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 인터뷰 | 철학자 한병철] “챗GPT는 계산기, 꿈 없는 정보는 방향 설정 못 해”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 2023. 4. 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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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철학자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철학 박사,전 베를린예술대 철학과 교수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재독 철학자 한병철을 만났다. ‘피로 사회’라는 정확한 진단명으로, 그가 이 세계에 충격파를 일으킨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한병철은 계속 ‘진단과 명명의 철학’을 이어왔다. 독일어로 사유한 책은 한국어 번역을 거쳐 계속 세상에 나왔다. ‘리추얼의 종말’ ‘사물의 소멸’ ‘정보의 지배’ 등등. 100페이지 분량의 짧은 문고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통렬한 산문시처럼 읽힌다. 한병철의 문장은 당대의 철학자가 일상의 환부에 꽂을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 그 자신, ‘나의 문장에는 살이 없고 뼈만 있다’고 했다. 군더더기를 제거한 현대적인 문장은 그 진실함과 명징함으로, 더 급진적이고 클래식해진다.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예컨대 새 책 ‘정보의 지배’에서 ‘밈(meme)은 미디어 바이러스로 잦은 흥분을 일으켜 담론을 파괴한다’ ‘강렬한 정보 도취가 존재의 윤곽을 흐릿하게 만든다’는 문장들에, 나는 오래 머물렀다. 감시당하고 가축이 되는 과정이 너무나 매끄러워 너도 나도 ‘좋아요! 좋아요!’ 디지털 아멘만 외치고 있다고 한병철은 경고했다. 정보 가축, 소비 가축이라는 명명이 몸을 반으로 쪼개듯 명징하게 다가왔다.

22세에 독일로 떠난 그는 어머니와 통화할 때만 한국어를 쓴다고 했다. 서툴러도 우회하지 않는 시니컬한 한국어에서 독특한 물성이 느껴졌다. 자본주의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만들고 있다고, ‘다들 돈처럼 생겼다’고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한병철 철학자.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사람이 돈처럼 생겼다니.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선 자기 얼굴이 없다. 너도 나도 돈처럼 빵처럼 변한다. 다른 얼굴도 사유도 희귀해진다. 인공지능(AI)처럼 계산만 추앙하고, 사고를 안 하니까.”

이번에 쓴 책 ‘정보의 지배’에서 정보를 아주 격렬하게 난도질했다. 정보가 슈퍼 빌런이더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보는 인식과 사고를 파편화시켰다. 사고는 머물러야 싹트는데, 정보의 시간성은 순간이다. 휘발이다. 민주주의의 시간은 지속인데, 인포크라시는 순간성이니 서로를 밀어낸다. 담론이 아닌 정보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은 충동을 따라간다. 정보 사회는 충동의 사회라서, 떼를 지어서 떠다니는 정보만 쫓아다닌다. 머무르지 못하니, 정보 자본주의의 생산성은 한없이 높아진다.”

현대인을 정보를 먹으며 사육당하는 가축이라 칭했다. 영화 ‘매트릭스’와 ‘옥자’의 비주얼이 머릿속에 동시에 소환됐다. 그걸 자각이라 할지, 각성이라 할지….
“(눈을 빛내며) 그저 가축이다.”

가축이 만든 챗GPT는 사용해봤나.
“(코웃음을 치며) 바보 같은 놈, 바보지 뭔가. 앵무새처럼 누가 한 말을 반복이나 하고 있으니…. 챗GPT는 과대평가 된 장난감일 뿐이다.

‘내가 철학은 마술이다’라고 했더니 AI가 그러더라. ‘아닙니다. 철학은 학문입니다.’ 언어 편집기는 흉내 잘 내는 계산기에 불과하다. 생각은 다르다. 생각은 없는 것을 창조하는 행위다.”

