‘내게 네 아빠야’하는 장면이에요. 저는 거기에서 너무 충격을 받은 거죠. ‘아니, 자기가 뭔데 이제 와서. 생물학적 아빠라고, 뭐가 잘났다고’하는 감정이었을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을 흘리고, 진짜 어이없어서 막 소리를 질렀거든요. 샘 아저씨에게 엄청 화냈어요.”
- 그 연기를 보고 연출님이 말씀하신 거군요.
“네. ‘너무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냐.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하셨죠. 스카이와 싸운 감정이 아직 남아있어야 하고, 스카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있어야 하는데 샘에게 그렇게까지 화를 내면 안 된다는 말씀이셨죠. ‘포커스가 아직 샘한테 가면 안 된다’고도 하셨어요. 그래서 고민했어요. ‘왜 샘에게 가면 안 될까’ 싶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죠.”
- 어떻게 바꾼 건가요.
“연출님 말씀대로 해보니까 무슨 말씀이셨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대본대로 했던 것 같아요.”
- 그러고 보면 ‘맘마미아!’ 초연 때부터 ‘샘, 빌, 해리 중 진짜 소피의 아빠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소피가 아니라 김환희 배우가 생각하는 ‘진짜 아빠’는 누구인 것 같아요?
“저는 빌 같아요.”
“일단 자유로움. 그게 첫 번째 이유죠. 빌의 이모님이 엄마에게 유산을 물려준 것도 그렇고요.”
- 자유로움이 이유라면 엄마를 닮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죠. 근데 저는 빌한테 좀 많이 끌리더라고요.”
(‘맘마미아!’는 소피의 ‘진짜 아빠찾기’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후보는 세 사람. 샘 카마이클은 뉴욕에 사는 건축가로 세 사람 중 가장 도나를 사랑하는 인물이고 해리 브라이트는 잘 나가는 은행가입니다. 마지막으로 김환희 소피가 지목한 빌 오스틴은 유명한 여행작가입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과 관련된 글을 쓰는 사람인데, 정작 아빠가 된다는 사실에는 두려움을 갖고 있죠. 옆에 있던 최승희 실장이 “초연 때 ‘누가 아빠일까’ 이벤트를 했는데 빌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고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해리가 아빠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돈이 많아서요? 저도 생각은 해봤는데요. 재미없을 것 같아서, 아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 사실 유전자 검사하면 다 나오는 걸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그러게요. 하하하!”
- 해리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해리가 도나에게 소피 결혼 축하금이라면서 두툼한 봉투를 건네잖아요. 소품인데, 그 안에 진짜 돈이 들어 있는 건 아니겠죠.
“어, 돈이에요. 정말 돈이 들어있어요. 그것도 정확한 액수로.” - 스포츠동아라든지, 신문지 같은 것을 구겨 넣은 것이 아니고요?
“아니에요. 이 작품이 얼마나 디테일한데요. 예를 들어 처음 세 남자가 도나의 모텔에 도착했을 때 비닐봉지 같은 걸 들고 와요. 그것도 그냥 봉지가 아니에요. 우리나라에 없는 거예요.”
- 정말 어마어마하게 디테일하군요.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지휘하시는 음악감독님 악보를 보면 넘버의 제목이 안 적혀 있어요. 근데 다른 연주자들은 다 적혀 있거든요.”
- 왜 그런 걸까요.
“앞줄 객석에서는 음악감독님의 악보가 보일 수 있어서래요. 그럼 다음에 나올 넘버를 미리 알 수 있으니까. 초연 때부터 그랬대요.”
- 으아, 정말 치밀의 극치로군요.
“치밀합니다.”
“다르죠. 처음에 부를 때는 진짜, 완전, 희망을 전제로 해요. 그 희망 위에 떨림, 기대, 두려움 같은 게 있죠.”
- 어쩐지 노래가 하늘하늘 떠다니는 것 같더군요.
“그렇죠. 그런데 마지막 곡에서는 뭐랄까 … ‘다 이루었도다’ 같은?” - 맞아요. 약간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정말 가사 그대로인 것 같아요. 실패해도 난 또 도전할 거고, 도전하니까 지금 이런 재밌는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고. 그러므로 난 또 일을 벌일 것이다 … 이런 생각 아닐까요. 정말 기분이 달라요. 처음하고 끝에 노래할 때.” - ‘맘마미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넘버나 장면은 어떤 걸까요. 꼭 소피의 넘버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너무 많은데 하나만요?”
- 두 개도 괜찮습니다(웃음).
“음 … 역시 도나의 ‘The Winner Takes It All’이겠죠.”
- 도나의 노래가 그야말로 절창이죠. 전체 극 중에서 가장 큰 박수가 쏟아지더군요.
“사실 슬픈 노래인데, 가사가 너무 좋아요. 도나 입장에서만 부를 수 있는 노래죠. 무대 밖에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찢어지는 장면이에요. 그리고 … 소피의 넘버 중에서는 ‘I Have a Dream’을 꼽고 싶어요. 마지막에 부르는 거. 그야말로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곡 같아서요. 저도 부르면서 막 도전하고 싶어지거든요(웃음).” - 실제 김환희라는 인물과 소피는 많이 닮은 편인가요. 이런 질문은 진부해서 좀처럼 하지 않는데, 김환희 배우를 보고 있으니 어딘지 소피와 겹치는 듯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쓰러지지 않는 오뚝이 같은 부분이 닮았을까요.”
- 좀처럼 쓰러지지 않는 타입이로군요.
“일상이고 삶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은근 긍정적인 편이거든요. ‘다 잘 될 거야’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해요. 뭐 실패가 닥쳐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뜻이 있겠지. 다음이 있겠지. 내 것이 아닌가 보지 …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굳이 저랑 소피가 닮은 점을 찾지 않더라도, 연기를 하면서 비슷한 점들이 나타났던 것 같아요.”
