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고든 무어 인텔 창업자 별세 | 반도체 혁신 ‘무어의 법칙’ 주인공, 실리콘밸리 전설로 잠들다
반도체 회로 집적도(반도체 칩 구성 소자 수)는 2년 만에 두 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을 만들어 IT 혁명의 이정표를 제시한 고든 무어 인텔 공동 창업자가 3월 24일(현지시각) 94세로 별세했다. 미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199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제패한 그의 사망 소식에 애도를 표하고 있다. NYT 등에 따르면 인텔 측은 이날 무어가 하와이 자택에서 가족이 함께한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하며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 항상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던 훌륭한 과학자이자 뛰어난 사업가였다”고 그를 추모했다.
꿈 많던 젊은 화학자
1929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작은 바닷가 마을 페스카데로에서 자란 무어는 어린 시절 이웃이 선물로 준 과학 상자를 통해 화학을 접하면서부터 화학자를 꿈꿨다. 1946년 산호세 주립대학에 입학해 화학 전공으로 2년 동안 공부하다가 1948년에 UC 버클리 화학 전공으로 편입, 1949년에 학사 학위를 땄다. 이후 캘리포니아 공대(칼텍) 대학원에 입학했고 1954년에 화학과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56년 무어는 첫 직장으로 윌리엄 쇼클리가 세운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에 들어갔다. 쇼클리는 접합형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 결정된 유명 인사였다. 하지만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무어는 명성과는 다른 쇼클리의 강압적인 경영방식 등에 회의를 느끼고 후회하게 됐다. 당시 함께 다니던 몇몇 엔지니어도 무어의 생각에 동의했는데, 이 중엔 훗날 인텔을 함께 창업한 로버트 노이스도 있었다.
8명의 배신자, 실리콘밸리 문화 만들다
1957년 9월, 무어와 노이스 등 8명의 젊은 과학자는 결국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나오기로 결심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이 단체로 퇴사하자 쇼클리는 분노하면서 ‘8명의 배신자(The Traitrous Eight)’라고 공개 비난했다. 한 번 입사한 회사는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관행이었던 당시 분위기에서 이들을 받아주는 회사는 아무데도 없었다. 그러나 가진 것이라곤 열정과 지식뿐이었던 이들에게 일생일대의 조력자가 나타났다. 바로 오늘날 ‘벤처캐피털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서 록이다. 록은 다른 직장을 찾아 나서는 이들에게 “회사를 직접 차려야 한다”고 조언했고, 초기 회사 설립 자금 모집을 도왔다.
무어와 노이스는 페어차일드 카메라 인베스트먼트로부터 130만달러(약 16억원)의 투자를 받아 같은 해 ‘페어차일드 반도체(이하 페어차일드)’ 회사를 설립했다. 페어차일드는 기존 게르마늄 대신 실리콘을 소재로 한 반도체 개발에 최초로 성공했고, 1960년대 미국 IT의 상징인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 중 하나로 성장해나갔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회사는 1967년 적자 전환하면서 비수익 사업 정리 명령에 따라 내부 갈등이 심화됐고, 대주주 셔먼 페어차일드와 갈등을 계기로 무어는 다시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실무 경험 기반 ‘무어의 법칙’ 탄생
무어는 ‘무어의 법칙’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처음에는 법칙이라기보다 1965년 과학잡지 ‘일렉트로닉스’ 창간 35주년 특집호에 실린 한 편의 기고문 일부에 불과했다. 페어차일드 연구개발 이사였던 그는 실무 경험을 토대로 “기술 향상으로 반도체 회로 집적도가 매년 두 배로 증가할 것이며 이 추세는 향후 10년간 유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무어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75년 기술 향상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재수정했다). 이를 카버 미드 칼텍 교수가 추후 ‘법칙’으로 명명하면서 업계가 달성해야 할 기준처럼 굳어져 버렸다. 이 법칙은 수십 년 동안 반도체 산업 연구개발(R&D) 계획 수립을 위한 중요 지침으로 떠오르게 됐다.
개척자 정신 이어간 인텔 CEO
무어가 또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은 건 1968년 7월 노이스와 반도체 기업 NM 일렉트로닉스(현 인텔)를 설립하면서였다. 이들은 페어차일드 동반 퇴사 후 같은 회사 출신인 앤드루 그로브, 레슬리 배다스를 추가 영입하며 세계 1세대 반도체를 이끈 인텔의 창립 멤버를 구성했다. 무어는 당시 500달러(약 65만원)를 투자해 실리콘밸리 샌타클래라 지역에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반도체 성능은 높이되 비용은 줄이는 연구개발에 총력을 다했고, 마침내 NEC·도시바·히타치 등 1970년대부터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기업과 경쟁에서도 살아남았다. NYT는 “1990년대 후반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컴퓨터의 80%에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탑재됐다”며 “이후 인텔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반도체 회사가 됐다”고 전했다.
무어는 1975년부터 인텔의 2대 CEO로 활동했으며, 1979년 4월부터는 이사회 회장도 병행했다. 그는 CEO로 활동하면서도 항상 직원들과 동일한 공간에서 일하며 개척자로서의 소신과 자세도 잊지 않은 겸손한 리더였다. 무어는 1987년 그로브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고, 1997년에는 이사회 회장에서도 물러난 후 명예회장이 됐다.
무어는 자선사업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지난 2000년 아내와 함께 설립한 ‘고든앤드베티무어재단’을 통해 과학 발전과 환경보호 운동에 현재까지 약 51억달러(약 6조6085억원)를 기부했다. 2002년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미 정부 자유 훈장을 받았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무어의 순자산은 약 75억달러(약 9조7185억원)에 달한다.
Plus Point
8명의 배신자가 남긴 실리콘밸리 문화
‘VC 협력, 연쇄 창업… 수백 개 페어칠드런 탄생’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006년 한 기사에서 “8명의 배신자(The Traitorous Eight)가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집단 퇴사한 날은 곧 ‘실리콘밸리가 탄생한 날”이라고 규정했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문화는 이후 창업을 한 8인의 배신자가 일으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든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 혹은 배신자 8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회사들은 실리콘밸리 지역에 수백 개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페어칠드런(Fair-children)’이라 부른다.
대표적으로 8명의 배신자 중 가장 먼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나온 유진 클라이너는 토머스 퍼킨스와 함께 1세대 벤처캐피털(VC) 회사인 ‘클라이너퍼킨스’를 만들었다. 제이 레스트, 진 호에니, 셸던 로버츠는 ‘텔레다인 테크놀로지’를 설립했고, 빅터 그리니치, 줄리어스 블랭크는 이후 여러 회사를 창업한 후 매각하는 것을 반복하며 ‘연쇄 창업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 밖에 8인 외에도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일하던 제리 샌더스는 반도체 회사인 어드밴스트마이크로디바이시스(AMD)를 설립했고, 돈 밸런타인은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캐피털을 만들어 엔비디아에 초기 투자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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