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파적 <37>] “남의 집 동백꽃을 몰래 꺾어 간 여인” 꽃을 좋아하는 심리

김진국 2023. 4. 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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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섬진강변을 따라 만개한 벚꽃. 사진 오윤희 기자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생전에 아버지는 고향 선영에 당신과 어머니 봉분을 나란히 쌍분(雙墳)으로 미리 마련해 놓으셨다. 엄마가 3년 전에 먼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고향을 지키고 계셨기에 당연히 엄마는 고향 선영에 묻히셨다. 엄마 장례식을 치르던 첫날 밤 12시 무렵, 우리 유가족은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했다.

김진국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

엄마는 고향 선영에 모시기로 했는데,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요 안건이었다. 아버지는 평심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너희 4남매가 모두 서울에 거주하는데, 아무리 고향이라도 남쪽 끝까지 내려와 성묘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고 나면 너희들 성묘하기 편리한 곳에 엄마하고 합장해 주면 좋겠구나!” 아버지는 엄마와 합장하여 서울 인근 묘지에 모시는 것이 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유언이 된 셈이다.

엄동설한을 병마와 투쟁하고 계신 아버지의 병세가 날이 다르게 악화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불가역(不可逆)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료진은 물론이고 우리 4남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단계였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아버지의 유골함을 안고 고향인 경남 하동의 엄마 산소를 찾았다.

“사랑하는 우리 시아버지, 가능하시다면 추운 겨울날 말고, 따뜻한 꽃피는 봄날에 보내 주세요!” 아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 같다. 발인 당일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많은 분이 염려해 주셨다. 막상 선영에 와보니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라 그랬을까. 산야에 핀 매화꽃이 정말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주가 지나고 장모님의 생신이 있어 다시 고향을 찾았다. 벚꽃은 통상 4월 초가 되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직 꽃샘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3월 말, 20도를 웃도는 기온이 며칠 지속된 것이 화근(禍根)이었다. 아니 화근(花根)이었다. 꽃들이 모두 미친 것 같았다. 고향 경남 하동으로 들어서는 초입, 섬진강변을 따라 벚꽃들이 다투듯 만발한 것이다. 만개한 벚꽃들 사이로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꽃잎들이 눈부시게 흩날렸다.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었다.

하동 섬진강변의 벚꽃과 화계 쌍계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십리벚꽃길’은 유명하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전국에서 몰려드는 구경 인파로 도로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나마 우리는 금요일 저녁 무렵에 고향에 도착해서 이틀 지나 일요일 아침 일찍 상경한 덕분에 지독한 교통 체증을 겪지는 않았다.

귀향 이튿날, 장인 장모님과 오찬을 함께하고 집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처가 입구의 화단에, 등산복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한 중년 여인이 얼쩡거리고 있었다. 약간 느낌이 쎄~ 했다. 나는 그 여인을 힐끗 쳐다보고는 이 집이 나와 관련 있는 곳이라는 듯 헛기침을 했다. 일종의 ‘영역 표시’를 한 것이다. 그러고는 휭하니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오후에 바람 쐬러 집 밖으로 나왔다가 우리 부부는 어이없는 장면을 목도했다. 장모님이 직접 심어놓은 동백나무. 그곳에 활짝 핀 동백꽃 중에서도 가장 탐스럽게 보이는 꽃 한 송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작은 체구에 그다지 험상궂게 생기지는 않은 내 외모로는 제대로 된 영역표시 효과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쩌랴, 남의 집 꽃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꽃이 예쁘다는 이유로 슬쩍 따가 버린 것을. 그 여인의 마음을 꽃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보아 넘기기로 했다.

사람들은 왜 꽃을 좋아하는 것일까. 많은 꽃이 일제히 피는 것을 백화제방(百花齊放)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심리학자들의 견해도 백화제방 격이다. 뒤집어 말하면 사람들이 왜 꽃을 좋아하는지 학자들도 잘 모른다는 말이다.

어떤 이는 꽃이 건강에 도움이 돼서 그렇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호흡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산소를 필요로 한다. 반면에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서 우리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여 산소로 전환시킨다. 식물과 사람은, 특히 꽃과 사람은 이렇게 ‘아름다운 공생’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럿거스대 심리학과의 저넷 하빌랜드 존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무실에 놓인 꽃이 직장인의 결근율을 낮춘다. 꽃으로 둘러싸인 환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매일 그곳으로 출근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한다는 말이다. 꽃은 오염 물질이나 담배 연기 같은 유해가스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정전기 감소에 필요한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신선한 꽃이 직장인의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한다고 한다. 이렇게 꽃 때문에 창의성이 제고되면 덩달아 생산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병실에 꽃을 비롯한 각종 화분을 들여놓는 것을 금한다. 병문안을 갈 때도 꽃을 들고 가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연구에 의하면, 환자의 취향에 맞는 꽃은 환자의 회복을 돕는다. 특히 큰 수술 후의 회복 과정에도 꽃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꽃과 호르몬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이들도 있다. 도파민은 보상에 대한 기대가 충족될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사람들은 꽃을 보면 도파민을 방출한다. 꽃은 새봄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다. 옛날 우리 인류의 조상들이 수렵 채집인이던 시절에는 만물이 시들고 잠드는 긴 겨울은 참으로 잔인한 시간이었다. 겨울은 굶주림과 같은 말이었다.

당시 만물이 소생하고 풍요로워지는 새봄이 온다는 소식보다 희소식은 없었을 것이다. 꽃은 새로운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꽃을 보면 사람들은 우리를 기아에서 구해줄 새로운 봄이 왔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이렇게 꽃은 보상의 호르몬, 기대 충족의 호르몬인 도파민과 관련이 있다.

꽃이 사랑의 호르몬, 애착의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관계가 있다고도 한다. 꽃은 여러모로 사람들의 사회적인 신뢰를 자극한다. 사람들의 관계는 꽃처럼 연약하다. 꽃을 보살피는 것처럼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시들어 버릴지 모른다. 사람들이 꽃을 보살피면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그러면서 관계의 보살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꽃은 행복의 호르몬인 세로토닌과도 연관이 있다. 세로토닌은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편안함과 자부심을 느낄 때 방출된다. 꽃을 바라보고 감상할 때 세로토닌이 방출된다는 것이다. 세로토닌은 불안, 초조감을 없애고, 숙면을 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어떤 사람은 꽃을 좋아하는 것은 그냥 사회적인 관습이고 전통이라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꽃을 선물 받은 많은 사람의 표정을 관찰한 한 연구에 의하면 틀린 말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선물을 받으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미소로 화답한다. 그 경우에 통상 진정한 미소가 아닌 가짜 미소가 정중한 답례 인사와 함께한다.

하지만 다름 아닌 꽃을 선물받았을 경우에는 ‘뒤센 미소’로 화답한다는 것이다. 뒤센 미소는 심리학자 폴 에크먼이 만든 개념이다. 웃을 때 입술 끝이 당겨지고, 두 눈이 약간 안쪽으로 모인다. 눈가에 주름이 생기고 양 뺨의 상부가 살짝 올라간다. 그런데 진짜 기쁜 경우가 아니면 뒤센 미소는 지어지지 않는다. 인공으로 만들 수가 없다. 뒤센 미소는 꽃이 사람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한다는 방증인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서울 근교에 있는 부모님 묘소를 찾아갈 때 꽃을 사 들고 가야겠다. 독자 여러분도 오늘 저녁 사랑하는 이에게 꽃 한 송이 선물하고, 만면에 꽃처럼 활짝 핀 진짜 미소인 뒤센 미소로 화답받는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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