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영의 브랜드 & 트렌드 <33>] ‘부산 이즈 굿’…부산의 새로운 도시 브랜드 슬로건
‘다이내믹 부산’이 20년 만에 바뀌었다. 부산광역시의 새로운 슬로건, ‘부산이라 좋다(Busan is good)’가 선을 보였다. “마, 부산!” “부산 아이가?”면 슬로건으로 충분하다는 시민이 많을 만큼 부산시민의 부산에 대한 자긍심은 높다. 부산시민은 부산을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만 여기지 않는다. 두 번째로 큰 도시가 아니라 서울보다도 좋은 곳, 제일 독특한 곳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부산은 부산이지 굳이 다른 곳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산이라 좋다’가 슬로건이 됐다. ‘부산이 좋다’가 아니라 부산이니까 좋은 것이고 부산이라서 더 좋기에 ‘부산이라 좋다’가 된 것이다.
영문 슬로건 ‘Busan is good’에는 지향점이 담겨있다. 시민의식 조사 결과, 부산은 더 글로벌해져야 하고 포용성과 개방성이 중요한데, 부산의 독특함은 이어져야 하며 앞으로도 더 역동적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영문 슬로건 ‘Busan is good’에서 ‘good’은 글로벌(global), 개방성(open), 고유성(original), 역동성(dynamic)의 앞 글자를 따왔다. 의미를 담는 열쇠말로 만들어졌다. 기존의 ‘다이내믹 부산’도 승계했고 향후 ‘Busan is good’의 앞 글자로 ‘BIG Busan’ 캠페인으로 진화할 것까지 고려했다.
실체 변화의 방향성까지 담았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부산이라 좋은데 실제로 이래서 좋다고 얘기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엑스포(세계박람회) 하기에 좋은 도시임은 물론 일하기 좋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 관광하기 좋은 도시 등 부산의 발전 방향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게 설계됐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이라면 ‘Good for world movies’로 쓰이게 되는 식이다.
슬로건에 대한 오해…슬로건만 보면 어디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Busan is good’에 대해 표현이 좀 더 강렬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동감이 되는 얘기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 꽤 많은 전문가도 관습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알게 됐다. ‘Busan is good’이 부산만의 것이 되기는 어렵다는 우려가 대표적이었다. 부산에 써도 되고, 서울에 써도 되고, 심지어 뉴욕에 써도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잘된 사례로 ‘I love NY(아이 러브 뉴욕)’ ‘Be Berlin(비 베를린)’ 등의 슬로건을 언급하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사람들이 익숙하면 고유한 것으로 오해한다는 것을. 또 기업의 슬로건과 도시의 슬로건, 특히 대도시의 그것은 다를 수 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간단한 테스트를 준비했다. 도시 브랜드의 영문 슬로건을 보고 그 슬로건을 쓰는 도시가 어디인지를 맞춰보는 것이다. 슬로건만 보면 그 도시라는 것이 느껴져야 한다는 인식의 틀에 갇혀있는 사람은 꼭 맞춰보기를 권한다.
모든 문제의 정답은 보기의 마지막 ⓖ로 통일했다. 주변에 미리 물어본 결과, 1번은 아테네, 경주, 교토의 슬로건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았다. 비슷하게 ‘An old city with a young soul(젊은 영혼을 지닌 오래된 도시)’을 슬로건으로 쓰는 도시도 있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다. 2번은 LA(로스앤젤레스)나 마드리드를, 3번은 파리나 런던을, 4번은 프랑크푸르트와 헬싱키를, 5번은 싱가포르나 리버풀을, 6번은 멕시코시티나 퍼스를, 7번은 예루살렘이나 홍콩을, 8번은 라스베이거스나 홍콩을, 9번은 헬싱키나 오슬로를 많이 떠올렸다. 특히 10번 문제를 보고 보기에 뉴욕이 없어서 문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
브랜드 만드는 건 쉽지만 브랜딩은 어렵다
브랜드와 브랜딩은 다르다. 브랜드는 사람들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 연상 등’의 집합체다. 특정한 생각이나 연상을 잘 떠오르게 하기 위한 기초작업은 브랜딩이다. 이름 짓고, 디자인하고, 슬로건을 만드는 작업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에서 실체의 변화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대했다. 브랜딩을 잘하는 방법은 잘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와서 보니, 살아 보니 정말 그렇다’라고 반응하게 하는 것, 직접 경험이다. 가보지 않았어도 광고를 보거나 얘기를 들으면서 경험하는 것, 간접경험이다. 브랜딩의 핵심은 경험이다.
그러니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름 짓고, 그림 그리고, 슬로건 만들기가 어려워 봤자 얼마나 어렵겠는가. 어려운 것은 브랜딩이다. 브랜드가 주장하는 것이 진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렵다. ‘슬로건 만들고 디자인도 멋지게 뽑았으면 됐지, 무슨 일을 더 하란 말이냐?’고 우기는 사람들은 조직 어디에나 존재하기에 그렇다. 전문가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슬로건 나오고 디자인 발표되면 아쉬운 점 지적하기에 바쁘다. 그렇지만 브랜드가 선포된 이후 브랜딩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실체에 반영되는 노력은 이어지는지, 그래서 시민의 삶의 질이 조금이라도 좋아졌는지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식는다. 전문성은 지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선을 위해 존재함을 잊고 사는 전문가는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의 최근 경향
간접경험을 일으키고 직접경험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다. 기업이나 제품의 브랜드 슬로건과 도시 브랜드의 슬로건은 개발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자동차 볼보(Volvo)의 브랜드 슬로건은 ‘Volvo for life(목숨을 생각하면 볼보)’다. 목표 인식은 ‘안전’이다. 볼보는 안전, 한 마디만 남기려고 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실체 변화도 안전 하나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처럼 기업의 슬로건은 좁힐수록 효과적이다.
도시 브랜드는 다르다. 대도시일수록 슬로건에 지향점과 정체성을 짧은 문장으로 모두 담을 수 없다. 도시는 거주하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찾아주는 사람들마저 한 종류로 묶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 브랜드의 슬로건은 포괄적으로 나오게 된다. 기업 브랜드의 슬로건이 뾰족하게 다듬어 소비자의 마음을 찌르는 것이라면, 도시 브랜드의 슬로건은 실체 변화의 모습을 넉넉히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작은 도시는 슬로건만 보면 어디인지 알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산소 도시 태백’이 그러하다. ‘The sweetest place on earth(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곳)’를 슬로건으로 쓰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도시 허쉬(Hershey)가 또 그런 경우다. 짐작하듯 허쉬에는 그 유명한 허쉬 초콜릿 월드 본점이 있다. 관람차를 타고 초콜릿 제작 과정을 보는 것이 유명한 관광상품이다.
하나만 알리기에도 벅찬 소도시를 제외하면 최근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아예 슬로건 표현 안에 도시 이름을 집어넣어 만드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뾰족하지 않은 단어를 쓰면서도 고유성을 부각할 수 있게 된다.
런던의 ‘Totally London(토털리 런던)’ ‘Madrid about you(마드리드 어바웃 유)’가 그러하다. ‘I love NY’ ‘Be Berlin’은 유명한 사례다. 그런데 뉴욕은 최근 슬로건을 바꿨다. ‘We love NYC(위 러브 뉴욕시티)’로 재단장했다. 베를린은 작년부터 ‘We are Berlin(wir sind ein berlin·위 아 베를린)’을 쓰고 있다. 그러니 슬로건을 보고 그 도시가 바로 떠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긴 이제 그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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