- 예를 들어 어떤 장면에서일까요.
“해변에서 스카이랑 사랑하는 신이 있어요. 거기서 ‘너 없는 세상은 난 이제 두려워. 자존심도 버렸어. 난 널 위해 모든 걸 바칠 수 있어…’하는 부분인데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어린애의 사랑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아빠를 찾을 정도로 성숙한 소피가 스카이에게 이런 고백을 하니까요. 모든 걸 다 할 수 있지만, 그 조그만, 못하는 부분에서 이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이 부분에서 소피에게 마음이 가더라고요.”
- 제가 보기에 역대 소피 중 춤을 가장 잘 추시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브로드웨이42번가’ 탭댄서 출신이라 그런가했죠. 혹시 무용을 전공하셨나 싶어 찾아봤더니 실용음악 전공이시더라고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춤은 좋아하는데 잘 추지는 못해요. 누가 들으면 정말 웃을 걸요. 진짜 흥이 많기는 한데, 춤을 잘 추지는 못해요. 흥 때문에 잘 춰 보일 수는 있겠지만.”
- 제가 속았군요!
“흐흐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잘 못 춰도 열정이 많으면, 자신감이 있으면 잘 춰 보이는 거. 노래도 그렇고. 사실 전 뚝딱이랍니다. 언니, 오빠들이 기본기를 많이 가르쳐주세요. 저도 열심히 배우고 있고요.”
- 그러고 보면 우리 중에서 아바 세대는 없네요. 아바의 전성기가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이라고 보면 정말 오래된 음악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맘마미아!’를 보고 있자니 하나도 낡은 느낌이 안 들었어요. 스토리와 한 몸 같다고나 할까.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아바의 음악은 … 음, 정말 ‘말하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 분들이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고자 했던 것 같거든요.” - 그리고 그 메시지는 여전히 지금도 유효하다는?
“네. 진짜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던 거잖아요. 그것을 가사로 쓰고. ‘여기를 이렇게 더 꾸며봐야지’라든가 ‘이렇게 가사를 쓰면 더 예쁘겠다’라는 게 아니라 정말 있는 대로, 말 그대로 쓴 느낌이거든요.”
- 그래서일까요. 유명 가수들의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들을 보면 아무래도 배우들이 넘버를 부를 때 원곡 가수가 겹치게 된단 말이죠. 예를 들어 퀸의 음악으로 만든 ‘We Will Rock You’만 해도 한쪽 귀에서는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거든요.
“맞아요. 그런데 아바 음악은 좀 다르죠?”
- 확실히 그렇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게 궁금했는데 이제 답을 좀 얻은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런 걸 질문해도 될지 ….
“물어보세요(웃음).”
“아, 악몽 신이요.”
- 중간에 보면 도나가 침대에서 불쑥 등장을 하거든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죠. 마치 마술 같은 장면인데, 도대체 어떤 장치가 있는 건가요. (이 질문에 김환희 배우와 최승희 실장이 그야말로 카페가 떠나가라 웃어댔습니다.)
“비법이에요. 그거. 말씀드릴 수 없어요! 크크크”
- 쩝, 알겠습니다. 다음 관람 때는 눈을 부릅뜨고 봐야겠네요. 김환희 배우는 원래 뮤지컬 배우 지망생이었나요. 데뷔 얘기 좀 들려주세요.
“전 원래 실용음악 보컬 전공이었어요. 그래서 노래하는 일을 하고 싶었죠.”
- 원래는 가수가 꿈이었군요.
“가수 앨범에 코러스로 참여하기도 하고. 그런데 문득 제가 직접 무대에 서고 싶어지는 거예요. 당시 정기적으로 교수님, 학우들이랑 갖는 모임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너 뮤지컬 해볼래’ 하셨죠. 그때부터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요. 춤, 노래를 익혔죠.”
- 교수님께서 안목이 있으셨네요.
“그런가요(웃음). 교수님 친구 분께서 뮤지컬을 하셨어요. 그 분께 1년 동안 레슨을 받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판타지아’로 데뷔를 하고, 앙상블도 하고, 대학로에서 공연도 하고.”
“최정원 선배님이요. 선배님의 에너지가 정말 멋있거든요. 본받을 점이 너무 많은 분이세요. 열정적이시고, 늘 공부하시고, 관리하시고, 소통하시고.”
- 무서운 선배님은 아니군요.
“전혀요. 정원 선배님은 뮤지컬이 일이라기보다 삶 자체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요. 제가 조금이라도 힘들고 지쳐 있다가도 선배님을 보면 쑥스러울 정도로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 자아, 드디어 마지막 질문입니다. 독자 분들께 한 말씀 남겨주세요!
“제가 처음 ‘맘마미아!’를 대할 때는 마냥 신나는 작품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습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공연을 하면서도 느껴지는 건, 정말 드라마가 있는 작품이라는 거예요. 왜 ‘맘마미아!’라고 제목을 지었는지도 알겠고요. 작품 자체가 그야말로 ‘맘마미아!’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은 많은 분들께서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신나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드라마의 따뜻한 기운을 많이 받아가셨으면 합니다!”
인터뷰가 끝났습니다. “인증샷 한 장 찍자”는 말에 김환희 배우는 흔쾌히 응해 주었습니다. “이거 들고 찍어주세요”하며 최승희 실장이 ‘오늘 나와서 따끈따끈하다’는 ‘맘마미아!’ 프로그램 북을 얼른 들려주었습니다.
찰칵! ‘맘마미아!’ 또 만나요.
※ 일일공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편은 공연을 보자’는 대국민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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