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리에 반한 서양 클래식…‘경계를 넘어’ 노래판 벌이다
체코 작곡가 아다멕 판소리 활용 곡 연주
지난 2일 경남 통영음악당 블랙박스 무대에 소리꾼 이희문이 올랐다. 경기민요를 모티브 삼아 자신만의 소리로 장르를 융합해온 그가 국내 대표적 클래식 음악 축제에 노래판을 펼친 것이다. 그가 부르는 ‘창부타령’, ‘부모은중경’이 장구와 드럼 리듬을 타고 자지러졌다.
이튿날인 3일, 통영음악당 콘서트홀에선 체코 출신 작곡가 온드레이 아다멕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가 연주됐다. 판소리 영향이 깃든 작품이다. “일본 음악은 너무 복잡하고 생소한데 중국 음악은 지나치게 단순하죠. 그 중간의 한국 음악은 적절하게 따라갈 수 있어서 영감을 얻게 돼요.” 아다멕은 “판소리엔 놀라운 에너지가 담겨 있다”며 “판소리의 독특한 떨림과 선율적 특성을 이 곡에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판소리·민요·정가 등 한국 전통음악이 다양한 방식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대중음악과 섞이고 스며온 전통음악이 서양 클래식 음악과도 주저 없이 경계를 허물고 영역 확장에 나선 모습이다. 장르를 초월한 혼종과 융합이 현대 음악의 대세란 사실은 ‘경계를 넘어’란 주제로 열린 이번 통영음악제가 잘 보여준다. 작곡가 윤이상이야말로 한국 전통음악에 뿌리내리고 우뚝 뻗어 오른 서양 음악의 거목이었으니, 전통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합체는 이 음악제가 기리는 윤이상의 정신과 더없이 부응한다고 할 것이다.
최근 판소리가 서구에 소개되는 경로가 다원화되면서 한국 전통음악의 확장에 속도가 붙었다. 2012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판소리 축제 ‘한국소리 페스티벌(K-VOX FESTIVAL)’은 적잖은 팬덤을 형성해 냈다. 이후 판소리에 빠져들어 전문적으로 소리를 하는 외국인 소리꾼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파리와 런던 등지에서 열리는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은 늘 빠른 속도로 매진된다. 그가 헤밍웨이의 작품을 각색해 판소리에 입힌 <노인과 바다>는 특히 인기가 높다. 미국 뉴욕에서도 산조와 시나위로 공연장을 메운 ‘산조 페스티벌’이 2012년부터 9년 동안 진행됐다.
국내 클래식 음악에서도 전통음악에서 가능성과 활로를 찾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극작가 배삼식의 노랫말에 곡을 붙인 일련의 극장음악을 통해 현대음악의 어법에 전통음악을 접목해온 작곡가 최우정이 대표적이다. 음악극 <적로>(2017년)와 <추선>(2018년)에 이어 지난해 선보인 무용극 <마디와 매듭>에서도 판소리와 정가, 민요와 무속음악이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였다. 최우정은 “판소리 작창과 작곡, 정악과 속악,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등 경계가 모호하거나 서로 다른 장르와 양식과 악기 등을 뒤섞었다”고 했다. 지난달 작곡가 최우정을 집중 조명하는 강연음악회를 연 음악평론가 이소영은 “음악극이란 장르 이름에서 오페라와 뮤지컬, 창극 등 기존 장르 어느 하나에 귀속되지 않는 모호함을 전략적으로 택한 작곡가의 의지가 읽힌다”며 “한국음악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하나의 좌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정-배삼식’ 조합은 2026년 문을 여는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막 공연 작품을 책임지고 있다.
오페라와 창극의 접속 움직임도 감지된다. 지난해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대구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 독일 만하임극장 오페라 연출가 요나 김(Yona Kim)이 대표적이다. 판소리의 스토리텔링에 심취한 그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국립창극단 관계자들과 만나 협업을 타진했다. 그는 “판소리와 전통음악에 관한 여러 요소를 접했는데 걸러내고 순화시키면 뭔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20세기에 시작된 창극이란 장르 자체가 판소리가 서양의 연극과 오페라의 영향을 받아 ‘새로 만들어진 전통’이다. 경계를 넘어서려는 전통음악의 변형과 생성이 지금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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