독일에서 오래 거류했던 한병철은 인터뷰 중 한국말로 표현되지 않는 어휘를 스마트폰의 통역기를 써서 찾아냈다. 간간이 동문서답하는 AI를 바보라고 놀리며 흥분했다. 순도 높은 언어를 쓰는 정밀한 철학자이자, 동시에 감정의 높낮이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모습이 신선했다. 디오게네스나 소크라테스 같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처럼, 연극적인 분방함이 넘쳤다.

21세기의 위대한 시민이 어쩌다 가축의 몸을 견디고 있는 걸까.
“가축은 압박받지 않는다. 정보의 먹이를 받아먹으며 쾌락을 느낀다. 억압이 있으면 저항이 생기고 노예 반란이 일어나겠지. 가축은 가축이 되면서 스스로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지배. 완벽한 신자유주의다.”

정보화와 신자유주가 만나 ‘정보 자본주의’가 탄생한 것인가.
“그렇다. 정보 자본주의 시대는 지배하는 사람도, 지배자도 없다. 항의도 하고 반란도 일으키는 군중에 비해, 가축은 울타리를 넘지 않고 그 안에서 평화롭다. 울타리밖에는 정보의 밥이 없으니까. 사육은 무리의 욕구를 만족시켜서 고기를 생산하는 게 목적이다.”

충격적인데 시적이군!
“철학자는 시인이라고 했잖나.”

최근에 인터뷰했던 제러미 리프킨은 자신을 학자가 아닌 행동가라고 소개하더라.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동의 이야기를 운 좋게 겪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라고.
“글쎄. 행동은 하는 것이지만 시는 되는 것이다. 시가 되기 위해 나는 피아노를 친다.”

철학자가 피아노는 왜…?
“(반색하며)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 피아노를 친다. 더러움이 쌓이면 좋은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피아노를 치는 행위는 나에게 청소의 리추얼이다. 마음을 청소하기 위해 슈만을 친다. 내 사고는 음악에서 나온다. 강의할 때 피아노를 가져다 놓으라고 한다. 바흐, 슈만, 라흐마니노프를 치면서 내 책을 읽는 콘서트도 한다. 피아노를 치면 내 사고의 음악성, 음조를 함께 느낄 수 있다.”

몸이 중요하다고 했다. 음악도 사고도 몸과 감정이 있어야 하는데, 육체 없는 AI가 무엇을 하겠느냐고. 60대 재독 철학자의 마른 탄식이 실내에 음조가 돼 출렁거렸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랬다.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어야 없는 것을 본다고. 희망이 없으면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기계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 그런데 계산을 잘하는 기계는 그 영리함으로 인간을 지배할 수는 있다. 망치로 집을 지을 수도 있지만, 망치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도구가 흉기가 되는 거지.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며) 나는 이걸 산책할 때 꽃 이름 물어볼 때나 쓴다. 안 그러면 내가 스마트폰의 도구가 되겠지.”

(한숨을 쉬며) 하지만…, 나 자신, 소비 가축, 정보 가축에서 정말 해방되고 싶은지조차 모르겠다.
“그건 나도 모른다. 가축우리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나는 비관론자도 낙관론자도 아니다. 진지한 사고는 비관도 낙관도 아니다. 구원이다.”

구원이라고?
“(미소 지으며) 철학은 마술이다. 설득이 아니라 유혹이지. 플라톤의 저서 ‘향연’에 보면 알키아데스가 소크라테스를 일컬어 악기 없이 젊은이를 유혹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사르트르는 철학자를 피리를 불어 유혹하는 마르시아스라고 명명한다. 유혹할 수 있는 힘이 있기에 철학은 마술이고 상상력이다. 챗GPT가 철학을 학문이라 주장하는 한, AI는 장난감이다. 하지만 그 장난감이, 계산기가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 무서운 일이다.”

어떤 점이 무서운가.
“작은 카메라는 눈과 섞인다. 사람들은 눈 오면 좋아하지만, 전 세계에 카메라가 깔리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살면서 관찰당하며 산다.”

