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청 의혹에… 대통령실 “청와대보다 보안 탄탄”
“동맹 흔들 땐 국민 저항 받아”
이진복 “용산, 도청 어려워”
당국자 “정기적 점검… 그간 문제 없어”
일각 “통화 아닌 회의내용 도청 아니냐”
美 정보기관, 진보된 기술 사용 가능성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를 약 2주 앞두고 미 정보당국의 도청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통령실의 대응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양국의 상황 파악이 끝나면 필요할 경우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한·미 관계 중요성과 자주 국가로서의 위신 등을 고려하며 대응 수위를 고민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0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미 정보당국의 도청 의혹 사태와 관련해 “지금 미국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며 “미 국방부와 법무부가 조사를 요청한 만큼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동맹관계를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면 국민들의 많은 저항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온라인에 유포된 기밀 문건에 동맹국에 대한 도·감청을 포함한 민감한 내용이 다수 포함된 만큼 신중한 대응 속 원론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조치를 하겠지만, 외교 사안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는 관례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과 이 전 비서관의 대화가 유출 문건에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는 만큼, 당사자 확인을 거쳐 대화 시점과 장소, 상황을 특정한 뒤 보안 강화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내부 지적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실은 용산 대통령실의 철통 보안을 강조하며 논란 차단에 나섰다.
미 의회는 비슷한 시기에 기밀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 등에서 보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원 정보위 소속 공화당 마이크 갤러거 하원의원은 앞서 뉴욕타임스에 “이 서류들이 유출됐다는 사실은 엄청난 방첩 문제”라면서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이 의회에서 브리핑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尹 방미’에 영향 촉각 대통령실은 10일 미국 정보당국의 한국 정부에 대한 도청 의혹 보도가 이달 하순으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진은 이날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전경. 최상수 기자 |
대통령실이 10일 미국 정보당국의 도청 의혹과 관련,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도청 시도를 확실히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대통령실이 사용하는 현 청사는 윤석열정부 출범 전까지 국방부가 썼다. 해당 건물은 합동참모본부(현 국방부 청사)와 달리 대통령실이 옮겨오기 전까지는 도청방지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지난해 대통령실 이전 당시 도청 방지 설비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 “국가안보실 같은 경우는 당연히 대비가 됐다”며 “시스템적으로 조치가 돼 있다”고 말했다. 또 기자들에게 “이전해올 때부터 완벽하게 준비했고 지금도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정기 점검이 이뤄지고 있고 그동안 문제가 없었던 걸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미 정보당국의 도청 의혹 관련 보도를 보면, 대통령실의 보안 조치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해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의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전화 통화가 아닌 회의 과정을 도청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는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실장과 이 비서관의 대화 내용은) 안보실 내 내부 회의하는 장면처럼 비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정황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대통령실 청사 내 주요 사무실 위치 등이 노출됐다는 의미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보안 문제는 지난해에도 지적됐다. 국정원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지난해 5월 이종섭 국방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용산 대통령실 이전 공사현장 방문 사진을 제시하며 “저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시설보안이 완벽하게 된다고 보느냐”며 “내가 만약 외국의 정보기관원이면 도청장치를 설치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기밀문건이 최근 온라인에 대량 유출된 사건은 2010년 위키리크스의 미 국무부 외교전문 25만여건 폭로, 2013년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 정보 수집·사찰 사실을 밝힌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때보다 위험성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따끈따끈한 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어서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약 100건의 유출 문건이 “다루는 범위는 훨씬 좁지만 우크라이나 방공망 지도, 한국의 포탄 33만발 우회 지원 논의 문건처럼 생산된 지 40일밖에 안 된 시의적절한 내용이 많아 백악관과 국방부 관료들은 이 정보들이 즉각적으로 부각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이번 유출이 특히 손해를 끼치는 것은 기밀의 신선도와 향후 (우크라이나 전장의) 작전에 관한 힌트를 주는 점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문건에 우크라이나 군수품 인도 일정 등이 포함된 점을 언급하며 “이제 세계는 미 국방부의 포탄 해상 선적 일정과 비용까지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와 관련해 “유출 문건에는 봄철 공세를 준비 중인 우크라이나 9개 여단이 보유한 중화기·장비 유형, 우크라이나군의 탄약 소진 현황, 핵심 인프라 보호 수준에 관한 정보가 포함돼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봄 공세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문건 대부분이 외국과의 공유가 금지된 것이었던 만큼 내부자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와 정보기관들은 단순히 조직에 불만을 품은 내부인부터 미국의 안보 이익을 해치려는 적극적인 의도를 가진 위협 세력까지 4, 5가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검토 중이라고 당국자들이 로이터에 전했다.
NYT 등은 기밀이 게임 채팅 플랫폼에 처음 올라온 점에 미뤄 내부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논쟁을 벌이다 자기 주장을 ‘인증’하는 용도로 문건 촬영 사진을 유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현미·유지혜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박수찬·곽은산 기자, 유태영·이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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