최근에 영화 ‘서치2’를 봤다. 나의 동선이 거리의 라이브캠을 통해 생중계되더라. 마침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를 섞어놓은 것 같은 디지털 제국이 탄생한 것일까.
“(물끄러미 쳐다보며) 지배당하는데 자유롭다고 느끼니 문제다. ‘좋아요’의 지배가 완벽한 지배다. 그게 정보의 지배다. 예술가 제니 홀저의 말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달라”고 애원하게 만드는….’

화제를 바꿔보자. 최근에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연설문을 책으로 내기도 했다. 그가 서구에 보내는 소셜미디어(SNS) 메시지가 대중을 설득하면서 영토 분쟁 성격의 국지전이 제3차 세계대전 혹은 가치의 전쟁으로 지위를 얻었다고 평가됐다. ‘필요한 것은 탈 것이 아니라 탄약이다’라는 라는 문장과 함께.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들어낸 대표적 인물로 트위터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있는데. 철학자로서 두 사람을 비교하면 어떤가?
“젤렌스키는 뛰어난 배우다. 대작 영화에서 좋은 배역을 맡았다. 트럼프와 비교하면 두 사람 다 TV 출신이고 좋은 영화와 각본을 찾아다닌다. 젤렌스키는 전쟁 중에 노동자에게 해로운 법안을 통과시켰고, 부패 문제도 거론됐다. 내 시선에서는 젤렌스키도 정치가로서 믿음이 가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전쟁은 현실인데, 현실에서 배우 역할을 하는 모호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가들은 어떤가.
“독일에 있어서 잘 모른다. 지금도 몸싸움하고 소리 지르고 싸우나. 끝까지 말로 설득하는 게 민주주의다. 끝까지 듣고 말하는 게 민주주의다.”

대의 민주주의가 무용하며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인내도 경청도 담론도 없다. SNS 정치가 모욕과 자극으로 시간을 파편화시켰다. 민주주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제도다. 공론과 담론은 단번에 무르익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다. 트위터가 정치를 어떻게 만들었나. 과거 링컨은 3시간을 연설했고, 상대 진영의 반론에 또 1시간을 연설했다. 그걸 시민이 참을성 있게 들었다.”

꿈꾸는 인간, 자유로운 인간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백치가 돼야 한다. 있는 것을 없애야 새것이 창조된다. 너무 많은 정보를 찾으면 지나치게 똑똑해진다. 백치가 돼야 한다. 전부 똑똑하면 전부 똑같아진다.”

하지만 정보사회에서 백치가 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머물러야지. 정보 자본주의 사회에서 머무른다는 것은 각오가 필요하다. 굶어 죽고 추방당할 각오로 머물러야 한다.”

선생이 ‘피로 사회’로 세계를 명명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성과주의적인 신경증과 가속도는 더 심해진 것 같다. 왜 그럴까?
“내 책 ‘피로 사회’는 한국에서 10만 권이 팔렸다. 브라질에선 100만 권이 팔렸다. 싼값에 복사되고 해적판도 많다. 유감스럽게도 내 책은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선진국에선 읽히지 않는다. 그곳은 이미 가축화가 진행되어 불만이 없다. 내 책은 가난한 나라에서 팔린다. 가난한 나라에 저항이 살아있다. 희망이 있다.”

카프카의 문장을 빌려 지금 세계는 ‘동물이 주인의 채찍을 뺏어서 스스로 주인이 되기 위해 채찍질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나를 채찍질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반복 재생됐다. 그에게 우리 시대의 소크라테스가 되려는 것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저 책이라는 지팡이를 든 마법사이고자 한다. 자본주의의 인력(引力)이 얼마나 놀랍나. 정보의 지배자가 자기 크리틱을 수용하면, 비판자조차 그 포옹의 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타자로 남는다는 것은 지치지 않고 각성한다는 거다. 우리는 계속 서로의 타자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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